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한적하고 평화로운 공항

아르헨티나, 이과수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이동 -2015/05/02(토)

by 민경화

공항으로 가는 버스의 출발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배낭을 꾸려서 터미널로 나섰는데, 버스는 예정 시간 보다 한 시간 더 늦게 도착했다. 그 바람에 두 시간 동안 터미널에 앉아 시골 읍내 사람들의 따듯한 배웅과 마중을 바라보며 연한 가을 햇살이 내리쬐는 소읍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99D48E3359EEB05416F707 여행의 절반은 이런 기다림이다.


공항으로 가는 미니버스는 공항 가는 길에 여러 호텔에 들러 사람들을 픽업했다. 그 길에 보이는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빨간 황톳길이 깔린 좁은 골목길, 그 골목마다 담을 넘어 탐스럽게 피어있는 꽃나무들, 파란 하늘을 배경 삼아 가을바람에 낱장으로 불규칙하게 이파리를 팔랑대는 키 큰 나무들, 사각의 푸른 축구장에서 축구공을 차며 노는 사내아이들, 온통 초록 풀로 뒤덮인 들판에 허술하게 지어진 인디오의 판잣집들, 거기서 하얗게 나부끼는 빨래들... 단 이틀 머물렀을 뿐인데도 브라질과 달리 느긋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사람들과 그들이 사는 풍경이 자꾸만 떠나는 이의 마음을 잡아끌었다. 좀 더 나은 숙소로 옮겨서 하루나 이틀 정도 더 지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이 버스가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은 숲 속의 작은 분교처럼 언덕 위에 붉은 벽돌로 지어진 아담한 건물이었다. 워낙 작은 공항이라서 탑승시간까지 기다리는 동안 건물 안에서 할 만한 일이 별로 없어서 건물 밖으로 나왔더니 공항 건물 주변이 온통 숲에 둘러싸여 있었다. 제나 얼굴만큼 큰 솔방울을 주워서 언덕 아래로 던지기도 하고 던진 솔방울을 주워서 누가 먼저 언덕 위로 올라가나 경주하며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로 북적이고 온갖 방송으로 시끌벅적한 인천공항이나 제주공항만 경험하고 살았던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공항 풍경이다. 세상에는 이렇게 한적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가진 공항도 있었다.


9911E43359EEB0B60353E1 숲 속의 시골 분교처럼 아담하고 한적한 이과수 공항


정오 경에 뿌에르또 이과수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어둑해진 시간에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에 도착했다.

외투 깃을 세우고 식민지풍 건물과 현대식 건물이 뒤섞인 거리를 걷는 도회지 풍의 사람들, 넓은 거리를 가득 메운 자동차들, 쓰레기가 흩날리는 거리의 어두운 구석을 쏘다니는 쥐들... 이 곳은 과연 어떤 얼굴을 한 도시일까.

브라질 국경에서 만난 한국인 청년 배낭여행자들의 강력한 추천으로 메트로 E 라인의 보에도(Boedo) 역 근처에 위치한 한인 숙소로 찾아들어갔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시는 인정 넘치는 할머니 한분이 스무 명 정도 되는 젊은 여행자들을 손자 손녀처럼 챙기느라 바쁘신 와중에도, 가장 어린 손님인 형주와 제나를 보시자 한국에 두고 온 손주들이 생각난다며 아이들을 반갑게 보듬어 주셨다.

5월, 한국은 장미가 한창일 텐데 부에노스아이레스의 5월 밤은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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