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華城)에서 슈퍼 다이아몬드 캐는 법 2

32화: 공존의 덫

by 김정걸

6월 13일 오전 지우와 박쥐 대왕 대마령은 팔달산 정상에 있는 서장대(西將臺)에서 원탁을 사이에 두고 서로 노려보며 앉아 있었다.

지우의 뒤편에 그녀의 세 오빠와 유진이 앉아 있었고 대마령의 뒤에는 최측근 소령과 그의 딸 미리내가 긴장된 표정으로 서 있다. 그런데 미리내는 그 누구보다도 유진에게 애틋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고개를 절제절레 흔들더니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엷은 한숨을 토해냈다.

어쨌든 회의가 시작되자 지우는 대마령을 쏘아보며 먼저 입을 열었다.

“대체 나를 보자는 용건이 뭐냐?”

“일단 차부터 한잔 마시고 해도 될 것 같은데.”

대마령은 지우에게 차를 권하고는 자신도 자기 앞에 놓인 녹차 잔을 들더니 느긋하게 마셨다.

“우리는 곧 서로 전쟁할 수도 있는 사이야. 이렇게 한가하게 차나 마실 거라면 난 그만 간다.”

지우가 대마령에게 쏘아붙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니까 대마령은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고 서둘러 말문을 열었다.

“성질머리 하고는……좋아, 나도 결론부터 말하겠어. 난 더 이상 너희들하고 싸우고 싶지 않아. 다 같이 평화롭게 살고 싶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우가 화가 나는 듯 손바닥으로 원탁을 탕! 하고 내리쳤다.

“그건 너희들이 당장 인간들에 대한 살생 행위를 멈추면 될 일이야!”

지우의 질책에 대마령도 질 수 없다는 듯 똑같이 원탁을 내리쳤다.

“우리 흡혈박쥐가 다른 생물들의 피를 빨아먹고 살아야 하는 것은 대자연의 섭리다. 그 누구도 우리를 비난할 수 없어!”

“하지만 지금은 도를 넘었다. 당장 사람들에 대한 흡혈 행위를 멈춰!”

“못 하겠다면?”

대마령은 눈빛을 무섭게 번쩍이며 위협적으로 나왔다. 하지만 그것에 기죽을 지우가 아니었다.

“무력으로 너희들을 모두 전멸시키고 말겠다!”

지우가 눈을 부릅뜨고 준엄하게 경고하자, 대마령은 콧방귀를 뀌었다.

“흥, 보다시피 너희들도 피해가 엄청날 텐데.”

그의 협박에 지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는 내가 너희들을 일시에 섬멸시킬 비장의 카드를 모르는군.”

“비장의 카드?”

대마령은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렇다. 슈퍼 다이아몬드를 제자리에 갖다 놓으면 너희들은 그날로 모두 끝장이다.”

지우의 으름장에 대마령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흥, 너는 그렇게 못할걸!”

“내가 못 한다고?”

“그래. 너는 우리를 이 세상에 불러들인 당사자니까!”

“당사자?”

지우가 되묻자, 대마령은 유진을 슬쩍 흘겨보았다.

“너는 저 유진과 사랑놀이를 하기 위해서 슈퍼 다이아몬드를 인간 세상에 가지고 나왔던 아니냐?”

“뭐라고?”

“그런 네가 그것을 다시 되돌려놓는다고? 흥, 어림없지.”

대마령이 빈정대며 정곡을 찌르자 켕기는 것이 있는 지우는 크게 반박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우는 매우 화가 난 듯 벌떡 일어났다.

“그래 한번 끝까지 싸워보자!”

그녀가 당장이라도 싸울 듯이 쏘아붙이자, 대마령은 의외로 히죽 웃더니 자신의 진짜 속내를 털어놓았다.

“노! 나도 더 이상 쓸데없는 살생을 하기 싫다! 나는 너희와 공존(共存)을 원하거든.”

대마령이 공생이라는 말을 꺼내자 지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공존? 대체 무슨 수작이야?”

“말 그대로 우리와 공존하는 공간을 만들자는 거지.”

