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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화 Dec 28. 2017

"내릴 분 안 계시면 오라이!"

콜롬비아, 보고타: 소금 성당 - 2015/08/03(월)

지하철을 한 번 타고,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보고타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소금 성당에 다녀왔다.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거리 풍경들이 어쩌면 보고타 같은 대도시의 진정한 모습일 것이다. 버스에서 바라본 보고타는 여느 도시처럼 한눈에 보아도 부유한 사람들의 동네와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가 확연하게 나뉘어 있었고, 젊은 청년들이 모여 있는 대학 근방에서는 젊음의 활기가 느껴졌으며, 생업을 위해 일하는 노동의 현장에서는 삶의 무게에 짓눌린 사람들이 섞여서 그렇게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었다.


버스 안에서 공연하는 청년들
보고타의 시내버스


도심에서 한 시간 정도 벗어나 한적한 시골마을인 지빠 끼에라(Zipa quira)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시골마을 사람들의 일상이 깃든 정겨운 마을을 관통해 40분 정도 걸어 올라가니 공원처럼 꾸며진 소금 성당의 입구가 나왔다.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시원스럽다.

영어 가이드의 안내를 받기 위해 밖에서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렸다가 약속된 시간에 갱도의 입구에 모여 헬멧을 쓰고 투어를 시작했다. 가이드는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은 갱도가 지하 깊숙이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으니 아이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손을 꼭 잡고 다니라며 우리 일행에게 특별히 주의를 당부했다. 

땅 속에 소금광산이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그 광산의 갱도를 파고 들어가면서 갱도 곳곳에 십자가를 만들고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형상화시킨 구조물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더 놀랍다. 갱도는 우리가 흔히 아는 광산 갱도의 모습과 다르게 높이 15~20m, 폭 10m 규모의 넓은 구조였고 일반에게 개방된 갱도까지 걸어서 왕복 두 시간이 걸리는 꽤 큰 규모였다. 입구에서부터 그 끝까지 사방에 선명하게 패인 곡괭이 자국들은 광부들의 고된 노동의 흔적이었기에 그저 좋은 구경거리라고 감탄만 하기에는 마음이 무거웠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소금 성당은 지하 3층 구조로 만들어진 소금광산에서 일하는 광부들이 위험한 작업을 하는 자신들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했다. 가이드는 그렇게 설명했지만 이 위험천만한 곳에서 목숨을 담보로 작업하는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신앙심을 표현할 자유가 주어졌을지 의문이다. 짐작컨대 광산을 소유한 지배층의 과시욕이나 자기 재산을 지키고 싶은 마음을 담은 이기적인 신앙심의 결과는 아니었을런지.

지빠 끼에라 거리 풍경
소금성당으로 올라가는 길
소금 성당: 보리수 아래 기도하는 사람
소금 성당: 높은 벽면에 음각된 십자가
소금 성당: 피에타
갱도를 파느라 고된 노동에 시달렸을 노동자들의 곡괭이 자국이 선명한 바닥


소금광산에서 나와 소형버스를 타고 보고타 시내로 돌아오는 길, 청년 버스 안내원이 손님을 불러서 태우고 자리를 배치하고 요금을 받고 잔돈을 거슬러 주고 있었다. 능수능란한 그의 모습이 재미있어서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그 청년을 보느라 지루한 줄 몰랐다. 그의 모습에서 70, 80년대 우리네 여성 버스 안내원(‘안내양’이라고 불리던)의 부지런하고 다부진 모습이 겹쳐 보였다. 승객들 대부분이 손에 스마트 폰을 든 현대화된 보고타에 아직 버스 안내원이 존재하는 버스는 1970년대와 2010년대가 뒤섞인 참 재미있는 풍경이다. 


저녁 무렵 숙소에 도착해 숙소 주인 할머니께 저녁 먹을 만한 곳을 여쭤보니 세 블록 건너에 있는 피자집을 추천해주셨다. 간판도 없는 이 식당에는 늦은 저녁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싼 값에 맛있고 양도 푸짐한 식사를 하러 모인 젊은 사람들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싸고 맛있는 조각피자와 치킨으로 주린 배를 채우고 만족스럽게 숙소로 돌아가려니 어둑해진 골목길에 늘어선 동네 청년들이 다소 불량스러운 휘파람 소리를 내며 눈으로 우리 그림자를 좇았다. 배부른 날엔 이런 위협도 조금은 덜 무섭게 느껴지지만, 일단 발걸음은 서두르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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