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엄마 01
“늬 미국 갔다 돌아 오며는 나는 죽어서 읎어.”
할머니의 한마디가 내게 주문처럼 걸려있었던 걸까. 난데없이 새벽에 잠이 깬 날이면 문득 할머니 생각이 났다. 어떤 날에는 할머니가 사라지기라도 할까 봐 두려웠다. 괜찮지 않다는 말이 들려올까 무서워 할머니의 안부를 묻지 못했다.
내가 아기를 낳고 친정에서 몸조리를 하고 있을 때 할머니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와 속싸개에 쌓여있는 우리 아들을 한참 바라만 보다가 가셨다. 할머니는 내가 손주들 중에서도 특별하다 하셨다. 당신이 직접 키운 손주가 그렇지 않은 손주보다 훨씬 더 정이 간다고 하셨다. 둘째인 나를 낳고 두 달 만에 복직해야 했던 엄마를 대신해 할머니는 나를 키우셨다.
당신이 손수 기저귀를 갈아주던 손녀가 제 아들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모습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그날 증손주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눈빛 속에 지나간 세월들이 스쳐가고 있었음을 난 직감 했다.
어릴 적 할머니 집은 우리 집이기도 했다. 2층짜리 주택의 2층에는 우리가 살았고 1층에는 할머니가 살았다.
천둥 번개가 요란하게 치던 무서운 어느 날 밤, 그 이층 집의 2층에서 할머니 등에 업혀있던 내가, 어쩌면 상상일지도 모를 그런 기억 속에 내가 있다. 우르릉 쾅. 벼락이 한 번 내려칠 때마다 내 놀란 마음은 할머니 등짝에 바짝 더 다가가 할머니 냄새를 진정제인 양 흠뻑 들이마셨을 것이다.
나는 엄마를 좋아한 만큼 할머니를 좋아했다. 엄마의 다정다감한 성격은 모두 할머니로부터 나왔다고 생각했다. 할머니 품은 엄마 품 같았다. 나를 오랜만에 볼 때면 할머니는 대번에 나를 끌어안고 “아이고오. 잘 지냈냐?” 묻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할머니는 정이 많았다.
간혹 할머니의 격한 포옹 인사에 울컥하는 때도 있었다. 나를 당신 품 속으로 끌어당기기 전 잠깐 마주친 눈가가 촉촉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인생의 어느 순간 마주치더라도 항상 내가 듣고 싶은, 위안이 되는 단어 하나를 보따리에 고이 싸두었다가 툭, 꺼내 놓는 기술 때문인지 나는 모른다. 아이를 낳고 처음 할머니를 뵀을 때가 그랬는데, 촉촉한 눈을 한 할머니는 벌써 당신 품에 푹 안긴 내게 툭, “욕봤다.” 하셨다.
나의 결혼식 날, 할머니는 신부 대기실에 버선발로 들어와 나를 맞았다. 창호문을 흉내 낸 대기실 문 디자인 때문에 신을 벗어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걸까. 어찌 됐든 결혼식 사진을 확인하다가 문지방에 살포시 놓아진 할머니의 꽃신을 볼 때의 내 마음은, 같은 날 엄마가 남몰래 눈물짓던 사진을 볼 때의 마음과 같았다. 많이 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