대마령은 매우 진지하게 대꾸했다.

“공간? 같이 살자는 뜻인가?”

지우가 다시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대마령은 그렇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렇지. 우리가 서로 약속하고 그것을 지키면 공존은 가능하지 않을까?”

“대체 어떤 약속을 하겠다는 거냐?”

“지우, 너는 슈퍼 다이아몬드를 다시 행궁에 갖다 놓지 않고 우리 흡혈박쥐들 또한 인간의 피를 절대로 마시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는 거야. 그럼 박쥐와 인간은 서로 사이좋게 살 수 있어. 어때?”

대마령이 대단한 프로젝트라도 발표하듯이 설명을 마치고 의향을 묻자, 지우는 눈을 반짝이다가 다시 미심쩍어했다.

“하지만 너희들이 과연 흡혈 본능을 이길 수 있을까?”

“우리도 대의를 위해서 그 정도의 작은 본능 정도는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대마령은 지우의 의구심을 확실하게 불식시키려는 듯 또박또박 힘주어 강조했다. 그래도 지우는 여전히 대마령이 숨기고 있는 속내를 파악하려는 듯 그를 무섭게 쏘아본다.

“금욕이라도 하겠다는 말이야? 그럼으로써 너희들이 얻는 것이 대체 뭐지?‘

그녀가 질문을 던지자, 대마령은 그녀의 환심을 사려는 듯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화답했다.

“우리는 슈퍼 다이아몬드의 빛 때문에 암흑 속에서 숨어 사는 것보다 금욕해서라도 어둠과 빛의 중간인 회색 지대에서 살고 싶은 것뿐이다.”

“흠, 절반의 승리라도 취하겠다는 뜻이지.”

지우는 어느 정도 대마령의 충정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 모습에 매우 고무된 듯 대마령은 쐐기를 박듯이 결연한 얼굴로 한마디 덧붙였다

“그렇다. 만약 우리가 그 약속을 어기면 너는 언제든지 슈퍼 다이아몬드를 행궁으로 다시 갖다 놓을 수 있다.”

대마령이 다시 한번 명확하게 자신의 의지를 밝히자 지우도 마침내 결단을 내린 듯 양손으로 원탁을 힘 있게 내리쳤다.

“좋아, 너의 제안을 단순한 약속이 아닌 협정으로 격상시켜 탄탄하게 보장하는 것이 어떤가?”

약속을 협정으로 격상시키자는 지우의 제안에 대마령의 눈이 번쩍 빛나고 입이 귀에 걸렸다.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바야!”

대마령이 반색하자, 백랑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지우 앞에 나섰다.

“폐하, 우리는 저놈들을 완전히 소탕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하오니 여기서 쉽게 협상하면 안 됩니다.”

백랑이 노골적으로 반대를 하자, 지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론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우리도 만만치 않은 피해를 입을 겁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마령이 쐐기를 마저 박으려는 듯 재빠르게 끼어들었다.

“그렇지. 만약 전쟁을 끝까지 고집한다면 우리도 총력전을 다해 화성 제국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도 총공격할 것이다. 그러면 인간 세상은 초토화될 것이다.”

“이놈이 감히 어디서 협박해!”

분개한 백랑이 주먹으로 대마령을 치려고 하자, 깜짝 놀란 지우가 재빨리 그를 막아섰다.

“무엄하다! 친위대장이 감히 짐의 일에 간섭하다니! 물러서!”

지우는 백랑에게 노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 순간 백랑에게 지우는 여동생이 아닌 절대 권력자 여왕으로 비쳤다. 지우의 호령에 찔끔한 백랑은 얼른 꼬리를 내리고 뒤로 물러섰다.

지우가 협상에 반대하는 오빠를 강력히 제압하자, 대마령은 얼굴에 가득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지우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흠, 지우 당신의 의지가 대단하군. 난 당신을 믿고 정식으로 평화 협정을 맺겠소.”

지우도 주저 없이 그의 손을 맞잡고 힘차게 악수했다.

“좋아. 서로 평화롭게 공존하는 평화 협상을 당장 맺지.”

