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맙소사! 난 다이아몬드를 낳았다.
한편 어이없게 캄캄한 동굴에 갇혀버린 유진은 아연실색했다.
“열어! 씨발!”
그는 욕설을 퍼부으며 입구 쪽으로 미친 듯이 뛰어나갔다. 그러나 단단한 동굴 입구에 부딪힌 듯 이마가 얼얼했다. 하지만 그깟 통증이 문제가 아니었다. 유진은 주먹으로 미친 듯이 동굴 입구를 내리쳤다. 하지만 동굴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씨발, 지우 네가 감히 나를 속여? 지옥에 떨어질 년!”
넋이 나간 유진은 자기를 함정에 빠트린 지우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그래봤자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결국 자신이 을이라고 깨달은 유진은 지우에게 애걸복걸했다.
“지우, 제발 나 좀 살려 줘!”
그의 절규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마침내 동굴 속에서 허무하게 죽는다는 현실감에 유진은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공포에 휩싸이고 말았다.
영겁(永劫)의 시간이 지나간 것 같았다.
“……!”
암흑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결국 기절했던 유진은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그는 불현듯 자기 아랫배에서 한 가닥 하얀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아지랑이처럼 하늘거리던 그 하얀빛은 점점 커졌다. 이윽고 그것은 홀연히 백사(白蛇)가 되어 똬리를 틀었다.
“뱀?”
그는 겁에 질려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서서히 똬리를 틀던 백사는 커다란 아가리를 벌려 주위의 암흑을 마구 집어삼켰다. 마치 수백 년 동안 굶주려 있었던 듯,
잠시 후 백사의 몸에서 푸른빛의 강렬한 빛줄기가 삐져나왔다. 그것은 이윽고 다이아몬드의 육각 형태로 응축되어 갔다.
“다이아몬드?”
유진이 놀란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그 형태는 차츰 강렬한 빛을 발했다. 마침내 하나의 빛으로 응축된 그 빛은 마치 용접공의 뜨거운 불꽃처럼 무섭게 발광(發光)했다. 암흑을 뚫어버리려는 듯,
그리고 마침내 그곳에 놀랍게도 작은 구멍이 생겼다. 겨자씨만 했던 구멍은 순식간에 넓혀져 갔다. 한 사람 정도 드나들 수 있는 커다란 공간이었다. 그 공간으로 다시 새로운 느낌의 강렬한 빛이 거대한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아아,”
강렬한 빛은 유진의 눈 속으로 바늘처럼 아프게 쏟아져 들어왔다. 그는 본능적으로 눈을 질끈 감고 신음했다. 잠시 후 격렬한 통증이 어느 정도 사라졌다. 유진은 서서히 눈을 떴다. 그의 흐릿한 시야에 사람의 희미한 실루엣이 서너 개 드러났다.
“……?”
그 실루엣은 사람들의 얼굴로 변했다. 그것을 노려보던 유진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앗! 당신들은?”
그들은 다름 아닌 지우의 세 오빠였다. 그들은 유진이 살아남은 것을 확인하고는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야, 다행히 저 새끼가 잘 버티었네!”
흑랑이 너무 반가운지 유진의 손을 부여잡고 눈을 흘겼다.
“인마, 동굴 출입구를 따는 데 3일이나 걸렸어!”
그의 푸념에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3일? 오늘이 며칠이요?”
“5월 22일이지. 어쨌든 생환을 축하한다!”
흑랑은 유진을 요란스럽게 환영했다. 그런데 흑랑의 환대가 끝나기 무섭게 백랑과 청랑이 갑자기 유진에게 달려들어 그의 양팔을 꽉 붙잡았다.
“왜 그래? 놔! 이놈들아!”
유진이 거칠게 반항했지만, 두 장정의 억센 힘을 당해낼 수 없었다.
“우리가 너를 구해줬는데 왜 앙탈이야? 잔말 말고 따라와!”
그들은 유진을 어디론가 질질 끌고 갔다. 여러 갈래의 작은 동굴을 지나 그들이 다다른 곳은 낡고 녹슨 소각로가 두어 개 설치된 꽤 넓은 동굴이었다.
스산한 분위기가 감도는 동굴 한가운데에 판자로 얼기설기 만든 낡은 나무 침상이 하나 설치되어 있었다. 침상 위에 붉은 핏자국이 군데군데 말라붙어 있었다.
“당, 당신들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핏자국을 발견한 유진은 기겁했다. 백랑과 청랑은 유진을 나무 침상에 강제로 눕혔다. 흑랑이 발버둥 치는 그에게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인마, 겁먹지 마, 잠깐이면 되니까?”
“대체 내게 왜 이러는 거요?”
“이제 때가 됐어.”
“때라니요?”
“네 몸속에서 자라고 있는 유리암(癌)을 떼어낼 때가 됐어!”
