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다이아몬드를 노리는 도둑들
그날 저녁부터 황호 부부는 공언한 대로 유진을 사위처럼 극진하게 대접했다. 밥을 먹을 때에도 지우 옆에 앉혔다. 지우는 조금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녀의 오빠들은 불만이 가득한 듯했지만, 청파의 기세에 눌려 더 이상 찍소리도 못했다.
어쨌든 유진은 불편한 저녁을 얻어먹고 예의상 황호 부부와 담소를 나누다가 밤늦게 골방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는 유진은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다이아몬드 생각으로 가득 찼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뱃속에서 다이아몬드가 생겨나다니……땅속 깊은 곳에서만 생성되는 줄 알았던 다이아몬드가 자기 몸속에서 자라나다니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또한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거대한 슈퍼 다이아몬드의 존재 역시 그에게는 대충격이었다. 그는 마치 마법의 나라에 갑자기 훅 날려온 것 같았다.
또한 그를 쉽게 잠들지 못하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지우와의 짜릿한 키스 때문이었다.
젊은 미인과 낯선 키스. 짜릿했다.
그는 호랑이 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지우와 키스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황홀했다. 지우도 제 어미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하는 눈치였지만 분명 그녀의 입술도 불처럼 뜨거웠었다. 가희와의 키스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지우의 입술이 왜 그렇게 뜨거웠었지? 꼭 청파의 강압 때문에 나랑 키스한 것은 아닌 것 같아. 지우도 나를 마음에 두고 있었나?)
시간이 흘러갈수록 유진의 심장은 이상한 설렘에 점점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유진이 묘한 감정에 몽롱하게 빠져들 무렵 그의 본능이 그에게 경고의 종을 무섭게 난타했다.
(멍청아, 지우는 너를 동굴 속에 감금했었던 위험한 여자야. 조심하라고!)
본능은 지우는 사랑의 여신이 아니라 죽음의 사신(死神)이라고 그를 끊임없이 일깨워 주었다.
(하지만 그녀의 주장대로 동굴 감금은 다이아몬드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절차일 수도 있었어. 내가 너무 과민하게 반응한 것인지도 모르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지우에 대한 그의 의구심이 다시 누그러졌다. 사실 사신(死神)으로 치자면 지우 오빠들이 가장 위험했다. 지금은 어미의 위세 때문에 잠시 물러났지만, 언제 자기를 덮칠지 몰랐다.
또한 황호부부도 지금은 자신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 있지만 언제 갑자기 변심하여 자기를 아들들에게 던져줄줄 몰랐다.
(내가 지우의 저주를 풀어준다고? 무슨 저주를? 대체 나를 얼렁뚱땅 데릴사위로 들이려는 그들의 꿍꿍이가 뭘까?)
모든 것이 수상했다. 빨리 다이아몬드를 챙겨 살인자 소굴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런데 지우의 뜨거운 입술이 자꾸 그의 발목을 잡았다.
다이이몬드, 사랑 그리고 죽음.
유진은 밤새 두려움과 설렘의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잠을 설쳐버렸다. 결국 그는 어지러운 머리를 좀 식힐 겸 자리에서 일어나 골방을 나갔다. 웬일인지 지우는 지난번처럼 불침번을 서지 않았다. 가족은 건드리지 말라는 청파의 경고 때문에 자기 오빠들이 골방 근처에는 얼씬도 안 할 것을 확신한 모양이었다.
어느새 사방은 깊은 어둠 속에 잠겨 고요했다. 그는 마당을 조용히 거닐었다. 어느 순간 그의 발길이 사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
그런데 그가 사당에 거의 다다랐을 때 수상한 물체가 지우 방과 지우 오빠 방 사이의 통로로 숨어드는 인기척이 났다. 그가 뒤돌아보니 건장한 사내였다. 유심히 바라보니 지우네 식구는 아니었다. 수상한 그자는 지우 오빠 방 벽에 바짝 붙어 안채의 동정을 살피기 시작했다.
“밤손님?”
그자가 도둑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유진은 마침 지우의 방 창 밑에 기대어 있던 1.5미터 길이의 참나무 몽둥이를 움켜쥐고는 살그머니 침입자의 뒤로 다가갔다.
“이 새끼!”
그리고 몽둥이로 침입자의 오른쪽 어깨를 야무지게 내리쳤다.
“억!”
그에게 불의의 기습을 받은 침입자는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나가떨어져 기절하고 말았다.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서 엎어진 침입자를 똑바로 눕히던 유진은 깜짝 놀랐다.
“이 사람은 지우 오빠들을 추격하던 헌터네!”
그리고 그자가 자신에게 다이아몬드 주머니를 맡겼던 남자를 쏴 죽였던 기억도 떠올랐다. 놀란 유진이 헌터의 소지품을 뒤지니 그의 트렌치코트 주머니에서 놀랍게도 검은색 수류탄 한 발과 권총이 나왔다.
