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ince Jan 14. 2017

곡성(哭聲)을 보고

이놈의 세상, 어차피 신들이 우릴 갖고 노는 거 아녀?

영화 “곡성”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해석과 약간의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먼저 영화를 보신 후 이 글을 읽으셨으면 합니다.




기분 나쁘게 매력적인

나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 “더 로드 (The Road)”, “칠드런 오브 맨 (Children of Men)” 등 어둡고 잔혹하면서도 사실적인 영화를 좋아한다.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와 “황해”도 그렇다. 특히 “황해”의 경우 너무 마음에 들었기도 했고 복잡한 스토리를 이해하기 위해 감독판도 보게 되었다.


“황해” 이후 6년이 흘러 “곡성”이 등장했다. 원래 영화나 게임을 묵혀 두었다가 보는 취미가 있어 일부러 꾹 참았다가 어제 시청을 했다. 스트로베리 쇼트 케익에 얹힌 딸기를 아껴 뒀다가 맨 마지막에 먹는 버릇과 비슷하다고 할까. 때마침 찾아온 몸살감기 때문에 온 몸이 오들오들 떨렸고 두통도 있었지만 꾹 참고 끝을 봤다. 회복을 위해 일찍 자려고 했지만 이 영화 덕에 취침 시간도 늦어졌고 오래간만에 내 스타일의 영화를 발견했다는 기분 좋은(?) 불쾌함과 스토리 전개와 등장인물들에 대한 끊이지 않는 의문 때문에 밤새 뒤척였다.



“곡성”은 충격적이다. 심술궂은 감독이 빚어낸 잘 정리된 혼란함 때문인지 중반까지는 도대체 무슨 장르인지 파악하기 힘들었다(영화의 재미를 위해 보기 전까지 일부러 관련 정보를 찾아보지 않았다). 엔딩을 보고선 심히 짜증이 났다. “절대 현혹되지 마라”, “미끼를 물었다” 등 포스터에 적힌 문구를 생각해도 그렇고 감독이 이모저모 나를 신나게 갖고 놀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이 괴이하지만 흥미로운 영화에 대한 분석을 해 보기로 했다. 그 복잡한 “황해”도 여러 번 보면서 이해를 했으니 이번에도 공부를 좀 하면 왠지 답을 찾을 수 있을 듯했다.



이건 다르다

그런데 나무위키의 “곡성” 항목을 찾아보고 나름 해석을 해 보려고 해도 마음속에 걸리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사실 “곡성”은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도통 답이 나오지 않는 영화이다. 일단 가족 간의 연쇄 살인, 피부병, 정신 착란 등의 사건이 연속적으로 발생하지만 사건 간에 서로 무슨 연관이 있는지 불확실하다. 물론 일본인은 사람이 아니라는 등 실제 나중에 확인 가능한 사실(혹은 설정)도 여기저기 등장하지만 나홍진 감독은 의도적으로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단서와 그렇지 않은 맥거핀(깊은 의미가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닌 영화적 설정 및 도구)을 마구 섞어버리며 무자비하게 관객들을  낚는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은 일단 관객이 아닌 관찰자의 입장에서 좀 더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전남 곡성의 자연, 기괴하지만 자꾸 다음 장면을 보고 싶게 만드는 설정 및 이야기의 흐름, 배우들의 엄청난 연기(특히 곽도원!) 때문에 우린 감독이 파 놓은 함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꾸 빠지는 게 아니었을까 싶다.



한 걸음 물러나서

나홍진 감독이 인터뷰를 통해 이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는데, 이를 읽고 나면 이해가 가는 부분이 많아진다. “황해” 촬영을 끝낸 후 너무 선하던 가까운 지인이 급사했는데 스스로 그 이유를 찾아보고 점차 스토리를 확장해 갔다고 한다. 그가 쓴 '부감(높은 곳에서 내려다봄)'이라는 표현에 힌트가 있다.


어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데에 이유가 있을까? 특히 나이가 들면서 병이나 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소식을 들을 기회가 늘어가는데 나는 그들이 죽은 이유 도통 이해할 수 없다. 신이 그를 사랑해서 먼저 데려간 것인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에 문제가 있었는지, 그 유전자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갑자기 생긴 돌연변이가 원인인지, 아니면 정말 그냥 운이 나쁜 것인지 그 최초의 원인을 찾는 일불가능하다. 물론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가 그렇게 되었다면 정말 슬픈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곡성”을 보면서 영화에 등장하는 친근한 보통 사람인 전종구(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을 할 수밖에 기 때문에 그와 그의 가족이 다치거나 죽지 않았으면 한다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감독과 배우의 뛰어난 합동 작전 덕분에 이렇게 생각하지 않기가 참 힘들다.



