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뿌에르또 나딸레스: 동네 구경 - 2015/05/26(화)
호스텔 란쵸의 관리인과 함께 하는 아침식사는 근사했다. 각종 허브티에 과일, 토스트에 곁들여진 치즈와 계란 프라이, 각종 잼과 꿀까지 라틴 아메리카 여행 중 가장 잘 차려진 아침 밥상이었다. 특히 빵에 발라먹는 꿀은 우리나라의 꿀과는 다른 향기가 났고 입에 넣으면 잼처럼 쫀득거리면서 까끌한 입자도 느껴졌다. 꿀이 맛있다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 사가고 싶다고 하니까, 꿀은 반출 금지 품목이므로 가져갈 수 없으니 머무는 동안 많이 먹으라며 고맙게도 꿀 항아리를 주방에 두겠다고 했다.
든든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이틀 후 산띠아고로 갈 버스표를 예매하러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언덕 위에 위치한 버스 터미널은 동네 분위기와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질 만큼 최신식으로 지어져 있었다. 터미널 옆에는 광부의 동상이 크게 세워져 있었는데 이곳이 예전에 광부들의 도시였음을 보여준다.
날씨가 내내 좋지 않았으나, 내일이 이곳에서 지내는 마지막 날이었으므로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우리는 내일 또레스 델 빠이네(Torres del Paine)에 가야만 한다. 메인 거리를 지나 투어를 신청할 여행사를 찾아 호숫가까지 내려가다 보니 그 거리에 민속박물관이 있어서 잠깐 들렀다. 한편에는 원주민들이 살면서 이용했던 사냥 무기와 만들어 입었던 직물의 문양 등이 전시되어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유럽 이주민들이 들어와 정착하며 들여왔던 유럽인들의 생활용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영어 해설이나 안내문이 없어서 사진들과 전시품들을 눈으로 볼 수밖에 없었지만, 인디오 조상들의 생활 방식과 그들의 자연적인 삶에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을 초기 유럽 이민자들의 문화와 생활방식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호숫가 끝에 있는 호텔 내 여행사에서 내일의 국립공원 투어를 예약하고, 내일의 일일 투어에 준비해갈 도시락을 싸기 위해 마트에 들렀다. 칠레에 왔으니 칠레 농산물의 대표선수인 칠레산 포도와 안데스 산맥이 고향인 감자를 먹어보고 싶었다. 포도는 우리네 마트에서 보던 그 포도가 맞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감자가 보이지 않았다. 답답해진 형주가 감자 칩이 그려진 과자봉지를 들고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그는 토란만 한 작은 자줏빛 알 채소를 가리켰다. 반신반의하며 몇 개를 사다 숙소에서 껍질을 벗겨보니 감자가 맞았다. 칠레의 감자는 한국의 그것보다 촘촘한 식감에 담백한 맛을 가졌다. 볶음밥에 넣으니 부서지지 않고 끝까지 모양을 유지했고 씹히는 느낌도 살아있어서 좋았다. 안데스의 감자 종류가 4천 종이 넘는다고 하는데 한국에서 재배되는 몇 가지 종류만을 감자로 생각했으니 우물 안의 개구리가 따로 없었던 셈이다.
내일 투어에 가져갈 도시락을 준비하는 동안 내 옆에서 재잘대며 놀던 제나는 살짝 맛만 보려고 포도를 한 알 입에 넣더니 너무 맛있어서 멈출 수가 없다며 한 송이를 통째로 들고 먹기 시작했다. 나도 한 알 먹어보니 한국에서 먹어봤던 칠레 포도보다 열 배는 더 달고 싱싱했다. 칠레에 있는 동안 포도와 꿀은 원 없이 실컷 먹어야겠다.
밖에는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다. 밤새 구름이 걷히는 기적을 기대하며, 일인용 침대 두 개를 붙여서 셋이 꼬옥 부둥켜안고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