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동반자들

너무 어리거나, 혹은 너무 멋지거나

by 민경화

1. 유제나


여행 당시 만 4세 반, 우리 나이로 여섯 살. 첫째를 낳고 10년을 기다린 끝에 얻은 귀한 딸이다.

빵이나 고기보다 된장국과 밥을 좋아하는 토종 된장녀. 그녀는 내가 배낭을 꾸릴 때 까지도 우리가 어딜 가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엄마가 간다니 거기가 어디든 자기도 가는 거라며 따라나섰을 뿐. 여행을 결정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었으나 어쩌면 4개월 남짓했던 남미 여행을 가장 즐겼던 이는 그녀였던 것 같았다. 가는 곳마다, 쌍꺼풀 없는 긴 눈매의 동양인 어린 여자아이를 볼 기회가 별로 없었던 현지인들과 여행자들에게 매력 발산을 해댔던 통에 그녀는 여행기간 동안 걸 그룹 멤버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그녀의 미소를 보려고 애쓰는 현지인들의 애간장을 태웠던 덕분에 그들과 더 가깝게 소통할 수 있었고 그들로부터 특별한 친절과 서비스를 받았으니, 딸 잘 둔 덕 좀 봤더랬다.

DSC07227.JPG 에콰도르, 갈라파고스


2. 유형주


여행 당시 만 14세, 우리 나이로 열여섯 살. 열 살 어린 제 동생과 똑같은 수준으로 놀다가 종종 말도 안 되게 싸우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여드름 대폭발 소년이다.

중학교 2학년까지 나름대로 성실하게 학교 다니다가 불량 엄마의 꼬임에 빠져 남미 여행에 동참해 남들과 매우 다른 중3 시기를 보냈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다니느라 단단해진 어깨만큼이나 여행 이후 그의 내면도 단단해진 듯하다. 남미로 여행을 가면서 에스파뇰을 하나도 공부하고 가지 않은 대책 없는 엄마와 함께 여행하면서 이리저리 깨지면서 몸으로 체득한 에스파뇰 덕분에 여행 후반에는 엄마가 아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물건 값 흥정을 하곤 했다. 그의 현지 적응 능력과 위기 돌파력은 16년간 그를 키워 온 엄마인 나에게도 놀라운 발견이었다.

페루, 마추픽추


3. 민경화


여행 당시 만 42세, 우리 나이로 마흔넷. 충북 청원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우리 동네와 옆 동네 정도가 세상의 전부인 줄로만 알고 살던 시골 아이였던 나는 국민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온 낡은 책에서 대형 육지거북이와 파란 발 부비새 등 온갖 신비로운 생명체들이 살고 있다는 ‘갈라파고스’에 대해 읽고,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 있다는 그 섬에 가고 싶다는 꿈을 꿨었다. 대통령이나 과학자가 되겠다는 그런 허무맹랑한 꿈처럼 이루지 못할 꿈인 걸 알면서도 가슴에 품었던 그 어렴풋한 꿈이 삼십 년도 더 지난 지금 기적처럼 이뤄졌다는 걸 생각하면 이 세상에 감히 꾸지 못할 꿈은 없는 듯하다. 농사 지어 어렵게 자식을 대학까지 보내셨던 부모님께 내 보일 수 없었던 내 방랑 본능은, 직장생활을 하던 시기에는 커리어를 쌓기에 바빠 뒤로 밀렸다가 결혼한 후에야 비로소 빛을 보게 되었으니 이만하면 결혼을 잘한 셈인 걸까? (그 판단은 좀 더 살아본 후에 해야 옳겠다.) 왕성한 호기심으로 때때로 주변 사람들을 지치게 하기도 하지만 난 나의 그런 점을 좋아한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아주 조금이라도 더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행운을 가졌다면 그건 순전히 내 호기심 덕분일 테니.

20150430_114318.jpg 브라질, 이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