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이과수 국립공원 - 2015/05/01(금)
버스터미널에서 이과수행 버스를 타고 40분을 달려 이과수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이곳에도 꾸아띠들이 있지만 브라질 이구아수의 꾸아띠들처럼 사납게 사람들에게 달려들지 않고 유순하게 사람들 곁을 맴돌았고 아이들에게도 착하게 굴었다.
아르헨티나 쪽 이과수의 백미는 ‘악마의 목구멍(Garganta del Diablo)’이다. 입구에서 국립공원 안을 운행하는 작은 열차를 타고 악마의 목구멍 역까지 가서 거기서 내려 강물 위에 놓인 철제 다리 위를 20분쯤 걸어가면 악마의 목구멍에 도착한다. 철제 다리를 걷는 동안 보이는 강물이 유속이 빠르지 않고 깊지 않아서 과연 이 길 끝에 악마의 목구멍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에 걸맞은 폭포가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그 길 끝에서 만난 폭포의 위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넓은 강으로 흐르던 강물이 일직선의 단층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둥그렇게 뚫린 한 지점으로 쏟아져 내리면서 만들어 내는 물보라와 소리는 주변의 소리와 공기, 중력,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았다. 악마의 목구멍이라는 이름이 가진 그 공포스러움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님을 실감하며 혹시 빨려 들어갈까 마음에 두려운 마음에 난간을 부여잡고 그저 말없이 대자연이 만들어 내는 장관을 응시할 뿐이었다.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인 엘리노어 루스벨트가 이구아수 폭포를 보고 “Oh, poor Niagara!(오, 가엾은 나이아가라 폭포여!)”라고 했다던가. 아마 이곳 악마의 목구멍 앞에 서서 자신도 모르게 뱉어낸 탄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혹여 작고 어린 제나가 다리에 힘이라도 풀려서 빨려 들어가면 어쩔까 싶어서 손을 꼭 잡아 쥐었더니 내 얼굴을 잡아당기며 귓속말로 속삭였다.
“엄마.”
“왜? 폭포가 무서워?”
“아니. 응가 마려워. 급해.”
그 길로 애를 들쳐 안고 20 분 걸려서 걸어왔던 철제 다리를 쉬지 않고 달려서 5 분 만에 돌아 나왔다. 철제 다리가 끝나는 지점의 작은 열차 역 입구에 마련된 화장실의 여성칸은 어디나 그렇듯 바깥까지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더는 참을 수 없다고 울먹이는 제나를 안고 “정말 미안합니다. 우리 딸이 급해서요!"를 외치며 남자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간신히 급한 불을 껐다.
‘Oh, poor mom!'이라고 나 자신을 위로하고 싶었다.
다시 평화를 되찾은 우리는 열차를 타고 폭포 열차역으로 이동해서 높은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이렇게 긴 산책로인 줄 알았다면 미리 유모차를 가져왔을 걸...’하고 후회할 정도로 산책로는 길고 가팔랐지만 그 덕분에 곳곳에 위치한 폭포들을 가까이에서도 보기도 하고 멀리에서 보기도 하고, 위에서 아래로 보기도 하고 아래에서 위로 보기도 하며 다양한 각도에서 여러 가지 폭포를 감상할 수 있었다.
그 아래 낮은 산책로에서는 형주와 민희웅 씨가 어제 예약한 보트 투어를 위해 강으로 내려갔다. 보트를 타고 폭포를 통과하는 투어였는데 투어를 마치고 돌아온 두 사람은 물에 흠뻑 젖은 채 폭포수를 통과하면서 느꼈던 스릴에 대해 얘기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공원 내 투어를 마치고 식당에 들러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메뉴에 쇠고기 튀김 요리가 있기에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는 아르헨티나의 쇠고기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한 입 베어 물었는데 고무처럼 질겨서 좀체 끊기질 않아서 넷이 서로 쳐다보며 한참을 웃었다. 애초에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유명 관광지의 카페테리아에서 너무 높은 수준의 음식을 기대했던 것이 잘못이었으리라.
식사 후 숲 속에 난 트레킹 코스를 따라 사람 키 보다 웃자란 식물들로 빽빽한 숲 속에 사는 원숭이와 새들,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30분 정도 걷다 보니 어느새 국립공원의 출구에 도착했다. 좋은 여행 동반자를 만난 덕분에 형주도 보트 투어를 할 수 있었고 더운 날씨에 길게 이어진 폭포 산책길과 숲 트레킹을 하면서도 아이들은 힘든 티를 내지 않고 즐겁게 일정을 마칠 수 있었으니 그와의 만남은 우리에게 큰 행운이었던 셈이다.
내일이면 우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떠나고 민희웅 씨는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루로 떠난다. 터미널 근처의 라이브 카페(Parrilla Pizza Color)에서 제대로 된 음식을 먹으며 이별 전야를 아름답게 장식하고자 했으나 우아한 식사에 대한 기대는 여지없이 부서지고 말았다. 좁고 흔들리는 야외 테이블에서 바쁜 웨이터에게 음식을 주문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고 한참 후 음식이 나오자 배고팠던 아이들이 급하게 먹느라 음료를 쏟았고 익숙하지 않은 나이프와 포크를 사용하느라 음식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통에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난리법석 조차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묻어나는 추억이 되었으니, 여행이란 참 묘한 힘을 가진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