잠시 후 마침내 대마령과 지우는 양측 측근들이 준비해 온 평화 협정서에 상호서명하고 그것을 교환했다. 양측 간에 협상이 순조롭게 끝나자, 유진은 지우에게 엄지 척했다.

“지우, 잘했어. 그런데 화성(華城) 제국은 괜찮겠어?”

“화성(華城) 제국의 백성들도 이제는 생로병사의 순리에 따라 살아야 해요. 그게 우주의 법칙이니까.”

“하긴. 어쨌든 큰일 해냈어. 우리 오늘 저녁 자축 파티나 할까?”

“좋아.”

지우는 좋아라 하면서 유진의 팔짱을 끼고 서장대를 떠났다. 유진과 지우 두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대마령의 측근인 소령이 그에게 다가와 매우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대왕님, 정말로 인간과 공존하려는 것입니까?”

“무슨 소리야!”

지금까지의 우호적인 표정과는 달리 대마령은 측근에게 눈에 핏발을 세우며 벌컥 화를 냈다.

“아까 지우와 평화 협정서에 서명하지 않았습니까?”

“바보야, 그깟 서명이 뭐가 대수야? 그건 위장 전술일 뿐이다.”

“위장 전술이라고요?”

어리둥절한 소령이 다시 묻자, 대마령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일종의 평화공세지.”

“평화공세요?”

소령은 여전히 그 뜻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그런 그를 보고 대마령은 딱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차더니, 곧 자신의 깊은 속내를 털어놓았다.

“우리는 지우를 안심시키고 시간을 버는 거야.”

“아, 그사이 슈퍼 다이아몬드를 완전히 파괴시켜 버릴 좋은 전략이라도 갖고 계신가요?”

소령이 눈빛을 반짝이며 묻자, 대마령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래.”

“그게 뭐죠?”

소령이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을 짓자, 대마령은 싱긋 웃으며 자기 검지를 소령의 입술에 갖다 댔다.

“쉿, 때가 되면 알려주지.”

“네. 기대하겠습니다.”

“소령, 너는 당장 인간 세상에서 활약하고 있는 모든 박쥐에게 긴급 명령을 내려서 모두 철수시켜라!”

“네.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내 명을 어기는 놈이 있으면 가차 없이 능지처참할 것이다. 알겠나?”

대마령이 눈에 살기를 띠며 지시를 내리자, 소령은 식겁한 표정으로 그의 명령을 박쥐들에게 전파하기 위해서 서둘러 물러갔다. 대마령은 흡족한 미소를 짓다가 미리내가 유진과 지우가 사라진 곳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서 있는 모습을 보고는 근심스럽게 물었다.

“사랑하는 딸 미리내,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구나. 아까 그놈들이 네 기분을 상하게 했니?”

“아, 아니에요.”

아비의 물음에 정신을 차린 미리내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가 유진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대마령이 눈치채면 그가 유진에게 해코지할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그러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간 그 시각 이후 대마령의 지시대로 흡혈박쥐들은 일제히 시내에서 퇴각했다. 박쥐 떼로 음산했던 밤하늘이 원래의 맑은 하늘로 되돌아갔다.



그날 저녁 유진이 케이크를 들고 지우 앞에 나타났다. 그를 반갑게 맞는 지우의 귓가에 유진은 다정하게 속삭였다.

“이제 박쥐들도 물러가고 세상도 평안해졌으니 우리 정식으로 사귀는 게 어때?”

“정말?”

유진의 제의에 지우가 감동한 듯 몸을 부르르 떨자, 그도 지우의 양손을 꼭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응. 우리 둘은 케미가 아주 잘 맞는 것 같아.”

“좋아, 오늘부터 1일이야.”

지우는 스스럼없이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지우는 임시 거처로 사용하던 도장(道場)의 이층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6월 15일 저녁

“……!”

모든 흡혈박쥐가 퇴각하여 한산한 어느 골목으로 흡혈박쥐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그 머리털이 붉은 흡혈박쥐는 박쥐 떼에서 낙오한 것인지 아니면 이탈한 것은 알 수는 없었지만 은밀하게 주택가의 이층 집으로 숨어들었다. 그곳은 가희가 임시로 머무는 집이었다.

