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보고타: 황금박물관, 주말 벼룩시장- 2015/08/02(일)
야간 버스는 아침 7시에 보고타에 도착했다. 냉동 버스에서 밤새 떨다가 버스에서 내리려니 온몸은 동태처럼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보고타의 버스터미널에서는 쿠폰을 끊어 지정된 택시를 타야 했는데, 승객의 안전을 위해 등록된 택시만 영업할 수 있도록 이런 방식을 적용한 듯하다. 그러나 길눈이 어두운 여행자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택시의 행태는 여전했다.
배낭여행자들에게 소문난 사이따(Sayta) 호스텔에 예약을 해뒀는데, ‘존 엄마’가 운영하는 본점에는 룸이 다 차서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운영하는 분점에 둥지를 틀었다. 작은 키에 곱슬 단발머리를 한 존은 다정한 청년으로 냉동 버스에서 시달리고 택시 기사에게 휘둘리느라 고생했던 우리를 위해 이른 아침인데도 따듯한 커피와 빵, 삶은 계란을 준비해 내왔다.
이 호스텔의 가장 좋은 점은 여행자들이 남긴 방명록의 내용이 알차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여행하면서 좋았던 점과 나빴던 점, 꼭 가봐야 할 곳이나 해봐야 할 일들, 저렴한 맛 집들, 조심해야 할 일 등을 꼼꼼히 적어두어서 다음 여행자가 보고타를 여행할 때 실행착오를 줄이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첫 식사를 위해 우리는 호스텔의 방명록에 소개된 생선요리 식당으로 향했다. 주말을 맞이해 가족들과 식사를 나온 사람들로 북적이는 식당의 한편에 자리를 잡고 방명록이 강력 추천했던 페스까도(Pescado: 소금에 절인 대구요리)를 주문했는데 튀긴 생선에 과일소스를 얹은 부드러운 맛이 우리 입맛에도 잘 맞았다.
한때 전설의 황금도시 ‘엘도라도’라고 불리기도 했던 보고타에는 황금박물관이 있다. 황금박물관에는 잉까시대부터 만들어졌던 황금 장신구와 제사용품들, 왕들의 가면과 의식 및 장식용 식기류 등 다양한 민속 공예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화려한 황금 전시유물 중에서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해학적인 표정과 개구쟁이 같은 몸짓을 하고 있는 진흙으로 구워진 사람의 모양의 토우였다. 신의 힘을 등에 업은 주술사나 왕, 귀족과 같은 권력자들이나, 이후 열강 침략자들의 전유물이었을 황금보다는 이 땅을 지키고 살았던 백성들이 소망과 애정을 담아 흙으로 빚은 소박한 민속품이 더 가슴에 와 닿기 때문일 것이다.
황금박물관 앞의 광장으로 나오자 거기서부터 시작된 메인도로에는 주말 벼룩시장이 열려서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가판대에서 파는 콜롬비아 커피도 마시고, 약장수들의 공연도 보고, 즉석에서 만들어 파는 망고주스도 마시고, 우리네의 그것과 거의 비슷한 곱창 철판구이와 순대도 맛보고, 온갖 잡동사니를 풀어놓고 파는 가판대도 기웃거리며 선선한 가을바람이 부는 보고타에서의 일요일 오후 풍경 속에 섞였다.
자질구레하고 아기자기했던 브라질 리우의 토요 히피 시장, 거대한 골동품 박물관이자 자유로운 땅고 음악 공연장이었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주말시장, 싱싱한 과일과 채소, 마떼 차용 허브꽃 묶음을 파는 생활력이 강한 인디오 여인들과 그들의 화려한 강보에 싸인 아기들의 까만 눈동자가 보석처럼 빛나던 볼리비아 수끄레의 중앙시장, 거리 곳곳이 유머러스한 음악과 만담과 마임 공연장이었던 칠레 산티아고의 주말시장, 거리 화가들의 그림 전시회장이자 고양이들의 휴식처,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살사 댄스장이었던 페루 리마의 주말 공원 풍경, 아직도 자신들의 생활방식을 소중히 지켜오고 있는 인디오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에콰도르 오따발로의 재래시장, 어딘가 모르게 어수룩한 거리공연과 늘어놓은 것은 많지만 살만한 게 별로 없어 보이는 가판대의 물건들이 더 정겨운 이곳 콜롬비아 보고타의 주말 벼룩시장... 그동안 여행했던 나라들의 시장에서 보냈던 시간은 우리 여행에 있어서 그 나라와 그 도시와 그곳의 사람 사는 모습을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이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지금을 사는 현지인들의 삶이 궁금한 여행자라면 과거로의 시간 여행 통로인 박물관보다는 시장으로 갈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