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도둑의 시선을 다이아몬드 동굴로 돌려라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
유진이 억지로 따라 준 막걸리를 연거푸 들이켠 지우는 결국 발그레한 얼굴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았어요.”
취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대꾸하던 유진은 지우가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 자리를 비우자, 유진은 잔칫상에 놓여있던 과도를 재빨리 낚아채어 상의 주머니 속에 감추었다.
“거금이 든 돈가방을 들고 다니면 돈 냄새를 맡고 어떤 놈이 달라붙을지 몰라.”
유진은 막걸리를 마시면서도 줄곧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었던 돈가방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잠시 후 지우가 돌아오자, 유진은 돈가방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출구로 나오자, 회갑연 스태프들이 기념품이 든 종이봉투를 한 개씩 나누어주었다. 두 사람은 왁자지껄한 봉수당을 지나쳐 신풍루 정문을 빠져나와 오른쪽 길로 접어들었다.
“캬꿍!”
그런데 행궁의 주차장에서 난데없이 백랑이 두 손을 벌리고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유진이 흠칫 놀라 뒷걸음치는데 뒤에서는 흑랑과 청랑이 히죽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이야, 여기서 만나다니 다행이다!”
백랑은 아주 반갑다는 듯이 얼굴을 실룩거리며 성큼성큼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 꼬맹이 지우가 앙큼하게 오빠들을 물 먹이고 이놈을 빼돌리다니……많이 컸어.”
그는 하얗게 질려버린 지우를 흘겨보며 으르렁댔다.
“오빠들, 이 사람을 그냥 보내줘요!”
지우가 험상궂은 표정을 짓고 있는 오빠들을 번갈아 보며 애원하자, 흑랑이 나서서 그녀를 강제로 끌어당겼다.
“네가 제사장으로서 못하는 일을 우리가 대신해 주는 거야. 그러니 넌 가만히 빠져 있어!”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유진은 본능적으로 상의 속에 숨겨둔 과도를 떠올렸다. 하지만 오른손으로 007 가방을 쥐고 있어서 그것을 쉽게 꺼낼 수가 없었다. 그가 어쩔 수 없이 뒷걸음질 치는데 청랑이 그의 등 뒤로 바짝 다가와 비수를 들이댔다.
“계속 뒷걸음질 치면 너의 등짝에 커다란 바람구멍이 생긴다. 조심해라. 흐흐,”
허리로 파고드는 날카로운 쇠붙이의 느낌에 유진은 그 자리에 얼음처럼 얼어붙고 말았다. 그사이 흑랑이 다가와 유진이 줄곧 애지중지 들고 있던 돈가방을 확 낚아챘다.
“이 자식, 이건 또 언제 훔쳐 갔어?”
“야, 지금 그것 따질 때가 아니야. 빨리 이 자식을 데려가서 작업이나 끝내자!”
백랑은 흑랑에게 눈총을 쏘고는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자기 코를 유진의 가슴에 쿡 박고는 냄새를 맡았다.
“아,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그때 마침 막걸리를 먹은 탓에 속이 부글부글하던 유진은 자기도 모르게 백랑의 얼굴에다 트림을 토해내고 말았다.
“……!”
유진이 내뿜은 시큼한 막걸리 냄새를 흠뻑 뒤집어쓴 백랑은 인상을 팍 쓰며 얼른 코를 틀어막았다.
“억, 대체 이게 무슨 냄새야?”
백랑의 호들갑에 흑랑도 달려와서는 코를 킁킁거렸다.
“이런, 이놈 몸에서 썩은 냄새가 진동해!”
흑랑도 지독한 냄새를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났다.
형들의 아우성에 청랑은 대체 무슨 냄새가 나서 저 야단법석을 피우나 싶어 유진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와 직접 자기 코로 냄새를 맡아본다. 그 역시 깜짝 놀랐다.
“아니, 언제 이놈이 이렇게 상해버렸지? 이러면 물건도 제대로 안 나올 텐데.”
청랑이 안타까운 듯 소리치자, 백랑은 고개를 끄덕이었다.
“맞아. 야, 그만 빨리 가자! 이 빌어먹을 악취가 우리 몸에 배기 전에! ”
말을 마친 백랑은 냄새가 자신들의 몸에도 밸까 봐 무서운지 먼저 꽁무니를 뺐다. 그 모습을 보고 다른 형제들도 하릴없이 황급히 그 자리를 떴다. 그 와중에도 청랑은 돈가방을 챙겨 달아났다.
“야, 이놈아, 가방은 놓고 가!”
얼떨결에 돈가방을 빼앗긴 유진은 이성을 잃고 무작정 그들을 쫓아가려 했다. 그때 지우가 그를 가로막았다.
“어딜 쫓아가요? 위험해요!”
“지우, 난 저 돈가방을 되찾아 와야 해!”
“그러다가 오빠들한테 당신 죽어요.”
“저 돈 없으면 어차피 난 죽어! 내가 죽는 판에 무슨 짓인들 못 하겠어?”
