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최종회):좋은 애인 나쁜 애인 육성법
“아니,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우리를 죽여? 주인님 지금 정신 나간 것 아니야?”
평소에 매우 차분하고 기쁨에 차 있던 인범과 천녀마저도 뜨악한 얼굴로 나를 비난했다. 우마는 아직 상황파악을 못 했는지 눈만 껌벅이며 이리저리 귀동냥하기에 바빴다.
그때 아수라가 칼을 뽑고 나에게 달려들려고 하자 향귀가 깜짝 놀라며 그를 밀쳐내며 소리쳤다.
“저리 비켜! 주인님은 칼 따위는 무서워하지 않아! 주인님은 내 몸을 제일 무서워한다고! 호호, ”
자신만만하게 외친 향귀는 육탄공격으로 나를 어찌해 보려는 심산인지 내게 달려들어 그녀의 뜨거운 몸을 내게 마구 비벼댔다.
“이 뜨거운 몸은 죽이지 않을 거죠?”
“저리 비켜!”
나는 매몰차게 향귀를 밀어냈다. 그래도 향귀는 내게 거머리처럼 착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나와 향귀가 실랑이를 벌이자, 보다 못한 돈노가 언제 훔쳐왔는지 돈 보따리를 들고 내 앞에 달려왔다.
돈노는 내 대신 힘으로 향귀를 떼어냈다. 그러고는 돈뭉치를 내게 보이고는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주인님, 자본주의 국가에서 돈 없으면 죽습니다. 제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돈을 끌어다 드릴 테니 제발 저만은 살려주세요!”
돈노가 황금빛 지폐를 뿌리며 호소해도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인범, 천녀 심지어 성오 그리고 연오까지 앞 다투어 몰려와 나에게 살려달라고 매달렸다. 하지만 아수라와 지용은 묵묵히 그 꼴을 바라보고 서 있을 뿐이었다.
그들의 읍소와 하소연에 시달리던 나는 결국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지금 아마라를 보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 모두 물러가!”
찬 바람 도는 나의 고함에 모두 찔금하고 뒤로 물러섰다. 그래도 미련이 남은지 다시 매달릴 틈을 노렸다. 그러나 연오는 그들과 달리 주먹을 불끈 쥐고 자기 형제자매를 돌아보며 외쳤다.
“형제들이여, 나는 이 더럽고 치사한 세상에서 탈출하기로 결심했소. 나를 따를지 말지는 여러 형제들이 알아서 하시오!”
연오는 결연하게 그 말을 남기고는 즉시 공중으로 비상했다. 성오가 즉각 그 뒤를 따랐다. 그러자 다른 자들도 각기 탈출을 감행했다. 그 순간에도 아수라와 지용만이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악!”
그런데 금방이라도 탈출을 할 것처럼 치솟던 연오는 10미터 지점 상공에서 갑자기 뭔가 투명한 막에 부딪힌 듯 힘없이 땅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들 모두 심한 부상을 입고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그 처참한 광경을 보고 피에로가 히죽 웃으며 내게 속삭였다.
“쟤네들은 홀로그램 입체물이라 태생적으로 휴대폰으로부터 10미터 이상 벗어날 수 없어. 쟤네들의 슬픈 운명이야.”
피에로의 말에 내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 지금껏 가만히 잠자코 있던 아수라가 4개의 검을 위협적으로 휘두르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난 그 운명을 작살내고 말 거야!”
아수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4개의 검이 날아와 나의 목을 겨누었다.
“당장 그 휴대폰을 내놓지 않으면 너희 목을 베어 버리겠다. 당장 그것 내놔!”
나를 위협하는 아수라의 두 눈에서 파란 불이 이글이글 타올라 왔다. 그때 부상당해 쓰러져 있던 자들도 비틀비틀 일어나 증오심이 가득한 얼굴로 나와 피에로를 둘러쌌다.
그들은 더 이상 나의 애인들이 아니었다. 모두 영락없는 반란군이었다.
그들 중 성오가 나를 가리키며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를 말살하려는 저자를 없애버리자!”
성오의 선동에 고무된 아수라가 지체 없이 검을 들어 나의 목을 내리치려고 했다.
