4회:목숨을 걸어야 애인이 생긴다.
그날은 마침 휴일이라 나 혼자 역전에 있는 백화점으로 쇼핑을 나갔다. 물론 아내 몰래 문제의 휴대폰을 주머니 속에 깊숙이 숨기고 말이다.
홀로 쇼핑을 마치고는 평소 보고 싶었던 영화도 감상하고 난 후 나는 지하에 있는 푸드코트에 들려 가볍게 점심을 즐기고 있었다.
식탁에 잠시 내려놓은 휴대폰의 액정에는 '8'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나는 감회에 젖은 시선으로 그 숫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동안 휴대폰의 순결(?) 지키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 했던 일들이 하나둘씩 떠올라와 나는 울컥했다.
“......!”
그런데 그때 갑자기 건물 천장에서 뭔가 부러지는 듯 둔탁한 소리가 나더니 건물이 조금 흔들렸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맞은 편의 천장 부분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푸드코트에서 여유롭게 식도락을 즐기던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비명을 질렀다. 그 일대는 삽시간에 아비규환의 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어쩔 줄 몰라 허둥대던 나에게도 매캐한 시멘트 가루가 폭풍우처럼 밀려왔다. 그 바람에 나도 뭔가에 세게 얻어맞은 듯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정신을 차린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사방은 온통 암흑천지였다.
나는 무너진 건물의 기둥이 벽에 비스듬히 걸리는 바람에 생긴 조그만 공간 속에서 가벼운 생채기만 입은 채 갇혀 있었다. 비로소 백화점 건물이 붕괴했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깊고 깊은 바닷속에 빠져버린 듯한 절망감에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사람 살려!”
그러나 아무리 고함을 질러도 깊은 암흑으로 변해버린 푸드코트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지금 밖에서는 대형 백화점이 무너졌다고 난리가 났을 텐데도 말이다. 한참을 정신없이 악을 썼더니만 나중에는 기력이 다해 아예 소리도 안 나왔다.
수천 미터의 해저(海底) 바닥에 가라앉은 듯한 묵직한 침묵.
침묵.
그 거대한 침묵이 죽음의 공포를 몰고 왔다.
나는 살고 싶었다.
나는 다시 발작적으로 무너진 건물더미를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건물의 잔해가 내게로 우수수 쏟아지는 바람에 그것마저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구조의 손길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 대형 백화점 건물이 무너지면서 쏟아진 엄청난 잔해를 치우는 데에만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그러다가 최악의 경우 무너진 건물더미 속에 더 이상 생존자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끝내 구조를 포기할 수도 있다.
그 사이 나처럼 기적적으로 살아난 생존자들도 결국은 죽고 말 것이다.
나는 그렇게 살려고 바둥대다가 이렇게 어이없이 죽는가?
나의 마음은 암담했다.
아내는 내가 지금 붕괴 현장의 지하실 바닥에 힘없이 누워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는 것을 꿈에도 모르리라.
그저 왜 남편이 갑자기 연락이 안 되나 걱정하고 있겠지.
“띠리링,”
그때 어디선가 아련히 휴대폰 벨 소리가 들렸다. 정확한 위치를 알 수는 없었지만 나처럼 무너진 건물더미에 갇힌 어느 희생자의 주머니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그러나 계속되는 애절한 벨소리에도 불구하고 그 휴대폰의 주인은 이미 사망했는지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른 사망자들을 찾는 휴대폰 벨 소리가 어둠 속 저 너머에서 간간이 다시 들려왔다. 그러나 역시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그 많던 사람 중에서 나만 아직 살아 있었다.
“아, 휴대폰!”
어느 순간 휴대폰이라는 단어가 정신줄 놓으려는 나의 뇌리를 후려갈겼다. 나는 허겁지겁 바지 주머니를 뒤졌다. 아뿔싸! 그런데 주머니에는 휴대폰이 없었다. 붕괴 사고가 나기 직전에 식탁에 휴대폰을 올려놓은 것을 깨닫고는 미친 듯이 주변 바닥을 더듬었다.
그러나 아비규환의 난리통에 휴대폰은 어디론가 쓸려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밀려오는 절망감에 입술이 검게 타들어 갔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한치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바닥을 마구 뒤지고 있을 때 뭔가 묵직한 것이 손에 잡혔다. 황급히 집어 보니 휴대폰 같았다.
“그래, 운명의 여신은 아직 나를 버리지 않았어!”
미친놈처럼 뇌까리며 지체 없이 폴더를 밀어 올리니 더욱 다행스럽게도 그것은 내 휴대폰이었다.
