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깔라파떼

아르헨티나, 엘 깔라파떼(칠레국경파업 2일째)- 2015/05/21(목)

by 민경화

아침에 눈을 떠보니, 선택하고 말고 할 겨를도 없이 어젯밤에 급하게 들어온 호스텔은 좀 음산했다. 무엇보다 호스텔 주인 남자라는 사람이 그랬다.

세수만 간단히 하고 국경 소식을 듣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버스터미널로 갔다. 파업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버스 운행은 취소되었다고 한다. 다음 버스라도 예약하겠다고 하니까 파업 상황이 불투명하므로 예약도 받을 수 없단다. 미리 사놓았던 버스 티켓을 취소하고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왔다.

“땅으로 못 간다면, 그럼 하늘로 가자!”

아침식사 후 항공사로 찾아가 우수아이아로 가는 비행기 편을 알아보니 항공 이동은 아르헨티나에서 출발해서 하늘길로 칠레국경을 지나아르헨티나에 도착하는 것이었으므로 가능하긴 했는데 비행기 값이 지나치게 비쌌다. 좀 더 고민해보고 오겠다고 말하고 밖으로 나왔다.

빙하투어 가는 날엔 추적추적 비가 내리더니, 이렇게 오도 가도 못하는 맥 빠지는 날엔 하늘도 맑다. 하...

목적도 없이 리베르다지 거리를 걷는데 아이들이 양쪽에서 내 손을 끌고 아이스크림 가게로 들어갔다. 아이스크림 진열장을 보니 피처럼 빨간 진자주색 아이스크림에 ‘깔라파떼’라는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도시 이름과 같은 아이스크림 맛이 궁금해서 주문해 보니, 새콤달콤한 맛이 응집되어 강한 향을 내면서도 부드러운 촉감에 씨가 톡톡 씹히는 재미있는 맛이다. 이곳의 특산물인 깔라파떼 식물의 열매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제주도에서 먹어봤던 백년초 아이스크림과 맛이 비슷했다.

99A63F3359F5F0801CC66A 아이스크림 가게 앞
99EE693359F5F07D2CF821 참새 방앗간 처럼 아이스크림 가게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남매. 형주의 오른 손에 들려있는 것이 깔라파떼 아이스크림이다.
99D6883359F5F0831803A1 아르헨티나 국기를 꽃으로 만들어 걸어 둔 여행사


음산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숙소로 돌아가기가 싫어서 이리저리 거리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개 한 마리가 우리를 향해 뛰어들었다.

“찬차!”

아이들을 알아보고 멀리서 뛰어온 녀석이 어찌나 반갑던지, 눈물이 찔끔 나왔다. 발이 묶여 울적했던 기분이 찬차 덕분에 좀 나아졌다. 찬차와 산책을 하고, 장을 봐다가 밥을 지어먹고... 그렇게 반나절이 지났다.

다시 터미널로 가서 파업 상황을 확인해봤으나 창구 직원들은 말없이 그저 고개만 저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 이렇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걸까...

고민스러운 밤이 또 다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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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41D53359F5F0882577AF 아이들을 알아보고 멀리서 쫓아 온 찬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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