그때 지용이 두 팔을 벌리고 아수라를 막아섰다.
“살생은 안 돼!”
“또 너냐?”
아수라는 지용을 쏘아보더니 이번에는 주저 없이 검을 휘둘렀다. 그 바람에 지용의 오른손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악,”
지용은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뒤로 물러서지는 않았다. 그것에 더 열받은 듯 아수라가 으르렁댔다.
“좋아, 이번에는 네 왼손을 잘라주지!”
아수라가 이를 악물고 참고 버티는 지용을 다시 검으로 내리치려고 하자 피에로가 급히 나서서 호통을 쳤다.
“이 멍청한 놈아, 당장 멈춰!”
“멍청하다고? 네가 죽으려고 아주 환장을 했구나!”
화가 난 아수라는 그의 시퍼런 검으로 피에로의 목을 겨누었다. 그러나 피에로는 아수라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좌중을 훑어보고 입을 열었다.
“너희들의 주인은 너희들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것을 이해 못 하니 멍청하다고 했다!”
피에로의 질타에 아수라는 주춤했다. 특히 연오가 솔깃했는지 그에게 차분하게 물었다.
“대체 그 기회라는 것이 무엇이요?”
연오의 궁금증을 촉발시켰다는 자신을 얻은 피에로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설명했다.
“지금부터 내가 말할 테니 잘 들어. 소란 떨지 말고!”
“하지만 또다시 허튼소리를 하면 저 주인이라는 작자의 목을 내가 이 검으로 베어버리겠소.”
아수라의 검이 내 목덜미에 닿았다. 검의 차가운 금속 냉기에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피에로는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오히려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느 인디언 마을에 늙은 추장이 손녀에게 물었어. 하얀 늑대와 검은 늑대가 서로 싸우는데 누가 이길까 하고 말이야. 여러분들은 누가 이길 것 같나?”
피에로는 갑자기 좌중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경청하고 있던 자들이 제각기 대답했다.
“하얀 늑대지. 선(善)이 항상 이기니까.”
“아니야. 검은 늑대야. 악(惡)이 더 세거든.”
역시나 중구난방이었다. 그것을 이미 예상했다는 듯 피에로는 히죽 웃었다.
“정답은,”
피에로는 잠시 뜸을 들였다. 궁금해하는 모두의 시선이 자기에게 쏠리자, 그는 선심 쓰듯 입을 열었다.
“정답은 여러분이 먹이를 주는 늑대가 이깁니다.”
“아하,”
뜻밖의 답이었지만 좌중은 그 뜻을 알았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떡이었다. 피에로는 그 여세를 몰아가겠다는 듯 계속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이 아마라로 합쳐진다고 해서 여러분이 녹아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아마라의 몸속에 그대로 존재합니다.”
피에로의 열변에 아수라가 날이 선 칼날에 손가락으로 대어 보며 위협적으로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그게 죽은 것 아니야?”
칼의 표면에서 붉은 피가 한 줄기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것을 보자 공포로 나의 몸이 부르르 떨었다.
“아니요. 하지만 여러분이 강하면 언제든지 아마라를 밀쳐내고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피에로는 진정 아수라를 설득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의 노력에 아수라 대신 향귀가 영향을 받은 듯 툭 튀어나와 질문을 던졌다.
“ 강해진다고? 내가? 주인으로부터 먹이를 받아먹은 늑대가 강해지는 거처럼?"
향귀의 물음이 아주 적절하다는 듯 피에로는 고개를 크게 끄떡이었다.
“그렇죠. 그래서 통합은 죽음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기회라고 말한 것이요.”
“.....”
피에로의 대답에 향귀는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 더 이상 물고 늘어지지 않고 침묵했다. 다른 존재들도 모두 마찬가지인 듯 잠잠했다. 그들의 반응을 살핀 피에로는 거기에다 한번 더 쐐기를 박았다.
“여러분은 언제든지 저 주인의 사랑을 받아 가장 힘센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으음,”
그들의 고민이 더 깊어지는지 일부는 신음마저 내뱉었다. 잠시 후 아수라가 검을 검집에 다시 꽂으며 크게 말했다.
