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엘 깔라파떼: 발콘 데 깔라파떼- 2015/05/23(토)
아침 일찍 투어 밴이 우리를 태우고 오늘 우리가 오를 깔라파떼 산 아래 출발지로 데려갔다.
트럭을 개조한 투어 차량이 과연 어떤 모습일까 밤새 궁금했었는데, 대형 덤프트럭의 짐칸을 버스처럼 개조한 어마어마한 크기의 차량이었다. 트럭으로 오르는 계단이 얼마나 가파른지 어른도 손잡이를 잡고 간신히 매달리다시피 해야 올라탈 수 있을 정도였다. 형주는 덤프트럭의 크기와 힘에 매료되어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멀리서 보기에 거대한 시루떡을 켜켜이 쌓은 듯 보였던 깔라파떼 산은 오랜 세월 동안 지층의 융기와 침식으로 만들어진 바위산이었다. 바릴로체에서 서른 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엘 깔라파떼로 오면서 창밖 풍경 속에 자주 등장했던 시루떡 산을 가까이에서 본다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었는데, 드디어 그 바위산에 올라간다니 그간의 호기심이 충족되는 멋진 하루가 될 것이다.
관광용으로 개조된 덤프트럭은 그야말로 힘이 세계 최강 천하장사였다. 바위, 자갈, 물웅덩이, 눈길, 얼음길, 30도는 족히 넘을 급경사길 가릴 것 없이 오르내리며 달렸다. 무적 탱크에 올라 탄 기분이랄까. 차량에 함께 탄 여행자들은 험한 길을 통과할 때마다 환호와 박수로 트럭 운전사를 격려했다.
산 중턱을 넘자 바람이 점점 더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트럭은 중간중간 경치가 좋은 곳에 멈춰서 여행자들이 자연경관을 감상하도록 시간을 줬다. 그중 한 장소에서 어제 먹었던 깔라파떼 아이스크림의 재료로 쓰인 깔라파떼 덩굴나무도 볼 수 있었는데, 허리 높이에 새빨갛고 날카로운 가시가 잔뜩 달린 심술 맞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차를 타고 가다 보면 눈밭을 뛰어다니는 산토끼도 가끔 볼 수 있었다. 산토끼가 깡충깡충 뛰어간 자리에는 귀여운 발자국이 눈 위에 찍혔다. 버스에서 내린 제나는 토끼 발자국을 따라 걷다가 토끼 굴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땅 구멍 앞에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들여다보며 토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귀가 밝은 녀석들이 밖으로 나올지 만무하다.
정상에 도착하니 발아래로 호수와 저 멀리 맞은편 설산과 하늘이 한데 어우러져 기막히게 멋진 풍광을 만들어냈다. 저 설산의 어딘가에 우리가 봤던 그 빙하계곡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수 많은 산자락 어딘가에서는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동물들이 평화롭게 겨울을 즐기며 살고 있을 것이다.
정상 부근은 오랜 풍화작용에도 살아남은 단단한 바위들이 바람과 세월에 몸을 내맡긴 채 서서히 흙으로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각양각색으로 풍화되고 있는 바위들을 배경으로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가 지구 밖 어떤 행성으로 우주선을 타고 날아오기라도 한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정상에서 조금 아래로 내려가니 스키 리조트가 있다. 지금은 운영을 하지 않는지 스키를 타는 사람들은 없고 우리처럼 투어로 온 사람들이 잠시 추운 몸을 녹이고 가는 휴게소로 사용되고 있었다. 방수되지 않는 운동화를 신은 제나는 눈밭에서 노느라 발이 젖어서 꽁꽁 얼어붙었다. 투어 일행 중에는 유쾌한 노부부가 있었는데 할머니가 어찌나 다정하시던지, 제나가 신발을 신은 채 나무장작 난로에 발을 올리고 있자 제나 옆에 앉으셔서 제나의 신발과 양말을 벗겨서 난로 위에 올려놓고 꽁꽁 언 아이의 발을 주물러 녹여주시며 사랑이 넘치는 얼굴로 제나를 들여다보셨다. 전 세계 어딜 가도 할머니들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비슷한 온도인가 보다. 난로 보다 그녀의 따듯한 마음 덕분에 추위가 녹아내리는 듯 했다.
간식을 먹으며 몸을 녹인 후 다시 그 천하장사 개조 트럭을 타고 거꾸러질 듯 곡예를 하며 시루떡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전후좌우로 사정없이 흔들리는 개조 트럭을 타고 가자니 어린 제나는 물론이고 나조차도 서서히 멀미가 일기 시작했다. 다행히 산허리에 멕시칸 모자 모양의 바위 문양이 있는 곳에서 잠시 내려 사진도 찍고 바깥공기를 쐬니 조금 나아졌다. 다시 출렁이는 곡예 운전이 시작되었고 그렇게 30여분을 내려와서야 평지에 닿았다.
시내로 돌아와 습관처럼 버스터미널에 들러 국경 상황을 확인했으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칠레의 뿐따 아레나스에서 산띠에고로 가는 비행기 예약일이 점점 다가오는 상황에서 이대로 칠레로 넘어가지 못하고 아르헨티나에 머물고 있을 수는 없는데, 큰일이다. 일단 대륙의 땅끝 마을인 우수아이아는 일정상 갈 수가 없으므로 포기하기로 한다. 어차피 날씨가 추워져서 펭귄이나 고래도 잘 볼 수 없다는 소식이 들리니 포기를 결정하는 마음이 그렇게 무겁지만은 않다. 이제 우리의 다음 여행 목적지는 칠레의 뿌에르또 나딸레스. 그러나 이것도 이번 주 안으로 칠레 국경을 넘을 수 있어야 가능한 얘기다.
엄마 속이 타들어가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버스터미널에서 다시 만난 찬차와 노느라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