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딱 2년째 되는 날.
일본에서 생활한 지 2년이 흘렀다. 이 글에서는 이곳에서 생활하고 일하면서 느낀 점을 정리해 보려 한다. 간단하게 쓰려고 생각 중이지만 좀 길어질 지도 모르겠다...가 아니라 길어졌다.
1. 습하다. 보통 우리나라보다 20~30% 높다고 보면 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몹시 추운 겨울에는 10% 수준까지 떨어지기도 하는 습도가 여기서는 40% 이하로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다. 그래서 빨래가 잘 마르지 않거나 환기에 신경 쓰지 않을 경우 창틀의 결로나 구석구석 곰팡이가 생긴다. 그런데 높은 습도 덕분에 수분 크림이나 바디 로션 등의 양을 줄일 수 있다. 그래서 피부가 건조하거나 아토피가 있는 사람은 습도가 높은 일본의 기후를 더 편하게 느끼기도 한다.
2. 햇빛이 강하다. 공기가 깨끗해서 그런지 쨍한 날은 한국보다 꽤 강하다. 태양의 에너지가 얼굴에 와서 그대로 꽂힌다. 그래서 얼굴용 수분 크림(습하다고 해서 살짝 바르면 강한 직사광선 때문에 건조해진다), 선크림은 매일 발라야 한다. 한여름에 위에서 말한 높은 습도와 함께 햇빛이 함께하는 날엔 정말 대책 없이 덥다. 그런데 한여름인 요즘, 우리나라가 더 더운 날도 있다 (…).
3. 공기가 깨끗한 편이다. 우리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중국에서 더 떨어져 있기 때문에 확실히 영향을 덜 받는다. 가끔 먼 곳에 있는 산이나 빌딩이 흐릿하게 보일 때도 있지만 대체로 우리나라에 미세 먼지가 거의 없을 때의 상황이 매일 지속된다고 보면 된다. 단, 봄철부터 본격적으로 꽃가루 알레르기(화분증: 花粉症)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생기는데 증상의 정도는 나무의 종류(삼나무, 편백나무 등 꽃가루를 뿜어 대는 품종이 여러 가지라고 한다) 및 체질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마스크를 쓴 사람들의 비율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많다. 그런데 여성들이 마스크를 선호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얼굴을 다 안 보여줘도 되니까”라나..
4. 밖은 따뜻하고 집 안은 춥다. 일본은 좀 좋은/넓은 집, 아니면 추운 지방에 위치한 곳이 아닌 경우 보통 바닥 난방이 없다. 있다 해도 거실에만 준비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개 히터 기능이 내장된 에어컨, 전기/석유 난로 등으로 난방을 한다. 또 날씨가 따뜻한 편이고 지진에 대비하기 위해 이중 유리가 달린 샤시가 한 겹인 집이 많고(우리나라처럼 2중 유리 2겹이 아니라 1겹이다) 집의 벽을 두드려보면 콩콩 하고 속이 빈 소리가 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1년의 반 정도는 바닥이 은근히 차갑게 느껴지며 겨울이 되면 발을 완전히 감쌀 수 있는 따뜻한 슬리퍼와 두툼한 잠옷이 필수이다. 나는 잘 때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아예 한국에서 온수매트를 공수해서 겨울에 쓰고 있으며 두툼한 수면 양말이나 슬리퍼도 애용한다.
5. 도시의 경우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다. 요금은 우리나라보다 비싼 편인데, 도쿄 내에서는 지하철, 버스 등을 잘 이용하면 여기저기 별 문제 없이 갈 수 있다. 회사나 학교에 가는 경우 정기권 등을 신청해서 사용한다. 버스는 지하철보다 비싸지만 가끔 지하철로 커버가 어려운 지역 등을 다닐 때 이용하면 좋다. 참고로 구글 맵에 나온 지하철/버스 시간표나 탑승 위치가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니어서 일본어로 된 각종 전용 앱을 쓰면 좋다. 그런데 노선이나 탈것에 따라 앱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아 두 개 이상을 써야 정확히 파악이 가능하다.
1. 사실 회사나 개인적 교류를 통해 가장 많이 생각하게 되는 주제인데, 참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일단 일본인의 사고방식은 한국인의 그것과 매우, 매우 다르다. 좋게 말하면 배려가 깊고 친절하며 디테일에 강하지만 어찌 보면 속을 잘 드러내지 않고 사소한 부분에 집착한다. 물론 이는 사람에 따라, 출신 지역에 따라 달라지므로 일본인 전체를 일반화할 수 없다. 나는 일본에 오기 전에도 일어 회화를 별 문제 없이 하는 편이었는데 단순히 언어를 잘 하는 것과 제대로 의사 소통을 하는 수준의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지금도 절감하고 있다.
2. 일본인은 타인의 눈을 정면으로 보는 것을 실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타인과 대화할 때 고개를 자주 끄덕이고 각종 추임새를 넣는 경우가 많아 대체로 싹싹한 느낌을 준다. 가끔은 너무 주눅든 게 아닌가 싶기도 하는데, 무사를 상대로 눈길 한 번 잘못 주거나 말실수라도 하면 바로 목숨을 잃을 수 있었던 전국시대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일본인들은 마음 속으로 미안하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바로 “스미마셍(すみません)” 하며 사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가볍게 넘어가면 나중에 골치 아픈 일에 엮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진심으로 사과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나는 아직도 일본 사람들 속을 잘 모르겠다. 투명 오징어 같이 속이 훤히 보이는 한국인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아, 그리고 작은 일에도 감사의 표현을 잘 하는데 이는 팍팍한 매일의 삶을 조금 부드럽게 해 주는 효과가 있어 좋다고 생각한다.
