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기사님, 우리 이제 돈 없어요."

칠레, 나딸레스에서 산띠아고로 이동 - 2015/05/28(목)

by 민경화

어젯밤 투어에서 돌아와 셋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숙소 거실에 꽂혀있던 영화(Into the Wild)를 보는데, 창밖에서 빗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또레스 델 빠이네 투어를 갔던 어제 하루 동안만 기적처럼 하늘이 걷히고 다시 비가 오는 것이다. 엘 깔라파떼 버스터미널에서 모세 아저씨 부부를 만나 파업 중이었던 칠레 국경을 극적으로 넘어온 우리에게, 하늘이 이런 선물을 주시다니... 다시 한번 “Gracias a la vida.”

숙소 관리인이 차려준 근사한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배낭을 짊어지고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뿌에르또 나딸레스에서 뿐따 아레나스로 버스 이동 후, 뿐따 아레나스에서 비행기로 산띠아고 까지, 오늘은 하루 종일 이동만 하는 날이다. 어둑한 이른 아침에 출발했는데 뿐따 아레나스 공항에 도착하니 정오였다. 공항에서 짐을 부치고 나서 준비해온 도시락을 펼쳐 놓고 먹으며 탑승시간을 기다렸다. 칠레 국경 파업으로 엘 깔라파떼에 발이 묶여 있는 동안 이 비행기를 놓칠까 봐 마음 졸였던 기억을 떠올리니 산띠아고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이 순간이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992AAE3359F835DE07F084 이동 중에 아이들 먹이려고 뿌에르또 나딸레스에서 준비해온 간식. 뿐따 아레나스 공항에서 펼치고 먹었다.
99764F3359F836A4043B8F 뿐따 아레나스에서 산띠아고로 가는 비행기의 창 밖 풍경


비행기는 세 시간 반을 날아 산띠아고에 도착했다.

Airbnb로 예약해둔 숙소 주소를 택시 기사에게 보여주니 그 지역이 시위 때문에 진입이 불가능하니까 돌아가야 한다며 비싼 값을 불렀다. 어렵게 가격을 흥정하고 택시에 올라타니 이번에는 숙소 주소의 위치를 정확히 모르겠단다. 숙소 주인의 전화번호를 알려주니 그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며 여기저기 전화를 하며 수선을 떨다가 숙소 주소의 골목에 도착했는데, 이제는 어떤 건물인지를 모르겠다며 30여분을 헤맸다. 그렇게 한참을 헤매다 숙소 주인과 간신히 전화연락이 돼서 위치를 확인하고 보니 우리가 맴돌았던 그 거리 맞은편에 숙소가 있었다. 택시 기사는 숙소를 찾느라 자기 시간을 많이 썼다며 원래 가격보다 세배 비싼 값을 달라고 했지만 우리는 주머니 탈탈 털어 보여주고 돌아섰다. 낯선 도시에서 겪게 되는 택시 기사들의 바가지 상술은 만국 공통이니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자고 몇 번이나 다짐하지만, 매번 당할 때마다 그 불쾌함에 도저히 적응되지 않는다.

천신만고 끝에 숙소에 도착해 배낭을 내려놓고 둘러보니 다행히도 꽤 괜찮다. 근처 마트에 가서 돈을 찾아 장을 봐다가 과일과 빵으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고 침대에 누웠다. 이 도시에서 우리는 또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이야기를 만들게 될까?

산띠아고에서의 첫 번째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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