흡혈박쥐는 열린 창으로 그녀가 곤히 자는 침실로 침투했다. 가희가 이상한 인기척을 느끼고 눈을 뜨는 순간 흡혈박쥐는 가희에게 날아들어 날카로운 이빨로 그녀의 가냘픈 목덜미를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악!”

고통스러워하는 가희의 외마디 비명이 온 집안을 울렸다.



다음 날 밤 지우는 사업에 실패하고 한강 다리에서 생을 마감하던 한 중년 남자를 발견하고는 구해냈다. 그리고 슈퍼 다이아몬드로 중년 남자에게도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었다. 지우는 가슴 뿌듯한 무용담을 유진에게도 들려주고 싶어서 그들의 보금자리로 오토바이의 기수를 돌렸다.

그런데 총알같이 그의 자취방에 도착해 보니 침실에 불이 꺼져 있었다. 오늘은 왜 늦었을까 궁금해하면서 지우가 마당을 가로질러 짙은 어둠에 잠긴 좁은 통로로 들어섰다. 통로 양쪽으로 월세를 사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는데 아직 퇴근을 안 했는지 집안 전체가 매우 괴괴했다.

“……!”

그런데 그날따라 지우는 왠지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기분 탓인가?”

지우는 유독 어두운 통로를 예리한 눈빛으로 살펴보면서 유진의 방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

그때 지우는 전방 2~3미터 앞에 있는 기둥 뒤에 뭔가 사람 같은 물체가 바짝 붙어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우뚝 멈춰 섰다.

“거, 거기 누구야?”

지우가 무섬증에 소리를 버럭 질렀지만, 검은 형체는 대답을 안 하고 어둠 속에서 장승처럼 서 있었다. 그녀를 노려보는 검은 형체의 눈에서 노기를 띤 붉은빛이 번쩍하고 빛났다. 그 섬뜩한 눈빛과 마주친 지우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크악!”

그 순간 지우의 도주를 눈치챈 검은 물체가 갑자기 그녀를 향해 범처럼 튀어나왔다. 검은 물체의 손에는 칼날처럼 예리한 손톱이 번뜩이었고 쩍 벌린 입에는 끔찍하게도 날카로운 송곳니가 솟아나 있었다.

“네가 감히 내 남자를 뺏어가? 죽어라! 캬악!”

지우를 덮친 뱀파이어는 그녀의 하얀 목덜미를 향해 예리한 이빨을 들이댔다.

“그만둬!”

기겁한 지우는 뱀파이어의 얼굴을 필사적으로 밀쳐내려고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마침내 뱀파이어의 날카로운 이빨이 자기 목덜미에 따끔하게 파고드는 순간 갑자기 뒤쪽에서 유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누구야!”

유진의 느닷없는 목소리에 뱀파이어는 깜짝 놀란 듯 홱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유진이 시퍼렇게 날이 선 낫을 들고 서 있었다.

“유, 유진?”

그를 알아본 뱀파이어가 화들짝 놀랐다.

“뱀파이어?”

유진도 난데없는 뱀파이어의 출현에 매우 놀랐는지 얼굴빛이 창백해졌다. 뱀파이어는 즉각 지우를 내팽개치고 유진을 향해 공격 자세를 취했다. 유진은 낫을 앞세우고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 와중에도 유진은 매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뱀파이어 너머로 지우의 상태를 물었다.

“지우, 괜찮아?”

“괜, 괜찮아요.”

반가움과 안도감에 목이 메어 그녀는 겨우 대답했다. 그때 여태껏 구름 속에 숨었던 보름달이 드러나면서 뱀파이어의 얼굴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뱀파이어의 얼굴을 알아본 유진은 기겁했다.

“가, 가희?”

유진이 혼비백산하자 뱀파이어 가희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내 꼴을 보니 우스워?”

“가희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유진이 매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묻자, 가희는 날카로운 손톱으로 그를 가리키며 으르렁거렸다.

“재수 없는 너에게 복수하러 왔지.”

