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재발견

칠레, 뿌에르또 나딸레스: 또레스 델 파이네 투어-15/05/27(수)

by 민경화

여행자들이 긴 나라 칠레의 남쪽 땅 뿌에르또 나딸레스를 찾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또레스 델 빠이네’에 오르기 위해서이다. 1200만 년 전 지각 변동이 일어난 땅을 빙하가 휩쓸고 지나가면서 만든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 땅. 지금은 겨울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에 트레킹 시즌도 아니고 날씨도 변덕스러워서 여행자가 별로 없지만 겨울을 제외한 다른 계절에는 방문자가 많아서 비행기 티켓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또레스 델 빠이네는 세계적인 트레킹 명소이다.

아침 8시에 투어 밴을 타고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투어 밴에는 우리 셋과 운전사인 할아버지와 배우 호아킨을 닮은 가이드 이렇게 다섯뿐이었다. 호아킨 가이드(우리끼린 내내 이렇게 불렀다.)는 사이드 잡으로 사진작가를 겸하고 있었는지 기다란 망원렌즈가 달린 럭셔리한 카메라를 들고 구름이 걷히는 동쪽 하늘에 아침 해가 떠오르는 장엄한 풍경을 렌즈에 담느라 바빴다. 어젯밤의 기도가 통했는지 내내 비가 오고 잔뜩 흐린 얼굴로 일관하던 하늘이 다행히 오늘은 맑게 걷혀 더 푸르고 말간 얼굴로 우리를 맞이했다.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길에 꼰도르와 과나꼬, 양 무리 등 다양한 야생동물들을 자주 만났는데 투어 밴은 그때마다 차를 세우고는 설명해주고 아이들이 충분히 동물들을 볼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다.


99F4E83359F671EB1D8ADD 또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
99E2C93359F671EE1ACD39 하늘이 극적으로 개이고 동쪽에서 동이 터오는 모습
9992413359F671F1234129 공원으로 들어가기 전에 들렀던 휴게소에서 제나는 칠레 국기를 들고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을 외쳤다.
99AA6A3359F671F323B789 공원으로 들어가는 길, 꼰도르 서식지
99C1693359F671F521D8DE 때 마침꼰도르들이 하늘로 날아 올랐다.
9987C53359F671FD1B08F5 공원으로 들어가는 길의 과나꼬 서식지


아침 해가 어둠을 밀어내고 서서히 제 빛을 찾아가자 그 속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또레스 델 빠이네의 상징인 세 개의 날카로운 바위산이 첨탑처럼 그 날 선 자태를 드러냈다. 영롱한 보석이 그러하듯이, 꼬불꼬불 산길을 돌 때마다 빛의 각도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빛으로 빛나는 산봉우리는 그야말로 하나의 거대한 보석이었다. 눈이 시릴 정도다.

그 보석 산을 중심으로 펼쳐진 대자연은 어느 각도에서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예술 작품이었다. 호숫가에 하얀 소금 알갱이가 있을 만큼 진한 농도의 소금호수는 대형 거울처럼 보석 산을 그대로 비춰내며 그 아름다움을 배가시켰다.

‘지구에는 이런 곳도 존재하고 있었구나...’ 상상 그 이상의 아름다움을 마주하니 역설적이게도 눈앞의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996B253359F671F82714F8 저 멀리 모습을 드러낸 또레스 델 파이네
99B40D3359F672001894DE 또레스 델 파이네로 다가 가는 길
990D4D3359F6720325B890 소금 호수에 비친 또레스 델 파이네
995CBC3359F6753B282DE9 호수의 소금 농도가 굉장히 높다. 바닥에 하얀 건 눈이 아니라 소금 알갱이.
99E68F3359F67540314E55


99D8CA3359F6754332A806 여긴, 알프스가 아니라, 칠레 남부 또레스 델 빠이네이다.
99BFDE3359F6754634BF52
9933503359F675492BD136 또레스 델 빠이네를 설명하는 안내판
990C403359F6754B2F59FA 아무렇게나 카메라를 들이대도 훌륭한 작품이 된다.
99FAB23359F6754E343178


99428E3359F675512E3023


이후 여행에서 돌아와 남미의 여행지 중 어디가 제일 멋졌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형주는, 이구아수 폭포, 우유니 소금사막, 마추픽추, 갈라파고스 등 그 기막히게 멋진 여행지들을 다 제쳐두고 항상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칠레 남부의 또레스 델 빠이네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의 대답으로 이곳이 지닌 아름다움의 강렬한 정도가 얼마만큼인지 조금이나마 전달될 수 있을까.

소금호수를 지나 30여분을 달려 도착한 곳에는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폭포가 있었다. 빙하 폭포수는 비취색 물로 흘러내리다가 포말을 내뿜으며 하얗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고 그 위로 작지만 선명한 무지개를 걸어 두었다. 일반 카메라로는 무지개가 잘 찍히지 않았는데 호아킨 가이드는 선글라스를 카메라 앞에 대고 사진을 찍으면 무지개가 잘 나온다며 전문가다운 비법을 전수해주었다.