“헐, 이놈이 집을 통째로 날려버리려고 했던 거야?”
헌터의 무서운 음모를 깨닫고 몸서리치던 유진은 그것들을 조심스럽게 자신의 상의 주머니에 넣었다.
“사방에 도둑놈들 천지니 나도 대비해야지.”
그는 혼자 중얼거리며 지우네 안채를 돌아보았다. 안채는 아주 위험한 사태가 일어날 뻔했었지만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사당 쪽으로 돌아섰다.
“어차피 나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다이아몬드를 훔쳐 가겠군. 그러기 전에 내가 먼저 챙겨야겠군.”
그의 눈에서 예전에 보지 못했던 탐욕의 광기가 번들거렸다. 우연히 얻은 수류탄과 권총 한 자루가 유진을 대담하게 만든 것 같았다.
결단을 내린 그는 서슴없이 사당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사당 안은 변함없이 환했다.
그는 곧장 화성의 미니어처로 달려가 성곽에 놓여있는 작은 다이아몬드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바지 주머니 속에 다 쑤셔 넣었다. 성곽 위의 모든 다이아몬드를 모두 쓸어 담자, 그의 바지 주머니가 금방 불룩하게 튀어나왔다.
그러나 유진은 그것 갖고는 도저히 욕심이 안 차는 듯 슈퍼 다이아몬드를 양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이왕 도둑놈 소리 들을 바에야 차라리 이놈을 가져가서 대도(大盜) 소리를 듣는 것이 훨씬 낫지. 흐흐,”
비굴한 웃음을 흘리던 유진은 젖 먹던 힘을 다해 슈퍼 다이아몬드를 뽑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슈퍼 다이아몬드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유진이 낑낑대면서 안간힘을 다할 때 갑자기 어디선가 천둥소리 같은 호통이 터져 나왔다.
“어떤 놈이 감히 제국의 신물(神物)을 훔치려고 하느냐!”
호통이 끝나기 무섭게 슈퍼 다이아몬드 주위에 정체불명의 장수 4명이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건장한 체격에 울긋불긋한 꽃무늬 갑옷을 걸친 신장(神將)들이었다. 그들은 장검을 치켜들고 험상궂은 표정으로 곧장 유진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사찰의 탱화에서나 보았을 것 같은 신장(神將)의 등장에 소스라치게 놀란 유진은 얼른 슈퍼 다이아몬드에서 떨어졌다. 그는 단상 위에 잠시 놓아두었던 권총을 재빨리 집어 들어 그들을 조준하면서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누, 누구야, 당, 당신들은?”
“우리는 슈퍼 다이아몬드를 수호하는 4대 천왕(四大天王)이다!”
부리부리한 붉은 눈알을 굴리던 4대 천왕들은 자신들의 장검으로 바닥을 일제히 내려치며 호통을 쳤다. 그 진동에 사당 전체가 뒤흔들렸다. 너무 놀란 나머지 유진은 무턱대고 4대 천왕을 향해 권총을 발포했다.
“탕탕,”
총알은 4대 천왕들의 이마를 정통으로 관통했다. 하지만 그들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유진의 총질에 더욱 격분한 듯 4대 천왕들은 일제히 장검을 빼어 들고 그를 겨누었다. 그들 중에 비파를 등에 메고 있던 천왕이 왼손에 시퍼런 장검을 거머쥐고 그에게 다가왔다.
“이놈이 감히 우리에게 총질해! 이 지국천왕(持國天王)이 네놈의 머리통을 박살 내주마!”
불호령과 함께 지국천왕(持國天王)의 시퍼런 칼날이 바람을 일으키며 유진의 머리를 겨누고 날아왔다.
“으헉!”
그는 아슬아슬하게 검을 피했다. 하지만 그의 머리카락이 한 움큼 날아갔다. 혼비백산한 유진은 무작정 사당 밖으로 도망쳤다. 그제야 사당의 비상사태를 감지했는지 지우의 온 가족들이 잠옷 바람으로 마당에 나와 있었다. 그중에는 지우의 놀란 얼굴도 보였다.
“유진 씨?”
지우는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뭔가 얘기를 하려는 듯 서둘러 손을 들었다. 하지만 유진은 그냥 그녀를 지나쳐서 미리 파악해 두었던 오솔길로 죽어라 내달렸다. 그의 도주를 발견한 백랑은 재빨리 유진을 쫓아가면서 동생들을 향해 버럭 화를 냈다.
“뭐 해? 저 도둑놈 새끼를 잡지 않고!”
유진이 쥐고 있던 권총 때문에 겁먹고 엉거주춤하고 서 있던 흑랑과 청랑도 비로소 유진을 쫓아갔다. 그들과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유진은 더욱 힘을 내 죽기 살기로 도망쳤다.
“여기서 반드시 탈출해야 해!”