“복수? ”

“가난뱅이 너를 피해 도망치다가 이 꼴이 됐잖아! 죽여버리고 말겠어!”

말을 마치자마자 가희는 괴성을 지르며 유진을 향해 덤벼들었다.

“이게 어디서 화풀이야!”

그러나 그때 지우가 뜻밖에도 겁 없이 가희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뭐야, 이건!”

제지를 당한 가희는 홱 돌아서서 지우의 팔을 이빨로 묻어 뜯으려고 했다. 하지만 지우는 양손으로 뱀파이어의 주둥이를 밀쳐내고는 손가락을 그쪽으로 겨누었다. 마치 뱀파이어를 레이저로 태워 버릴 기세였다.

“나도 더 이상 못 참겠어! 너를 죽여버리고 말 테다.”

분노한 지우가 고함을 지르자, 그녀의 의도를 눈치챈 유진이 재빠르게 그녀를 막아섰다.

“안돼, 지우!”

“비켜!”

지우는 유진을 밀쳐내고 뱀파이어를 향해 레이저를 쏘려고 했으나, 그가 다시 저지하는 통에 레이저는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레이저를 맞은 그곳에 순식간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고 말았다. 레이저의 가공할 위력을 목격한 가희는 겁을 집어먹고 슬금슬금 꽁무니를 뺐다. 가희가 마당 밖으로 도주하자 유진은 낫을 휘두르며 짐짓 사납게 소리쳤다.

“또 나타나면 그때는 정말 죽여버린다!”

유진의 경고에 가희는 슬픈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더니 어두운 골목 안으로 사라져 갔다. 지우는 얼굴에 흘러내린 진땀을 닦아내며 유진에게 눈을 흘겼다.

“유진 씨, 아까 왜 나를 막았어?”

“그 뱀파이어는 가희인데 어떻게 죽여?”

유진이 난처한 듯 반문하자 지우는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를 죽이려고 했어요. 사람이 아니라고! 정신 차려요!”

지우는 유진의 매우 감상적인 태도에 무척 화가 난 듯했다.

“진정해. 지우, 어쨌든 우리는 살았잖아?”

“휴, 천하태평이군.”

유진을 향해 다시 눈을 흘기던 지우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탄식했다.

“아, 이제 평화 협정이 깨진 것인가?”

“지우도 협정을 깰 거야?”

유진이 조심스럽게 묻자 지우는 착잡한 표정으로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무슨 소리! 대신 이번 기회에 그놈들 버릇을 고쳐놓아야지.”

“무슨 좋은 방법이 있어?”

“암, 두고 봐.”

“……!”



다음 날 오전 지우와 유진은 팔달산의 서장대(西將臺)에서 대마령과 그의 수하들을 다시 만났다. 서로 노려보는 양측에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서장대(西將臺)의 앞마당에는 대마령의 부하들이 붉은 머리털을 길게 기른 벌거벗은 젊은 남자를 포박하여 에워싸고 있었다. 지우는 두려움에 덜덜 떨고 있는 젊은 남자를 잠시 째려보다가 시선을 대마령에게 돌렸다.

“저놈이 가희를 뱀파이어로 만든 작자인가?”

“맞다. 저 붉은 머리털 박쥐가 그 여자를 건드렸다.”

대마령은 잠시 인간의 모습을 한 흡혈박쥐를 매우 못마땅한 시선으로 노려보며 대꾸했다. 지우는 문제의 흡혈박쥐에게서 시선을 떼고 새삼 화가 나는 듯 대마령에게 강력하게 따졌다.

“그런데 어떻게 저런 놈이 활개치고 다닌 거야?”

“그게 말이야.”

“혹시 대마령 당신 말발이 부하들에게 안 통하는 거 아니야?”

지우가 짙은 의구심을 드러내자, 대마령은 양손을 들어 손사래를 쳤다.

“그건 아니야! 모두 나의 명을 확실히 지켜왔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저런 돌연변이가 한 놈 생겼지. 나는 수천에 달하는 내 부하들을 모두 닦달해서 저놈을 잡아냈다. 미안하다.”