영화적 설정이나 세계관의 범위는 우리의 상상력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영화가 끝난 후 관객석에서 일어나 좀 떨어진 곳에 서서 영화의 흐름과 설정, 맥거핀을 곰곰이 생각했다. 그 가운데에는 원인 모를 병에 걸려 미쳐가는 딸을 보고 어찌할 줄 몰라하는 전종구와 그의 가족이 있고, 그의 주위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능력을 가진 무명(천우희), 일본인(쿠니무라 준), 그리고 후반부에 누구 편인지가 드러나는 일광(황정민)이 있다. 주인공의 동료와 가족, 친구, 심지어 가톨릭 신부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사건들 속에서 무기력함을 드러낼 뿐이다.


그런데 현실 세계에도 좀처럼 우리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일은 수없이 많다. ‘진실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다.’ 어디선가 읽은 문구인데, 인생을 살다 보니 삶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기는커녕 도대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사건/사고 투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홍진 감독은 자신이 경험한 친지의 죽음을 토대로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불가항력을 나름의 상상력으로 풀어낸 것이 아닐까. 이렇게 보니 갑자기 미쳐가는 마을 사람들도, 귀신이 씌어 할머니와 엄마를 죽이는 효진이도, 자신을 죽이겠다고 낫을 들고 찾아온 양이삼(가톨릭 부제) 앞에서 본모습을 드러내는 일본인도 그냥저냥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신인지, 인간인지, 아니면 악마인지 알 수 없는 존재들의 싸움 속에 마을 사람들이 휘말려 죽고 죽이며 고통을 받는다. 거기에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무슨 이유가 있고 원인이 있겠는가. 한 길 사람 속도 모르는데. 우리는 피가 말라가는 등장인물들을 보고 인간의 한계를 느끼게 된다. 인생이나 "곡성"이나, 그놈이 그놈이다.



현실적인 비현실성

물론 감독이 깔아 둔 수많은 장치들이 관객을 의도적으로 속이는 부분이 많고 전체적인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지만 어차피 현실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 사고에도 개연성은 별로 없다. 다 지나고 나서 인간이 나름대로의 해석을 붙일 뿐. 누가 한 나라의 대통령이 사이비 교주와 그 딸에게 40년 넘게 혼을 빼앗겼다고 의심할 수 있었을까.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돈이 많거나 열심히 공부해서 천재 소리를 들었던 수많은 인물들이 콩고물을 뜯어먹겠다고 줄을 섰다는 이야기는 더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러나 엄연한 사실이다.



다른 예로 당신이 누군가의 게임을 관전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당신은 게이머가 평범하게 게임을 즐길지, 주인공이나 등장인물들을 재미로 싹 죽일지, 치트(cheat)를 써서 엄청난 능력을 갖게 해 줄지, 아니면 아예 게임을 중단할지 알 수가 없다. 한참 전에 퀘이크 3 아레나 프로 게이머들의 경기를 본 일이 있다. 우세하게 게임을 이끌던 우리나라 게이머가 외국 플레이어게 역전을 당했는데 어처구니 없이 그대로 게임이 끝나버렸다. 점수가 약간 높았던 경쟁자가 줄곧 도망을 다녔기 때문이다. 나는 분을 삭히며 컴퓨터의 전원을 내렸다. 그 경기는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감독이라는 게임 프로듀서이자 게이머가 자신이 직접 만든 게임을 플레이하는 광경을, 그가 허락한 시점에서 볼 수 있을 뿐이다. 해석은 우리의 몫이다.



어쨌든 재미있다

불친절하지만 잘 만들어진 영화는 은근히 많다. SF 영화 장르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 Space Odyssey)"는 50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완성도와 예술성을 자랑하지만 감독의 성격만큼이나 괴팍하고 난해한 전개를 자랑한다. 생각해 보면 "곡성"은 그나마 친절한 편이다. 그러나 만든 후 하룻밤 묵혀두면 더 맛있어지는 카레처럼 "곡성"과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 Space Odyssey)" 등의 문제작들은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준다. 영화를 보는 순간뿐만 아니라 엔딩이 지나간 뒤에도 자꾸 뭔가 곱씹게 만든다. 불친절한 주인장이 만드는 맛있는 요리처럼, 나는 나를 빨아들이는 이런 영화를 좋아한다.



이 영화가 잘 이해되지 않는 분들은 다음 내용을 참고하실 것을 권한다.

나무위키 - 곡성(영화) 줄거리 및 의문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끝장 평론 - 곡성 (약 2시간 분량인데 내가 생각한 내용과 유사한 부분이 많아 놀랐다.)



(타이틀의 배경 이미지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laajala/461931815)

작가의 이전글 우리 팀장이 이상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