액정에 새겨진 '9.0'라는 숫자가 환하게 나타났다. 숫자로 보아 나는 거의 하루 동안 기절했던 모양이었다.
자그마한 액정의 파란빛이 주변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환하게 밝혀주었다.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았던 짙은 어둠 속에 갇혔던 나의 가슴이 뻥 뚫리는 듯했다.
휴대폰의 불빛으로 위를 비춰보자 건들거리는 콘크리트 덩어리가 위협적으로 드러났다. 어른 크기 만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외부의 미세한 진동에 의해서 금방이라도 아래로 떨어질 것처럼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마도 바깥에서 구조 작업을 벌이는 굴삭기들의 무게 때문에 콘크리트 덩어리가 위협적으로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리라. 혹시라도 저것이 떨어지면 난 그대로 즉사였다.
온몸이 덜덜 떨렸다.
“......!”
그런데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제 휴대폰의 건전지가 반 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그 간당간당한 건전지마저 완전히 소모되면 나는 완전하게 외부와 고립되는 것이었다.
다시 밀려오는 죽음의 공포에 나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나는 빨리 외부에 구조 신호를 보내야 했다. 워낙 마음이 급하다 보니 아내의 전화번호도 잘 생각나지 않았다.
겨우 번호를 떠올리고 첫 번호를 누르는데 휴대폰에서 삐삐하고 경고음이 들렸다. 아마 얼마 남지 않은 휴대폰의 활성화를 방해하지 말라는 경고처럼 들렸다.
동시에 액정의 오른쪽 구석에 있는 배터리 소모 정도를 나타내는 칸이 거의 비워지고 윤곽만 겨우 희미하게 나타났다. 갑자기 머리칼이 번쩍 서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활성화고 뭐고 일단 살고 보아야 했다.
나는 휴대폰의 경고를 무시하고 서둘러 아내의 번호를 다 찍었다. 이제 통화 버튼만 누르면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때 액정의 숫자가 9.1로 스르르 바뀌었다.
그리고 동시에 계속 경고를 무시하고 있는 나를 향한 듯한 음성 메시지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이제 하루도 안 남았습니다. 숨겨진 애인을 찾는 작업을 정말로 중단하시겠습니까?”
“하루? 너무 길어! 일단 살고 봐야 해!”
나는 휴대폰의 경고 메시지를 무시하고 통화 버튼을 누르는 순간, 휴대폰이 내 손에서 미끄러지면서 땅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외부 세계와의 유일한 연락 통로인 휴대폰이 완전히 박살 나는 줄 알고 기겁했다.
내가 황급히 휴대폰을 집어 올리려는 찰나, 휴대폰에서 보라색 빛이 허공으로 투사되기 시작했다. 1m 정도 부챗살 모양으로 펼쳐진 빛 속에서 사람의 형상이 만들어졌다.
형상은 몇 초도 되지 않아서 젊고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눈매가 매우 시원하게 생긴 아름다운 여자는 불안감이 가득 찬 시선으로 나를 주시했다. 연분홍빛 그녀의 입술이 빠르게 움직였다.
“제발 저를 죽이지 말아요.”
“당, 당신 누, 누구야?”
“저는 아마라(阿摩羅)라고 합니다. 지금 주인님께서 지금 만들고 계시는 가상의 세계에서 달려왔습니다.”
젊은 여인은 빛의 영상이었지만 진짜 살아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섬세하고 생생했다.
절세미인인 젊은 여자가 조근조근 말을 할 때마다 그녀의 긴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리듯 나부꼈다. 그와 더불어 젊은 미인의 향기와 뜨거운 숨결이 진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는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해 완전히 기진맥진한 나의 온몸에 묘하게도 힘이 용솟음치게 만들었다.
“당신은 혹시 피에로가 말하던 숨겨진 내 애인?”
“네. 맞습니다.”
아마라는 다소곳이 나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나서 맑은 눈빛으로 나를 그윽하게 바라본다. 내가 그녀를 재빠르게 훑어보았다.
나의 이상형이었다. 이미 나의 모습을 스캐닝한 여인도 내가 마음에 드는지 만족한 듯한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황홀한 기분을 느끼며 내 애인이라는 여인에게 물었다.
“아직 열흘이 안 지났는데 왜 벌써 나왔지?”
“주인님께 호소하기 위해서 제가 이렇게 급히 나타난 거예요”
“호소라고?”
“제발 저를 살려달라는 부탁을 드리기 위해서 달려왔어요.”