“흥, 그냥 말로만 때워서는 안 되지.”

지우가 여전히 강하게 대마령을 압박해 가자 그는 입맛을 쩍 다시고는 정색했다.

“그래서 오늘 나의 의지를 보여 주는 본보기로 저놈을 참수하겠다. 여봐라!”

구구절절 변명하던 대마령은 자신의 의지와 권위를 보여주겠다는 듯이 큰 소리로 그의 수하들을 불렀다.

“넷, 대왕님!”

젊은 남자를 체포해 왔던 수하 하나가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대마령에게 예를 취했다. 대마령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그자에게 지시를 내렸다.

“사사로운 욕망으로 우리의 평화 협정을 위태롭게 만든 저놈을 모두의 본보기로 당장 목을 쳐라!”

그의 호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하 중에서 망나니 칼을 들고 있던 자가 번개처럼 젊은 남자의 목을 내리쳤다. 순식간에 그자의 목이 달아났다.

“어때? 이제 나의 진심을 믿겠나?”

대마령은 참수당한 젊은 남자의 머리통을 발로 차버리고는 지우를 향해 달래듯이 말했다.

“일단 당신 의지는 믿겠소. 하지만,”

대마령의 의지를 수용할 것 같던 지우가 문득 말을 끊자 바짝 몸이 단 대마령이 얼른 되물었다.

“뭐가 더 필요한가?”

“대마령 당신은 근본적으로 대책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근본적인 대책?”

“당신네 흡혈박쥐가 혹시 사람들을 공격했을 때 그들이 뱀파이어가 되는 것을 방지할 해독제를 우리에게 제공하라.”

“해독제를 내놓으라고?”

뜻밖의 요구라는 듯 대마령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래. 해독제!”

지우가 해독제를 명확하게 거론하자, 대마령은 곧 정색하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안될 말이야.”

“안될 말이라니? 흡혈박쥐에 의해서 사람들이 뱀파이어가 되어도 좋단 말이야?”

“그건 아니지만 해독제를 준다는 것은 우리의 강력한 무기를 그냥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그냥 내준단 말이야?”

“난 해독제 없이는 당신의 어떠한 약속도 믿을 수 없어.”

지우가 단호하게 나오자 난처한 표정을 짓던 대마령은 갑자기 표정을 싹 바꾸었다.

“정 그렇다면 해독제를 내주겠어.”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

지우는 반색을 하자 반대로 대마령은 정색했다.

“그 대신 나도 조건이 있다.”

“조건?”

조건이라는 말에 지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래. 우리만 무장 해제를 당할 수는 없잖아? 내가 해독제를 내주는 대신 너도 슈퍼 다이아몬드를 우리 더그레이트사 공장 터에 갖다 놓아라.”

“뭐라고?”

“양측이 공동으로 슈퍼 다이아몬드를 감시하자는 거지. 그게 나의 조건이다.”

“슈퍼 다이아몬드를 공동으로 감시한다고?”

지우는 마땅치 않은 표정으로 대마령을 쏘아보며 되물었다. 그러자 대마령은 더 확실하게 강조하려는 듯 목소리에 더욱 힘을 실었다.

“그래야 지우 네가 슈퍼 다이아몬드를 마음대로 행궁에 갖다 놓지 못할 것 아니야!”

“흥, 슈퍼 다이아몬드를 볼모로 잡아두자는 소리군.”

지우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리자, 대마령은 당장이라도 협상을 깰 듯이 일어섰다.

“싫으면 그만두고!”

대마령이 오히려 강하게 나오자 지우가 더 다급해졌다.

“잠깐,”

지우는 급한 대로 일단 대마령을 붙잡아놓고는 유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자기 생각은 어때?”

지우의 물음에 유진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나는 슈퍼 다이아몬드로 힐링 여행을 할 수 없어 아쉽지만 지우 당신과 같이 계속 있을 수 있으니 그리 나쁜 안은 아니야.”

유진의 말에 새삼 감격한 듯 지우의 두 눈이 몽롱해졌다.

“솔직하게 말해 주어서 고마워요.”