3. 가게에 있는 손님과 점원의 대화와 태도를 자세히 관찰하면 좀 재미있는 현상을 볼 수 있는데, 점원은 표정, 발음, 움직임 등 하나하나 신경을 많이 쓰면서 최대한 정중하게 접객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손님은 무뚝뚝하다. 우리나라의 편의점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손님의 유무와 상관 없이 별로 말이 없거나 핸드폰을 보는 등 편하게 일을 하는데 일본에서는 이런 상황을 상상할 수 없다. 얘기를 들어 보면 고객 응대 매뉴얼이 있고 이를 철저하게 지키는 편이라고 하는데, 처음엔 친절한 모습에 감탄하기도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일본에서의 접객 업무를 한다면 금방 피곤해질 것 같다. 한국도 진상이나 못된 상사 때문에 고생하는 경우를 보면 손님 모시기는 어디를 가도 힘든 듯하다. 누군가 팟캐스트에서 한국과 일본에서는 업무를 무슨 도 닦듯이 한다고, 좀 편하게 하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는데 나도 동의한다.
4. 일본인들도 성격이 급한데 한국인의 급한 성격과는 차이가 있다. 내가 경험한 일본인들은 당장 눈 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을 때 바로 조바심을 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몇 달에서 1년 이상 걸리는 프로젝트의 경우 한국과 달리 일정을 꽤 느긋하게 잡고 진행하기도 한다. 말도 안 되는 일정 당기기가 생활화된 한국의 IT 프로젝트 진행 스타일과는 매우 다르다. 정리하자면 일본인은 당장 자신의 시간이 낭비되는 것에 민감하고, 한국인은 중장기 프로젝트의 일정 단축을 즐기는 경향이 있다. 내 경험 상 그렇다는 얘기이다.
5. 일본의 직장인 중 1/3 정도는 이지메나 왕따를 경험한다고 한다. 나도 한 직장 동료와의 사소한 오해로 그를 포함해서 함께 매우 친하게 지내던 3명이 갑자기 말이 없어지는 경험을 했다. 사회 생활을 충분히 경험한 성인 남자들이 나에게 삐친 여직원 한 명의 말을 듣고 일제히 나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을 끊는 것을 보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그 여직원이 정말 특이한 사람이기도 했고 어차피 회사를 떠나면 계속 볼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그냥 그들의 수준이 그 정도라 생각하기로 했다.
6. 그러나 같이 일하고 대화하다 보면 웃음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사람들이 더 많다. 현재 나의 상사들과 대부분의 동료들, 이곳에서 새롭게 만난 친구들이 그렇다. 한국보다 더 잘게 그룹을 쪼개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분위기(채팅방 등)라 가끔 소외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곳에 온 지 2년밖에 안 되는, 사람을 만나고 사귀는 데 소심한 나인지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일본에 대해 관심이 많은 부분이 있듯이 한국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술자리나 꽃구경(花見: 하나미), 각종 공연 등에 부담없이 나를 초대하고 함께 어울린다. 나도 맛집 등 한국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공유하려 노력한다.
7. 장애우들에 대한 배려가 뛰어나다. 이 부분은 한국이 확실히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몸이 불편한 이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2020년 도쿄 올림픽에 대한 광고를 종종 보는데 자연스럽게 패럴림픽에 대한 내용이 나오고 맹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장애우들을 따로 고용하는 회사들도 있다.
8. 타카하시상이 한 때 이런 얘기를 해 주셨다. “술자리에서 스포츠팀과 정치 얘기는 피하는 게 좋아.” 이는 출신 국가를 불문하고 맞는 말이다.
9. 일본인과 일어로 대화를 하다 보면 한국어를 쓸 때 보다 깊게, 그리고 복잡하게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드물기에 “A가 OO라고 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 뒤에 숨겨진 상황이나 그 사람의 성격 등을 생각해서 그 의미를 다소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말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 때문에 오해가 생기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나도 말을 할 경우 조심하곤 한다.
*새로운 언어를 습득할 때마다 성격/인격이 하나씩 추가로 생긴다는 이론을 들은 적이 있는데, 어느 정도는 맞는 이야기인 듯하다. 나는 우리말, 영어, 일어를 쓰는데 특히 일어를 할 때 그 이론이 맞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얼마 전까지는 일어를 쓸 때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기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었는데, 이젠 그냥 편하게 말하기로 했다. 피곤하기도 하고 가끔 내가 너무 저자세로 나가나 싶은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내 외모 때문에 한국인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고…
10. 도쿄 사람들은 대체로 차갑다고 한다. 다들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뭔가 차이가 나긴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람과 출신 지역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나도 왠지 그렇게 느끼곤 한다. “서울은 엎어지면 코 베어간다”는 말이 있듯이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나 보다.
다음엔 음식과 술, 쇼핑 등에 대해 쓸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