말을 마친 아마라는 마음이 더 급했는지 덥석 나의 손을 붙잡았다. 부드럽고 촉촉한 여인의 촉감이 따스하게 전해졌다.
신기하게도 그녀의 온기는 차츰 식어가던 나의 심장을 다시 더운 피를 뿜어내며 뛰게 만들었다.
“당신을 살려달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지금 주인님이 통화를 하시면 주인님의 심상(心象) 즉 마음을 분석 복사해서 탄생한 저는 순식간에 파괴되고 맙니다.”
나를 쳐다보는 아마라의 아름다운 눈동자에 애절함이 가득 찼다. 그것은 세상의 어떤 남자라도 다 녹여버릴 수 있는 강력하고 묘한 마력이었다.
“이렇게 생생한데?”
“하지만 저는 아직 다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하루만 더 참으시면 됩니다.”
“하루? 안돼! 지금이라도 당장 외부에 구조를 요청해야 해! 나는 절대 이대로 죽을 수 없어! ”
나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 탓에 아마라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제발 저를 살려주세요. 주인님의 이상형(理想型)을 죽이지 마세요!”
“누가 나의 이상형?”
나는 일부러 어기장을 놓았다.
“네. 전 주인님이 그토록 찾던 이상형이잖아요?”
“그건 그렇기는 한데.”
나는 금방 수긍했다.
“그러니 제발 저를 죽이지 마세요.”
아마라가 다시 호소했지만 난 곧 정신을 차렸다.
“아무리 그래도 난 일단 살고 봐야 해. 이 어두컴컴한 땅속에서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어.”
“그래도 하루만 참으면 주인님은 평생 저와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죽으면 이상이고 뭐고 다 끝장이야! 내가 진정 사는 것은 이 전화로 외부와 연락하는 것뿐이야!”
내가 현실적인 판단을 하자 아마라는 거의 울상이 되었다.
“주인님, 제발......”
“지금이라도 저 콘크리트가 떨어지면 난 개죽음이라고!.”
“어차피 이상이 없는 삶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
“하지만 주인님이 하루만 참아주면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조요청을 하겠습니다. 저는 휴대폰 속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휴대폰으로 연락할 수 있어요.”
아마라의 설명에 나는 솔깃해졌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저를 믿으세요. 제발,”
애절하게 호소하는 아마라의 고운 눈에 갑자기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나는 아마라의 진심을 파헤쳐 보겠다는 듯이 그녀의 시선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진실되게 보였다.
“좋아, 구조요청 통화는 너를 살린 다음에 하지.”
마침내 아마라의 호소에 넘어간 나는 통화를 하려던 아내의 휴대폰 번호를 다 지워버렸다.
“고맙습니다.”
나의 결단에 감격한 듯 아마라는 나에게 깊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녀의 고운 하얀 목덜미가 조약돌처럼 하얗게 빛났다.
“나 미친 것 맞지?”
“아닙니다. 주인님은 모두가 사는 용단을 내리셨어요.”
“정말이기를 바래.”
“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주인님을 꼭 살리겠습니다.”
아마라가 다시 나를 격려할 때 그녀의 영상이 심하게 흔들렸다. 휴대폰의 배터리가 막바지에 다다른 모양이었다. 사색이 된 아마라는 황급히 나에게 소리쳤다.
“시간이 없군요. 그럼 나중에 또 뵙겠습니다. 주인님,”
아마라는 서둘러 그 한마디를 남기고는 순식간에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그녀의 뒤를 따라 휴전폰도 금방 죽어버렸다. 주변은 다시 무서운 암흑에 휩싸이고 말았다.
“아, 괜한 짓을 한 것은 아니겠지? 아마라가 제대로 구조요청을 해야 할 텐데.”
나는 괜히 골드타임만 놓쳤나 싶은 우려에 스멀스멀 피어나는 공포를 안간힘을 다해 억눌렀다. 그러다가 결국 기력을 다 소진하고 어느 순간 그만 까무룩 기절하고 말았다.
“......!”
그런데 다음날 나는 정말 기적적으로 구조가 되어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나는 곧바로 병원에 이송되어 일주일 동안 집중 치료를 받았다.
며칠 후 차츰 기력을 회복한 나는 처음에는 푸드코트에서 만난 아마라의 존재를 극심한 위기 상황에서 겪을 수 있는 환상 정도로 여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마라의 모습은 점점 선명해지면서 그녀가 내게 간곡히 요청했던 눈물겨운 호소와 약속이 뚜렷하게 생각났다.
“내가 아마라 때문에 살아난 건가? 헷갈리네.”
