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엘 찰뗀: 피츠로이 하이킹 - 2015/05/18(월)
새벽 일찍 짐을 챙겨 엘 찰뗀(El Chalten)으로 가기 위해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숙소가 언덕 위에 있었기 때문에 버스터미널에서 올라갈 때도 버스터미널로 내려갈 때도 아이들은 늘 힘에 부쳐했었다. 아직 새벽 별이 보이고 차가운 공기로 가득 찬 길을 잠도 덜 깬 상태에서 짐을 짊어진 채로 걸어서 내려가는 것은 내게도 형주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의 젊은 시절, 힘든 일을 할 때마다 노동요처럼 들려주셨던 푸쉬킨의 시가 생각나 아이들에게 들려줬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이 지나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그리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느니라.’
시가 아이들에게 힘이 되어줬을까. 힘들다고 징징대던 아이들이 말없이 시를 들으며 걸었다.
가로등 불에 언덕 아래로 길게 늘어진 우리 셋의 그림자가 우리를 앞서 걷고 있었다.
엘 찰뗀 까지는 버스로 4시간 거리다.
달걀은 세계 어딜 가나 같은 맛이지만 아르헨티나 옥수수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부드럽고 과일처럼 달콤하고 즙이 가득하다. 아침도 못 먹고 나와야 해서 간식으로 싸온 삶은 달걀과 삶은 옥수수를 꺼내 아이들과 함께 먹고 버스에서 쪽잠을 잤다.
엘 찰뗀에 도착해 버스정류장 바로 앞의 제일 크고 유명한 호스텔(Rancho Grande Hostal)에 들어가 방을 구했으나 예약 없이는 투숙이 되지 않는단다. 바로 앞에 작은 호스텔은 값도 싸고 마당에 양이 있어서 아이들이 마음에 들어 하기에 거기서 짐을 풀었다. 방은 컨테이너 하우스 안에 두 사람이 눕기에도 좁은 침대 하나, 그리고 난방기 하나가 전부였다. 제법 넓은 식당이 있어서 요리하거나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기에는 좋았다.
짐을 풀어 아르헨티나 라면을 끓여 먹고 피츠로이(Cerro Fitz Roy)를 향해 트레킹에 나섰다.
강을 따라 제나를 업고 30분여를 걸었는데 산길이 나오지 않았다. “이 길이 아닌가 봐.” 다시 처음 출발지로 돌아와 마을 주민에게 길을 물어 산행을 시작했다. 아침 일찍 버스로 이동했던 터라 아이들은 숙소에서 쉬고 다음날 산에 가자고 했으나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꼼짝도 못 하고 숙소에만 갇혀 있다가 엘 깔라파떼로 돌아가야만 하는 불상사가 있을 수 있으므로 조금이라도 해가 비치는 오늘 산에 다녀와야 할 것만 같은 생각에 아이들을 재촉했다.
광물질의 특성 때문인지 강물(Rio de Las Vueltas)은 거의 검은색에 가까웠는데, 그 강을 오른편으로 두고 올라가는 길에는 이정표도 없었다. 우리네 산과 달리 거친 풀과 가시덤불로 뒤덮여 있어서 거친 바람에 중심을 잃기라도 하면 온몸이 가시에 찔릴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만 했다. 그래도 힘든 지대를 오르고 나면 발아래로 아찔할 만큼 멋진 풍경이 펼쳐지니 더 높이 오르면 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힘내라고 아이들을 격려하며 올라갔다.
힘들 땐 노래 한 자락이 위로가 되기도 하는 법.
아이들을 뒤에서 밀어주며 그 옛날 국민 만화영화였던 ‘들장미 소녀 캔디’를 선창 했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촌스러운 노래가 재미있었던지 제나는 그 노래를 따라 부르느라고 힘든 줄 모르고 산을 올랐다. 노래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형주까지 합세해 셋이서 열정적으로 합창했다.
“웃어라, 캔디야, 들장미 소녀야~”
이끼 사이로 흘러내려오는 산 물을 받아 마시며 아이들을 응원하며 열심히 산에 오르니 저 멀리 눈 덮인 피츠로이 산꼭대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 반대편에서 산행을 마친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기에 전망대까지 얼마나 남았냐고 물어보니 아직 한참을 가야 하는데, 산이라서 이제 금방 어두워질 테니 오늘은 그만 하산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늦게 출발한 데다 길도 잘못 들었고 아이들과 함께라서 걸음도 늦으니... 고민 끝에 마음을 접고 하산을 시작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금세 산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아쉬운 마음에 고개를 돌려 이제 막 보이기 시작한 피츠로이산를 바라보니 지는 해에 얼음산의 정상부가 반사되어 보석처럼 빛났다. 이렇게라도 봤으니 다행이라고 위안하며 내려가는 발길을 재촉했다.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마을에서 먹을 곳을 찾아 헤맸으나 문을 연 식당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식재료를 사다가 밥을 해 먹을까 싶어 식료품을 파는 마트에 들어가 봤으나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게 더 많았다. 낭패다.
유일하게 영업 중인 선술집(?)으로 들어가니 온 동네 여행자들이 모두 이곳에 모여 있었다. 술은 안 먹고 식사만 해도 되냐고 물으니 그러라며 아이들이 먹을 만한 메뉴를 권해준다. 주문이 밀려 한참 만에야 음식이 나왔지만, 굶지 않고 잘 수 있음에 감사하며 접시를 싹싹 비웠다.
숙소로 돌아가 좁은 컨테이너 하우스의 삐걱거리는 2인용 철제 침상에 셋이 꼭 붙어 누우니, 얇은 컨테이너 위로 우박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한 끼 식사, 얇은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의 단잠... 여행자가 되니 삶의 사소한 것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