99FF0C3359F677DC389E92 빙하수가 흘러내려 폭포를 이룬다.
99C9F63359F677DF3C13AD


다시 차를 타기 위해 주차된 곳으로 돌아가니 기다리고 계시던 운전사 할아버지가 풀숲에 아르마딜로가 있다고 알려주셨다. 우리나라에서는 책이나 동물원에서만 볼 수 있었던 아르마딜로를 야생에서 만났으니 얼마나 신났겠는가. 아이들은 철갑 옷을 입은 작고 귀여운 아르마딜로를 따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법석을 떨고 한참을 놀았다.

99C0863359F677E102875E 풀 숲의 야생 아르마딜로
9963E53359F677E40AD20F 숲 속의 야생 과나꼬 무리


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달려 점심식사 장소인 호숫가 호텔로 가는 길에는 산의 한쪽 면이 시커멓게 탄 곳이 눈에 띄었다. 얼마 전에 이스라엘 청년이 던진 담배꽁초가 이렇게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고 하니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수많은 동식물들의 보금자리였을 그 숲이 잿더미에서 다시 푸른 숲을 이루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걸릴까.

우리는 호숫가에 지어진 그림 같은 호텔을 지나 호숫가에 자리를 펴고 앉아 준비해온 볶음밥과 과일과 숙소에서 아침에 제공됐던 간식거리를 풀어놓고 먹었다. 웅장한 얼음산 또레스 델 빠이네를 앞에 두고 유리처럼 투명한 호수가 찰박대는 잔잔한 호숫가에 앉아서 따스한 오후 햇살을 받으며 함께 도시락을 먹었던 그 시간은 우리가 지상에서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소풍 중의 한 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992BA83359F677E735EEB3 맑은 호숫가에서 가을볕을 받으로 점심식사 중
99AAF83359F677EA04B974


점심식사 후 한 시간 반 가량 투어 밴을 타고 달려 빙하가 떠 있는 호수로 갔다. 사실 엘 깔라파떼에서 거대한 빙하를 보고 왔던지라 저 멀리 빙하 덩어리 몇 개가 떠 있는 정도의 빙하 호수에는 별 감흥이 없었으나, 호수로 가는 길에 지나가야 했던 광활한 벌판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사막이 아닌 산중에, 호수 앞에, 대형 아파트 단지를 수백 개쯤 건설한 요량으로 편평하게 다져놓은 땅처럼 이토록 거대하게 넓은 자갈밭이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9924DA3359F677EC0F5E77 호수 저편으로 보이는 작은 빙하 조각들
99D0543359F677EF03996C 원근감을 이용한 착시 사진을 찍을 수 있을 만큼 드넓은 자갈밭
996ED93359F677F10B828D 호수에서 돌아 나오는 길의 나무 다리. 다리 아래로 빙하수가 흐른다.


그곳에서 다시 한 시간을 달려 굽이굽이 감아 도는 길을 따라 높은 지대로 올라갔다. 주로 바위지대인 이곳은 아르헨티나의 메마르고 거친 시루떡 산과 달리 풀과 나무가 자라고 바위틈으로 물이 흘러 이끼가 자라는 풍요로운 모습이었다. 앞이 탁 트인 지대에 다다르자 바다처럼 드넓은 강이 발아래로 펼쳐졌다. 오후 햇살을 받아 물비늘을 일으키며 신비롭게 반짝이는 강의 풍경은 가슴 후련한 청량감마저 주었다.


9934C23359F67A2C095B4A


99243D3359F67A2F0BB40A


국립공원 투어의 마지막 방문지는 밀로돈이라는 초식공룡의 뼈가 발견됐다는 동굴이다.

남자아이를 키워본 엄마라면 대여섯 살까지 공룡에 빠져 사는 아들 덕분에 웬만한 공룡이름들은 줄줄 꿰고 있게 마련인데, 밀로돈이라는 공룡이름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거대한 동굴의 입구에 멀리서 보기에 곰처럼 보이는 동상이 서 있었는데, 곰의 조상이라기보다는 나무늘보의 조상쯤 된다고 했다. 호아킨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발견된 진짜 뼈와 가죽은 모두 영국 박물관에 보관 중이고 이곳에 전시된 것들은 모두 모조품이라고 한다.

화산이 폭발하고, 바위산이 솟아오르고, 바다가 육지로 변하는 선사시대에, 밀로돈과 거대한 공룡들이 이 땅의 주인으로 살다가 사라졌을 그 다이내믹한 지구의 역사를 머릿속으로 그려 보니, 인류는 어쩌면 지구에 잠시 머물다 사라질지도 모르는 작은 종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존재일 뿐인 인류가 마치 지구의 진짜 주인이라도 되는 듯이 함부로 자연을 파괴하며 스스로의 종말을 재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레스 델 빠이네를 보고 나니, 마치 제가 가진 보물의 가치를 모르고 함부로 가지고 놀다가 뒤늦게 그 보물의 가치를 알아차리고 놀란 어린아이 같은 심정이 되었다. 지구라는 아름다운 보물. 더 늦기 전에 뭐라도 해야겠다. 지구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그 어떤 일이라도.


99193C3359F67A7A150B6A 밀로돈의 실제 크기로 만들어진 동상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거 감자 맞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