그렇게 긴가민가하던 중 마침내 나는 병원에서 퇴원하게 되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온 그날 아내는 문제의 휴대폰을 내게 불쑥 내밀며 의구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물었다.
“주인에게 돌려주었다던 휴대폰이 왜 붕괴 사고 현장에 있었는지 궁금하지만, 묻지 않겠어. 그나마 그 휴대폰 때문에 애간장 녹이던 내 남편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으니까.”
아내는 나를 흘겨보며 한숨 쉬었다.
“그런데 말이야. 아직도 그 여자가 누구인지 도대체 알 수 없단 말이야.”
중얼거리던 아내의 표정에서 슬며시 미심쩍어하는 빛이 되살아났다. 휴대폰을 돌려받고는 아내의 눈치를 살피던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자?”
“붕괴 사고 이후 당신이 갑자기 이틀 동안이나 행방불명이 되어 내가 사방으로 수소문하고 있는데 마지막 날 웬 여자로부터 전화 한 통이 왔었어. 당신이 백화점 푸드코트에 있다고 전화했었어.”
“정말이야?”
“응, 그런데 당신, 그 여자 정말 몰라?”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난 통 알 수가 없어.”
내가 짐짓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아내는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세상에, 내가 당신이 거기 있을 줄은 꿈에나 생각했겠어?”
“......!”
“황당했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기뻤어. 당신이 살아있다고 했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문득 말을 맺는 아내의 눈빛이 표정이 차츰 어두워져 갔다.
“뭐가 문제인데?”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이상한 생각이 슬그머니 들었어. 나도 모르는 당신의 행방을 어떻게 그 여자가 정확히 알고 있었을까? 혹시라도 당신하고 어떤 부적절한 관계에 있는 여자가 전화를 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을 내뱉고는 아내는 슬며시 내 반응을 살폈다. 당연히 나는 벌컥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화내지 말고 끝까지 들어봐요!”
“......”
이 순간 아내는 이상하게도 무섭도록 침착했다.
“하여간 나는 백화점 붕괴 사고 대책 본부에 황급히 연락했어요. 그렇게 해서 당신이 기적적으로 구조된 거예요.”
“고마워.”
“그 여자한테 고마워해야지. 난 그 여자가 같이 구조되어 나오면 고맙다고 인사를 할 생각이었어요”
거짓말을 하면서 쓴웃음을 짓는 아내의 얼굴에 스산한 바람이 지나갔다.
“왜 그 여자가 나랑 같이 구조되어 나온다고 생각한 거야?”
“당신이 바람피웠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구조요원들이 당신을 발견했을 때에는 당신 곁에는 아무도 없었대요. 그 휴대폰만 당신 곁에 있었다고 했어.”
말을 마친 아내는 다행이라는 듯 씩 웃음을 짓는다.
“......”
“그런데 이 휴대폰을 충전시켜 열어보니까 유일하게 내 전화번호 하나가 발신으로 찍혀있었어.”
“내가 무의식 중에 당신에게 전화했었나?”
아마라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내가 슬쩍 던진 나의 물음에 아내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건 분명히 젊은 여자의 목소리였어. 분명히,”
“허,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나의 독백에 아내의 얼굴이 그만 백지장으로 변해버렸다.
“귀, 귀신?”
그 틈을 타 나는 기어코 그녀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자, 재미없는 취조는 이제 그만하지. 내가 살아온 것만 해도 감사하다며?”
“물론 그렇죠. 하지만 하나만 더 물어볼게.”
나를 바라보는 아내의 시선이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어져 갔다.
“뭔데?”
“당신은 휴대폰을 갖고 있었으면서 왜 처음부터 구조신청을 안 했어?”
“건물이 붕괴될 때 휴대폰을 떨구는 바람에 그렇게 됐어.”
“하긴 휴대폰을 갖고서도 구조요청을 안 할 미친놈은 없을 테니까.”
(미친놈?)
“하여간 한 번만 더 나를 놀라게 하면 그때는 알지?”
아내는 앙증맞은 작은 주먹을 내 눈앞에 불끈 쥐어 보이며 비로소 배시시 웃었다.
“......!”
집에 당도하자마자 나는 아들 방에 들어가 방문을 잠그고 돌려받은 휴대폰을 조심스럽게 책상에 올려놓았다.
초인적인 노력으로 10일 동안 통화를 하지 않고 활성화에 성공한 휴대폰은 아름다운 남색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아마라가 약속한 대로 나를 구해준 것이 틀림없어.)
아내의 입을 통해 간접적으로 아마라의 존재를 확인한 나는 그 여인을 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서 본격적으로 안달이 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