유진은 지우 오빠들에게 잡히면 죽을 것이 뻔하다는 절박한 생각에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도망쳤다. 하지만 놀랍게도 지우 오빠들은 금방 유진의 턱밑까지 쫓아왔다. 지우 오빠들의 거친 숨소리가 바로 등 뒤에서 생생하게 들려왔다.
“이크, 안 되겠어! 무기를 써야지!”
다급한 유진은 상의 주머니에서 수류탄을 꺼내 군대에서 배웠던 기억을 되살려 그들을 향해 힘껏 던졌다. 검은 연기를 뿜으며 수류탄은 그들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너무나 급하게 던진 탓인지 엉뚱한 곳에 떨어져 폭발했다. 굉음과 함께 순식간에 주변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하지만 잠시 후 운 좋게 살아남은 지우 오빠들은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를 헤치고 다시 쫓아왔다.
“젠장,”
그 모습을 보고 똥끝이 탄 유진은 그들을 향해 급히 권총을 쏘았다. 하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맞지 않았다. 급기야 총알도 다 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더 이상 쓸모없는 권총을 땅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러고는 미친 망아지처럼 산비탈을 달려 내려갔다. 그 와중에도 그는 바지 주머니에서 소중한 다이아몬드들이 빠지지 않도록 손으로 꽉 누르고 달렸다.
“야, 이 자식아, 거기 서!”
지우 오빠들도 유진 못지않게 집요하게 쫓아왔다. 그 탓에 유진이 화성(華城)을 다 벗어나기도 전에 곧 그들에게 잡힐 만큼 거리가 다시 좁혀졌다.
“이놈의 새끼! 넌 이제 죽었어.”
급기야는 108 계단이 얼마 안 남았을 때 백랑의 씩씩거리는 거친 숨소리가 바로 뒤에서 밀려왔다.
“으헉,”
혼비백산을 한 유진은 가파른 108 계단을 향해 몸을 날렸다.
“앗!”
그런데 구르다시피 계단을 거의 다 내려가던 유진은 그만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앞으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덕분에 그는 간발의 차이로 막 그를 낚아채는 백랑의 손아귀에서 극적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
“윽!”
그는 벌떡 일어나려다 비틀거렸다. 다리를 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는 통증을 참고 다리를 절뚝거리며 화성(華城)의 매표소를 향해 필사적으로 걸어 나갔다. 마침내 그는 매표소를 통과하고 화성(華城) 밖으로 나갔다.
그때야 비로소 유진은 두려운 시선으로 뒤돌아보았다. 새벽녘의 어둠이 깔린 매표소 뒤쪽에서 지우 오빠들이 주먹질을 해대며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끔찍했던 4대 천왕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야, 이 개새끼야, 당장 죽여버리고 말겠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은 욕설만 퍼부을 뿐 매표소를 넘어서지 않았다. 어쨌든 화성(華城)에서 무사히 탈출한 것을 깨달은 유진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바보 멍청이들아, 잘 있어!”
그는 지우 오빠들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내밀어 조롱의 손 인사를 날리고는 동녘의 여명에 붉게 물든 시내를 향해 돌아섰다.
“자, 이제 이쁜 내 새끼들을 꺼내볼까.”
장엄한 붉은 여명을 받으며 당당하게 몇 걸음 떼던 유진은 문득 다이아몬드 생각이 난 듯 재빨리 바지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었다. 그런데 부푼 기대를 안고 바삐 주머니 속을 뒤지던 유진은 화들짝 놀랐다.
창백한 얼굴로 그가 허겁지겁 손을 빼어보니 다이아몬드 하나만 달랑 잡혀 나왔다.
“오, 안돼!”
그는 기겁했다. 그리고 바지 주머니를 완전히 홀랑 까서 미친 듯이 몇 번이나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 많던 다이아몬드들은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하나만 처량하게 남아 있었다. 아마도 아까 그가 108 계단 끝에서 넘어졌을 때 대부분 주머니 밖으로 튀어 나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직도 지우 오빠들이 씩씩거리며 버티고 있어서 되돌아갈 수가 없었다.
“맙소사! 그럼 지금껏 말짱 헛수고한 거야?”
절규와 다름없는 비명을 지르던 유진은 결국 땅바닥에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잠시 후 겨우 정신을 차린 그는 팔달산을 슬픈 시선으로 돌아보았다. 108 계단 아래에서 아우성치던 지우 오빠들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그는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칠까 봐 번개처럼 그곳으로 뛰어갔다.
“절대 이대로 포기할 수 없어!”
그는 어두운 풀숲이며 계단 옆 배수로까지 가리지 않고 미친 듯이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다이아몬드들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이 근처였는데. 이제 어떡해? 아,”
그의 마지막 희망이 완전히 사라졌다.
하늘이 무너졌다. 땅이 꺼졌다.
사무치도록 원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