“또한 당신은 흡혈박쥐들의 공격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서 좋고 대마령은 반쪽이라도 회색 지대를 계속 유지할 수 있으니 서로 윈윈(win win) 하는 것 아닐까?”

유진의 명확한 설명에 잠시 긴가민가하던 지우의 눈빛이 한층 더 맑아졌다.

“그렇지?……그리 나쁜 협상은 아니지?”

지우의 물음에 유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곧바로 대마령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좋아, 당신 제안을 받아들이지.”

지우의 결단에 대마령은 매우 들뜬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럼 이틀 후인 6월 19일 2시에 슈퍼 다이아몬드를 더그레이트사 공장 부지에 갖다 놓아. 나도 그곳으로 해독제를 가지고 갈 테니까.”

대마령이 다시 약속하자, 지우도 흔쾌히 답했다.

“좋아. 그렇게 하지.”

파국으로 갈 뻔했었던 양측과의 협정은 그렇게 해서 잘 마무리되었다. 지우는 마침내 골치 아픈 흡혈박쥐 문제를 잘 해결했다고 확신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서장대(西將臺)를 떠났다.

지우와 유진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줄곧 두 사람을 지켜보던 미리내가 대마령에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빠, 해독제를 인간들에게 정말 내주실 거예요?”

“그럼. 서로 약속을 한 것인데 당연히 지켜야지.”

“하지만 해독제를 주면 우리의 힘이 많이 약해지는데 괜찮을까요?”

미리내가 걱정스럽게 묻자 대마령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우리가 얻는 것이 더 크단다.”

“그게 무슨 말씀인지?”

미리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대마령은 주위를 흘끔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얘야, 내가 아주 놀라운 비밀을 하나 알려주지.”

“비밀이요?”

“우리가 슈퍼 다이아몬드를 파괴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연구해 온 끝에 극적으로 알아낸 비밀이 하나 있거든.”

대마령이 말을 내뱉고는 잠시 뜸을 들이자, 조바심이 난 미리내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귀를 쫑긋 세웠다.

“잘 들어. 금강석인 슈퍼 다이아몬드도 화성(華城) 행궁을 벗어나 인간 세상에 33일 동안 머물고 있으면 스스로 빛을 잃고 파괴되고 만다.”

“네? 스스로 파괴된다고요? 왜 그렇죠?”

슈퍼 다이아몬드에 대한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된 미리내의 고운 눈썹이 치켜졌다.

“왜 그런지는 나도 몰라. 하지만 화성 제국에 빛을 제공해 주던 존재도 태양 앞에서 반딧불 같은 존재로 되고 마는 거지. 후후,”

슈퍼 다이아몬드의 약점에 대해서 폭로하고 만족한 웃음을 짓던 대마령은 다시 한번 주위를 살피고는 미리내의 귓가에 은밀히 속삭였다.

“그러니까 우리는 슈퍼 다이아몬드를 공동 감시하면서 33일만 지나기를 기다리면 된다. 그날이 바로 7월 22일이다. 그날, 슈퍼 다이아몬드가 파괴되는 것과 동시에 화성 제국은 흔적도 없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우리의 무명(無明) 제국이 시작된다. 완벽한 무명(無明) 즉 암흑이 세상을 지배하는 날, 우리 흡혈박쥐는 인간들의 피를 빨아먹으며 축배를 들 것이다. 하하하,”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던 대마령은 솟구치는 통쾌함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웃음을 뚝 멈추고 정색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33일 동안 슈퍼 다이아몬드를 화성(華城)밖에 묶어 두어야 한다. 날카로운 발톱을 숨기고서 말이다. 알겠니?”

“네. 정말 놀라운 작전이에요.”

미리내는 매우 감격한 표정으로 대마령을 향해 엄지 척을 해주었다. 대마령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는 음흉한 눈빛을 빛내며 한마디 덧붙였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지우가 그 비밀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비밀을 지켜야 한다. 알겠나?”

“네. 걱정 마세요. 아빠,”

미리내는 대마령에게 귀엽게 눈을 찡긋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미리내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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