“좋아, 난 십계(十界)를 대표할 자신 있어. 난 주인님의 성품을 잘 알거든. 잔인한 구석이 좀 있지. 후후,”
사실상 십계 통합을 수락한다는 선언이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질 수 없다는 듯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흥, 나 향귀야말로 우리 주인님의 성향을 가장 잘 알아. 나랑 여러 번 잤거든. 호호,”
“웃기고 있네! 주인님은 돈을 제일 좋아해!”
십계의 존재들은 이제 웃어가면서 왁자지껄 자기 자랑을 해댔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마치 지옥으로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피에로가 그들이 방심하는 틈을 타 내게 재빨리 속삭이었다.
“자, 이제 저들의 마음을 잠시 회유해 놓았으니 빨리 통합 버전을 작동해!”
나는 피에로의 은근한 재촉에 즉시 휴대폰의 은색 바를 ‘십계’에서 ‘호구’ 쪽으로 세게 당겼다.
“......!”
그러자 잠시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서로들 자기의 힘이 더 세다며 자랑하던 내 애인들이 갑자기 황금빛에 휩싸이더니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와우,”
너무나도 황홀한 빛에 나는 감탄사를 내질렀다. 그 사이 높이 10미터까지 치솟던 빛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그리고 그곳에 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아마라가 방긋 웃으며 서 있었다.
“아, 아마라!”
나는 너무나도 반가운 나머지 체면도 잊고 달려가 아마라의 손을 덥석 부여잡았다. 아마라도 반색하고는 눈물을 글썽이었다.
“아, 주인님, 보고 싶었어요.”
“아마라,”
나는 격한 감정에 아마라를 힘껏 껴안았다. 어느 정도 흥분이 가라앉자 나는 피에로를 향해 물었다.
“역시 당신 말대로 다른 녀석들은 모두 아마라 속에 있는 거야?”
“그렇소.”
“정말 믿을 수가 없어!”
새로운 충격에 나는 말을 채 잇지 못했다.
“진실입니다.”
“세상에, 그 고결한 아마라가 아수라와 돈노의 모습을 갖고 있었다니?”
“그러니 아마라도 언제든지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 있어요. 조심하세요.”
“그건 절대 안 돼!”
나는 다시는 아마라를 잃을 수 없었다. 그러자 피에로는 나를 빤히 보더니 대꾸했다.
“그렇다면 인디언 추장의 말대로 하얀 늑대에게 먹이를 주세요. 즉 아마라에게 적합한 마음을 유지하고 있으면 저 아마라도 계속 당신 곁에 머무를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아수라처림 된다면 아마라의 모습은 사라지고 즉시 숨겨진 아수라의 모습이 나올 것입니다. 또 돈노처럼 될 수도 있어요. 알겠어요?”
“아, 그건 너무해. 아마라만 계속 안고 살 수 없을까? 더 이상 업그레이드는 안 되는 거야”
나는 혹시나 해서 간절한 표정으로 피에로에게 물었지만 그는 냉정하게 뚝 잘라 거절했다.
“그게 우주의 섭리인지라 휴대폰 기술진도 더 이상 어쩔 수 없답니다.”
“결국은 모든 게 사용자인 내 마음에 달렸다는 소리야?”
나의 짜증에 피에로는 떠날 채비를 하면서 대꾸했다.
“그렇소. 어쨌든 이제 난 내 할 일을 다 했으니 혹시라도 아마라가 아수라로 변해도 웬만하면 잘 데리고 살아요. 괜히 귀찮게 날 부르지 말고 혼자 잘해 보슈. 지금 사방에서 단속요원들이 나를 잡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어서 나도 위험하니까.”
피에로의 홀로그램은 엄살을 떨고는 무정하게도 순식간에 허공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
이제 내 방에는 나와 아름다운 아마라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나의 손을 부여잡은 아마라는 나를 향해 아름답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마라가 언제 아수라처럼 변할지 몰라 나는 조바심이 났다.
그날부터 나는 피에로의 충고대로 아름다운 아마라를 잠시라도 내 곁에 두기 위해서 하얀 늑대에게 먹이 주는 연습을 맹렬히 해야 했다.
그것이 내가 열 명의 애인과 잘 사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내게는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운 구속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