독한 소독약 냄새를 풍기는 흑랑은 유진의 아랫배를 손가락으로 여기저기 눌러보며 중얼거렸다.
“유리암?”
“매우 희귀한 암이야. 쓸개 일부가 유리로 변하는 아주 무서운 병이지.”
흑랑은 심각한 표정으로 내뱉었다. 유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얼른 자기 아랫배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정말 그의 아랫배가 살짝 볼록하게 튀어나온 것이 얼핏 보였다.
“아니야! 다이아몬드라고 했어!”
유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거세게 반박했다.
“다이아몬드? 누가 그 따위 소리를 해?”
딱딱한 유진의 배를 살살 더듬던 흑랑은 동작을 멈추고 유진을 윽박지르듯 쏘아보았다.
“지우가 그랬어! 지우가!”
유진이 악을 쓰자, 머리맡에서 그를 붙잡고 있던 백랑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젠장, 지우 걔는 정말 쓸데없는 소리를 했군. 어쨌든 그 다이아몬드도 유리암의 한 종류야.”
백랑이 대충 얼버무리며 흑랑에게 눈짓을 하자 그는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다는 듯 수술복 주머니에서 예리한 메스를 꺼내 들었다.
“자, 암인지 다이아몬드인지 일단 한번 열어보자고!”
“아, 안돼!”
“잠깐이면 돼!”
흑랑은 메스를 입에 물고 황급히 손을 뻗어 유진의 딱딱한 부분을 짚었다.
“사람 살려!”
당장이라도 예리한 메스가 자신의 배를 뚫고 들어올까 봐 혼비백산한 유진은 발버둥을 치며 동굴이 떠나가도록 비명을 질렀다. 필사적인 유진의 발길질에 그만 흑랑의 메스가 멀리 날아가고 말았다.
“이 새끼가! 형님들, 그 메스 좀 집어줘요!”
“야, 시간 없어! 그냥 손으로 뽑아내!”
백랑이 귀찮다는 듯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흑랑은 할 수 없다는 듯 유진의 배에 손을 대고는 위아래로 밀어 올리는 행동을 반복했다. 하지만 유진은 소금 세례를 맞은 미꾸라지처럼 더욱더 처절하게 저항했다.
“가만있어! 이놈아!”
눈을 부라리며 유진의 뱃속에 압력을 가하는 흑랑의 이마에 굵은 핏줄이 툭툭 불거졌다.
“악!”
잠시 후 유진이 아이를 막 출산하는 임산부처럼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놀랍게도 그의 입에서 마침내 한 줄기 빛이 새어 나왔다.
“앗, 나온다!”
그 광경을 보고 성질 급한 흑랑이 유진의 입을 벌리고 자기 손가락을 거칠게 밀어 넣었다. 손가락으로 유진의 목구멍을 마구 쑤시던 흑랑은 마침내 형제들을 돌아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 심 봤다!”
극도의 흥분 속에 그가 펼쳐 보인 손바닥 위에는 아몬드 크기 만한 다이아몬드가 푸른빛을 내뿜고 있었다.
“야, 나도 좀 보자!”
다른 두 형제도 흑랑의 손바닥에서 찬란하게 푸른빛을 내뿜고 있는 다이아몬드를 보고는 감탄사를 내질렀다.
“이렇게 멋있는 다이아몬드는 난생처음 본다!”
“왜 우리 몸에서는 노란색만 나오고 이런 색깔은 안 나올까?”
“그래서 인간의 것이 필요한 거야.”
다이아몬드를 사이에 두고 지우 오빠들이 감탄과 탄식을 주고받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그때 마치 아이를 출산한 산모처럼 기진맥진하여 침상에 축 처져있던 유진은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흑랑의 손바닥에 놓인 다이아몬드의 찬란한 빛이 그의 시선을 확 끌어당겼다.
“……!”
유진은 황홀한 다이아몬드가 자기 몸에서 나왔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내 뱃속에서 저런 다이아몬드가 나오다니……불가사의야!”
경이로운 시선으로 다이아몬드를 잠시 넋 나간 듯이 바라보고 있던 유진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조용히 침상에서 내려왔다. 살그머니 흑랑의 뒤로 다가간 유진은 흑랑이 들고 있던 다이아몬드를 번개처럼 낚아챘다. 그러고는 동굴의 출구를 향해 냅다 도망쳤다. 방금 거의 다 죽어가던 사람답지 않은 무서운 속도였다.
“아니, 저 새끼가 미쳤나? 이리 내놔! 그건 우리 거라고!”
방심하다 얼떨결에 다이아몬드를 빼앗긴 지우 오빠들은 욕설을 퍼부으며 미친 듯이 유진을 쫓아갔다. 결국 유진은 동굴 입구에 있던 소각로 앞에서 지우 오빠들에게 포위당하고 말았다.
