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넷 엄마와 열 여섯 아들, 여섯 살 딸의 4개월 남미 배낭여행
삶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만족과 불만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춘기 질풍노도의 파고가 높아진 열여섯 아들과, 끝없이 사랑해달라고 보채는 늦둥이 여섯 살 딸을 홀로 키우는 엄마였던 나는 불만이 점점 커지다가 언제부터인가 그 만족과 불만 사이의 균형이 심하게 깨지기 시작했던 듯했다.(안타깝게도 남편은 오랜 기간 해외파견 근무 중이었다.)
그 해결책으로 여행을 생각했다. 일상의 자잘한 불만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나 자신'에 집중하고 '살아 있음'의 소중한 가치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다시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어디로 가면 좋을까? 음... 국민학교 때 도서관에서 읽었던 신비한 섬 갈라파고스가 있고, 아들 녀석이 초등학생 때 둘이 함께 읽었던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배경이었던 남미가 좋겠다. 남미라... 지구 반대편에 있다는 그 거대한 대륙? 풉, 말이 돼? 허황되기도 하지...'
그렇게, 내 불만의 치유를 위해 시작된 여행에 대한 허황된 생각은 아들의 사춘기가 극을 향해 치달으면서, 여행은 나보다 어쩌면 아들에게 더 필요한 약이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번졌다.
아들에게 엄마의 여행 계획에 대해 진지하게 물으니, 학업을 중단하고 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이 두렵기도 한 동시에 신나기도 한 모양이었다. 며칠을 신중하게 고민하더니 가고 싶다고 했다.
해외 파견 근무 중인 남편에게 우리 셋의 여행에 대한 생각을 전하자, 늦둥이 딸이 어려서 걱정되긴 하지만 아들이 학교 밖 다른 세상에서 더 많이 배우고 자랄 수 있는 기회가 될 테니 다녀오라며 선뜻 동의해주었다. (그의 동의는, 12년 전 가정생활과 직장생활에 치여 심신이 피폐해진 내가 홀로 인도 여행을 다녀온 사건(?)에 근거했을 것이다. 폐인 같았던 여자가 3주의 인도 여행 후 다시 생기를 되찾고 다시 성실한 직장인으로, 한 남자의 아내로, 한 아이의 엄마로 슈퍼파워를 발휘하던 마법 같은 일이 이번에는 아들에게도 일어나길 기대했을지 모른다.)
한시도 엄마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여섯 살 딸에게 여행에 대해 얘기하니(이건 순전히 요식행위였지만), 남미가 어딘지 4개월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도 모르면서 엄마가 가는 곳이라면 무조건 어디든 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혼잣말처럼 시작된 남미로의 여행은 2014년 10월에 우리 가족 만장일치로 전격 결정되었고, 아들이 고입검정고시를 마치는 2015년 4월 셋째 주로 출발일이 결정되었으며, 어느새 나는 배낭을 짊어진 채 양쪽으로 아이들의 손을 잡고 여행길에 올라 있었다.
누군가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도 있겠다.
"당신 돈 좀 '있는' 모양이야? 남미로 아이들을 데리고 그렇게 쉽게 장기간 여행도 가고..."
사실, 나는 궁색함이 좀 '있는' 사람이다. 합리적인 지출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곳에는 그 누가 뭐라 해도 절대 돈을 쓰지 않는 그런 고집스러운 궁색함.
그런 내가 느끼기에 가장 합리적이지 못한 지출로 여겨지는 것은 아이들의 '사교육비'였다. 정작 아이들이 원하지도 않는데 남의 집 애가 다니니까 우리 애도 뒤처지지 않으려면 보내야 하는, 비쌀수록 효과가 좋을 것으로 여겨지는, 보내 놓고 지출한 만큼의 성과가 좋지 않으면 아이를 닦달할 수밖에 없는, 돈을 쓰면서 아무도 행복해지지 않는 이상한 지출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아들은 초등학교 시절 영어학습지 몇 달과 보습학원 두어 달의 경험을 끝으로 학습을 위한 사교육비를 쓰지 않았다. 아들이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신 그 돈을 모아 함께 해외여행을 하며 나라 밖 세상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 더 교육적이고 합리적인 지출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학교 공부에 충실할 것을 강조해왔다.(결코 학교 성적이 높아서 내린 결정이 아님을 밝혀둔다.)
한 자녀에게 쓰는 한 달 학습 사교육비를 50만 원(상당히 보수적인 금액이다.)으로 예상한다면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9년 동안 5천4백만 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우리 셋이 남미 여행 5개월 동안 지출한 돈이 3천만 원 정도이니, 부자라서 누렸던 여행이 아닌 합리적인 소비로 가능한 여행이었던 셈이다.(3천만 원이라는 비용은 저렴한 호스텔에서 잠을 자고, 값싼 현지식과 직접 만든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장거리 야간 버스를 타고 다니며 교통비와 숙박비를 아껴가며, 가능한 한 궁색하고 험하게 여행한 결과임을 또한 밝혀 둔다.)
4개월 남짓의 남미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우리에게는 험한 여행을 함께 한 동지애와 밤을 새도 다 끝나지 않을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생겼다. 학원을 맴돌며 목적 없이 떠돌았다면 결코 꿈꾸지 못했을 그런 소중한 추억을 우린 벌었다.
여행을 하는 동안 '아이들 때문에 너무 힘들어', '얘들만 없었다면 여행이 얼마나 더 자유롭고 순조로웠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했었음을 고백한다. 나 혼자였다면 좀 더 난이도가 있는 트래킹 코스도 갈 수 있었을 테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늦은 시간의 공연에도 갈 수 있었을 것이며, 더 다양하고 깊이 있는 경험들을 많이 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런데 여행을 마친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 보면, 오히려 아이들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었고, 낯선 곳에서 더 오래 머물며 천천히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었으며, 무엇 보다, 멋진 경험을 나 혼자가 아니라 나 자신보다 소중한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더 의미 있고 행복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쉽지 않은 여행을 함께 해냈던 내 어린 여행 동지들이 앞으로 우리가 함께 해나갈 인생이라는 지난한 여행길에서도 또한 서로에게 든든하고 따듯한 동무가 되어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울러, 우리 셋이 험한 여행을 하는 동안 연락이 닿지 않을 때마다 밤 잠 못 이루며 걱정했을, 제4의 여행 동반자였던 남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