유진은 지우에게 미친 듯이 내뱉고는 품속에서 과도를 쓱 빼 들었다.
“내 것을 빼앗아 간 저놈들을 모두 죽여버릴 거야!”
지우 오빠들이 도망한 곳을 쏘아보며 중얼거리는 유진의 두 눈에 광기가 번들거렸다.
“제발 그러지 마세요. 오빠들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잖아요?”
지우가 유진을 붙잡고 설득하자 그는 피식 웃었다.
“난 다 알지. 난 당신들이 돈가방을 사당에 숨겨두었던 것을 이미 알고 있어!”
“사, 사당이요?”
유진의 입에서 사당이라는 말이 툭 튀어나오자, 지우의 얼굴색이 흙빛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래. 어제 당신 엄마가 그곳에 다이아몬드를 갖다 놓는 것을 목격했거든. 이번에도 거기에 숨겨두겠지.”
“아아,”
지우의 입에서 절망적인 신음이 흘러나왔다.
(저러다가 사당에 숨겨져 있는 신물(神物)까지 다 드러나겠어. 어떡하든지 막아야 하는데)
“안 비키면 당신도 다쳐!”
유진이 광인처럼 과도를 그녀에게 들이대며 거칠게 위협하자 잠시 그를 착잡한 시선으로 주시하던 지우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돈가방을 빼앗겨서 지금 극심한 패닉 상태에 빠진 것 같은데 당신에게 다른 희망을 드리죠.”
“다른 희망?”
지우의 제안에 광기가 사라진 유진의 눈이 기대감으로 반짝 빛났다.
“네. 세상에서 가장 귀한 다이아몬드를 드리죠.”
“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라는 말에 유진이 긴가민가하는 시선으로 되묻자 지우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었다.
“다이아몬드 싫으세요?”
“아니!”
“그것 몇 개만 있으면 무거운 돈가방 따위는 필요 없을 테니까 엄청 괜찮은 장사죠.”
“대체 그 다이아몬드가 어디에 있길래 그렇게 허풍을 떠는 거요?”
“허풍이 아니에요. 자, 나를 따라오세요.”
“속임수 아니겠죠?”
유진은 새삼 의심스럽다는 듯이 지우를 쏘아본다.
“이런, 속고만 살아오셨나? 난 다이아몬드가 산처럼 쌓여있는 곳을 알죠.”
“산처럼 쌓여있는 곳?”
지우의 말에 다시 의심을 잠재운 유진의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높아졌다.
“네. 그 정도면 돈가방을 열 개 이상도 만들 수 있죠.”
“열 개씩이나? 정말이요?”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묻는 유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네. 이 산에 흡혈박쥐들이 사는 아주 오래된 동굴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 다이아몬드가 많이 있어요.”
“정말이요?”
“네. 박쥐들이 인간들의 다이아몬드를 훔쳐다가 자기들 아지트에 꼭꼭 숨겨놓았기 때문이죠.”
“아하, 맞다, 그놈!”
유진은 자기 다이아몬드를 훔친 박쥐를 떠올리고는 그제야 지우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수긍하고는 매우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 괘씸한 놈들이 내 것도 훔쳐 갔어! 그 바람에 난 개털이 되었고 그런데도 난 끝내 박쥐 동굴을 찾는 데 실패했어. 젠장!”
유진이 새삼 분노를 터뜨리자 지우는 그를 달래듯이 말했다.
“안 됐군요. 하지만 내가 그곳을 아니까 이제 걱정하지 말아요.”
“그럼, 당장 갑시다.”
“잠깐, 그전에 협상해야죠?”
“협상?”
유진이 고개를 갸웃하자 지우는 별것 아니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 다이아몬드를 찾으면 우리 7대 3으로 나누는 것이 어때요? 내가 7!”
지우의 제안에 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7대 3? 지우, 너무 욕심부리는 것 아니야?”
슬그머니 욕심이 발동한 유진이 흥정꾼의 흉내를 내면서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자 지우도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내가 없으면 당신은 그 동굴을 영영 못 찾을 거예요. 그러면 결국 유진 씨도 손해죠. 손에 아무것도 쥐는 것이 없을 테니까.”
“흠, 좋아. 6:4 어때요?”
"6:4? 흠 그리 나쁘지는 않군요. 좋아요. 호호,”
지우는 슬쩍 양보하는 척하면서 상쾌하게 웃었다. 유진의 관심을 사당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자기 작전이 다행스럽게도 유진에게 먹힌 것이 만족스러웠던 것이다.
“난 지우 당신을 믿겠소.”
그런 지우의 깊은 속셈을 모르는 유진은 싱긋 웃으며 과도를 다시 품속에 집어넣었다.
아무튼 타협이 잘 되어서 기쁜지 지우는 곧바로 사뿐사뿐 앞장서서 걸었다. 천국과 지옥을 오갔던 유진도 곧 백만장자가 될 거라는 새로운 희망을 품고 부푼 가슴으로 그녀를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