퇴로가 막힌 유진은 얼른 다이아몬드를 삼켜버렸다. 그러고는 마침 앞에 있던 소각로에 꽂혀있던 1미터 크기의 쇠꼬챙이를 재빨리 뽑아 들었다. 매우 날카로운 쇠꼬챙이는 벌겋게 불에 달구어져 있었다. 그 바람에 지우 오빠들도 섣불리 덤벼들지 못했다.
“다가오면 모두 죽여버릴 거야!”
“이 새끼야! 죽고 싶지 않으면 빨리 그것 내놔!”
분노로 얼굴이 벌게진 백랑은 유진의 손을 향해 벌리면서 무섭게 으르렁댔다.
“안돼! 이것은 내 거야!”
유진은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쇠꼬챙이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극렬하게 저항했다.
“네 것이라고? 이 자식이 정말 죽어봐야 제정신을 차릴 건가?”
다이아몬드를 빼앗겨서 그런지 백랑의 핏발 선 눈에도 살기가 가득했다. 그도 소각로에서 시뻘겋게 달군 쇠꼬챙이 하나를 쓱 빼 들더니 유진의 배를 겨누고 성큼 다가섰다.
“그래 나도 곱게 죽지는 않을 거야! 이건 내가 만든 거야! 다가오지 마!”
목숨을 잃을 위기 속에서도 유진은 다이아몬드를 절대 빼앗길 수 없다는 듯 고래고래 맞받아쳤다.
“뭐? 네가 만들었다고?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내 몸속에서 생겼으니 당연히 내 거지!”
“하지만 그것을 만든 씨앗은 우리의 신물(神物)이었어. 넌 단지 몸만 제공했을 뿐이야!”
“헛소리 그만하고 이 다이아몬드를 갖고 싶으면 돈부터 내놔!”
자신을 향해 서서히 옥죄며 다가오는 백랑의 쇠꼬챙이를 핏발이 선 눈으로 극도로 경계하며 유진은 소리쳤다.
“뭐? 돈을 달라고?”
“그렇다! 나한테서 빼앗아 간 007 가방을 다시 가져와!”
유진이 큰 소리로 다시 자신의 요구를 확실히 하자 백랑은 한심하다는 듯 뇌까렸다.
“흥, 너도 결국 돈이었군.”
“그래. 난 돈독이 오른 사람이다. 어쩔래? 아무튼 돈을 내놓지 않으면 이것을 절대 내줄 수 없어!”
유진이 더욱 강경하게 나왔다. 흑랑은 피식 웃었다.
“절대 줄 수 없다고? 네놈이 우리 셋을 당해낼 수 있을 거 같아?”
비아냥거리던 그는 주머니에서 번쩍이는 다른 메스를 꺼내 들고 위협하듯이 그에게 흔들어댔다.
“그래. 나도 죽겠지만 너희들도 재수 없는 놈은 이 쇠꼬챙이에 의해 죽을 것이다.”
유진이 두 눈에 광기를 번뜩이며 소리쳤다. 기세등등하던 지우 오빠들도 순간 멈칫했다. 백랑은 자신들도 재수 없으면 난투극을 벌이다가 다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지 조금 누그러진 표정으로 설득에 나섰다.
“이봐, 형씨, 오늘은 외상으로 안 될까?”
“노! 외상은 절대 안 돼! 현찰을 갖고 와!”
“현찰? 우리는 지금 돈이 없는데……”
“그렇다면 이것을 포기해!”
유진은 싸늘하게 내뱉고는 쇠꼬챙이를 겨눈 채 동굴 출입구를 향해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그의 모습을 보고 다급한 백랑은 자신의 두 동생에게 눈짓했다. 흑랑과 청랑이 고개를 끄덕이자, 백랑은 주저하지 않고 쇠꼬챙이를 치켜들고 유진에게 덤벼들었다.
“어딜 도망가! 이 새끼야!”
깜짝 놀란 유진이 얼떨결에 백랑의 꼬챙이를 자신의 것으로 막아냈지만 뒤이어 들어오는 흑랑과 청랑의 공격은 막아낼 수가 없었다. 흑랑이 번개처럼 날린 주먹에 배를 제대로 얻어맞은 유진은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이 자식에게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어!”
흑랑은 잽싸게 유진의 타고 앉으며 소리쳤다.
“안돼!”
유진은 자신의 배에 메스를 그으려는 흑랑의 손을 양손으로 부여잡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 그 새끼 정말 시끄럽네! 저리 비켜! 내가 아예 이 자식의 숨통을 끊어버릴 테니까!”
버럭 소리를 지른 백랑은 흑랑을 밀쳐내고 유진의 가슴팍을 향해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는 듯 쇠꼬챙이를 높이 치켜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