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흥미로운 동물에 대한 생각
나는 원래 동물을 좋아했던 것 같다. 어렸을 땐 집에서 개를 키웠다. 천둥번개가 심하게 치던 어느 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리 개가 새끼를 낳는 것도 봤다. 당시 옆집에서 키우던 병아리 두 마리가 기적같이 닭이 되었는데, 한 마리는 깡패에게 납치(?)당하고 나머지 한 마리는 백숙이 되어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를 듣고 서럽게 운 적도 있다고 한다.
다시 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것은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몇 년 전인가에 강아지를 그렇게 키우고 싶어졌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 때 증상이 꽤 심각해서 어디서 비닐 봉지나 종이 봉투가 부스럭 날라가면 그게 강아지인 줄 알고 쳐다보곤 했었다. 그러나 일이 바쁘고 집에서 동물을 키울 여건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강아지 입양을 포기했다.
그로부터 다시 몇 년인가 시간이 흘러 일본 남서쪽 큐슈(九州)에 여행을 갔을 때였다. 후쿠오카(福岡)의 북동쪽에 있는 코쿠라(小倉), 그리고 후쿠오카의 하카타역(博多駅)에서 신칸센을 타고 40분 정도 남쪽으로 내려가면 나오는 쿠마모토(熊本)에서 고양이들을 만났다.
이 녀석은 코쿠라성 옆에서 만났는데 뭔가 너무 열심히 먹고 있어서 사진기를 가까이 들이대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당시엔 고양이에 대해 전혀 몰랐기 때문에 그냥 이렇게 여행 중에 우연히 동물을 만나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던 것 같다.
다음은 쿠마모토에서 만난 고양이. 쿠마모토에는 에즈코(江津湖)라는 호수가 있는데 그 주위를 걷다가 발견했다.
이 아이는 그물 위에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가니 "냐아~"하고 작게 울었다. 우리나라의 길냥이들은 사람 발소리만 나도 도망가서 다가가기 쉽지 않은데 일본 길냥이들은 가만히 있는 것이 신기했다.
다음엔 마찬가지로 에즈코에서 만난 녀석.
에즈코 주변을 산책하고 있는데 회색 고양이가 보이길래 호기심이 동해 따라갔더니 계속 경계하며 도망가는 모습이 보였다. 결국 어느 집(에즈코 부근에는 멋진 중/대형 주택이 많다) 대문 밑으로 쏙 들어갔는데 다리가 보여 카메라를 고양이 시선으로 낮춰 찍었다. 두둥! 이 때 내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일어났다.
고양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특히 고양이의 눈을 두려워한다. 고양이는 주위가 밝거나 주위를 경계할 때 눈동자가 가늘어지는데 이게 마치 파충류의 눈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나 역시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많은 고양이들과 만나고 그들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게 되면서 고양이의 얼굴이나 표정, 눈동자의 크기는 실제 그 고양이의 성격이나 나에 대한 태도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도 수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고양이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여전히 고양이를 키우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은 가끔 우연히 만나는 길냥이에게 살짝 간식을 챙겨주거나 고양이 카페에 가서 이 흥미로운 동물과의 교류를 계속하고 있다. 고양이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면서 깨달은 사실 중 하나는 우리들이 너무 인간 위주의 삶을 살고 있다는 점이다. 비단 고양이가 아니더라도 이 세상의 모든 동물들은 생명체로서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데 사람들은 그들과 같이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자꾸 잊어버리는 것 같다. (종종 보게 되는 동물 학대 뉴스는 정말 떠올리고 싶지 않다.)
다큐멘터리에서 본 영국의 어느 시골 마을, 그리고 포르투갈의 포도 농장에서는 고양이들을 키운다. 발정기의 기분 나쁜 울음소리, 쓰레기 봉지를 찢고 내용물을 뒤지는 모습 등 고양이의 안 좋은 습성만을 생각한다면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그곳의 고양이들은 단순한 애완동물이 아닌 쥐를 잡아 작물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훌륭한 파수군으로써의 역할을 해 주고 있었다.
물론 도시에서의 길냥이들은 그런 용도(?)가 없지 않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당신은 왜 살아가나요?", "당신의 효용은 뭐죠?"하고 질문했을 때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진화의 결과일 수도 있고 신이나 외계인이 선물로 놓고 갔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고양이는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귀중하고 신기한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