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산띠아고: 와이너리 투어, 해산물 시장- 2015/05/30(토)
남미 대륙에는 대표적인 와인 생산지가 두 곳 있다. 하나는 아르헨티나 중부의 멘도사, 그리고 또 한 곳은 칠레의 산띠아고이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멘도사를 거치지 않고 바로 바릴로체로 이동했기 때문에 와이너리 투어를 놓쳐서 아쉬움이 남았었는데, 오늘 이곳 산띠아고에서 그 아쉬움을 달래기로 했다.
전철을 타고 한 시간 정도 거리의 라스 메르세데스(Las Mercedes) 역에 내려 바로 그 앞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가면 ‘까시예로 델 디아블로(Casillero del Diablo: 악마의 저장고)’로 유명한 와이너리, 꼰차 이 또로(Concha y Toro)에 도착한다.
칠레의 전철은 남미에서 가장 최근에 건설되어서 그런지 청결하고 쾌적했다. 서울의 지하철보다는 약간 작고 인천 지하철보다는 약간 큰 듯하다. 자유롭게 전철 바닥에 앉아 책을 읽는 청년, 기타를 둘러메고 찬송가인 듯한 노래를 부르고 다음 칸으로 넘어가는 젊은 남녀 커플,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고 우리 트리오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는 할머니, 소풍 가는 것으로 보이는 아이들... 토요일 낮 전철 안의 모습은 우리네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지하철이 도심의 지하 구간을 벗어나 시외의 지상 구간으로 나오니 포도밭과 어우러진 차창 밖 풍경이 정겹다. 칠레에 화교가 많이 사는지 거리의 간판에서 한자로 된 중국음식점이 자주 보였다. 라스 메르세데스 역에서 내려 ‘꼰차 이 또로’가 쓰인 마을버스를 타고 차비를 내니 운전기사가 우리네 예전 회수권 모양의 누런 갱지 버스표를 건네주었다. 검게 그을린 이마에 깊게 주름이 패인 순박한 얼굴의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를 가득 태운 마을버스는 시끌벅적한 시골 장터 분위기의 소읍을 통과해 꼬불꼬불 시골길을 달려 우리를 작은 시골마을에 내려줬다.
유서 깊은 와이너리의 분위기를 풍기는 입구를 지나면 이 와이너리를 만든 돈 멜초르 꼰차 이 또로(Melchor de Concha y Toro) 부부가 살았던 저택과 아름다운 분수대가 있는 잘 가꿔진 정원이 나온다. 정원을 지나 5분여 거리에서부터 드디어 포도밭이 시작되었다. 품종별 이름표가 붙여진 이 포도밭은 우리가 방문했을 당시 포도가 열리거나 수확하는 계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누렇게 마른 잎사귀를 매단 파리한 나뭇가지만 늘어서 있었으나, 포도가 한창 싱싱한 계절이었다면 포도밭 입구에서부터 새콤달콤한 포도향기가 느껴졌을 것이다. 현재 이곳은 품종개량의 목적으로 유지되고 있고, 와인 생산을 위한 넓은 포도밭은 칠레 중부지역에 따로 있다고 한다.
포도밭을 둘러본 후 투어 일행은 와인 저장고로 이동했다.
저장고 입구에서 화이트 와인을 시음했는데 시원하게 마시니 청량함이 배가되어 더욱 맛있다. 자신이 마셨던 와인 잔을 기념품으로 받았는데, 와이너리 이름이 새겨진 와인 잔이라 충분히 기념이 될 만한 기념품이었으나 남은 여행기간 동안 깨지 않고 한국까지 가져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저장고로 들어가는 문은 중세의 성문처럼 육중한 나무문이었다. 가이드가 그 문 앞에 서더니 장난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악마의 허락을 받지 않으면 저주에 걸린다며 겁을 준다. 저장고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서늘한 공기와 축축할 정도의 습도가 느껴졌다. 거대한 와인 통에 담긴 와인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저장고를 돌아보는데, 갑자기 불이 꺼지고 음산한 목소리가 악마의 저장고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림자 인형극 형식으로 만들어진 와인 도둑 잡는 악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형주는 킥킥 거렸고 제나는 무섭다며 엄마한테 찰싹 들러붙어 내 목을 꼭 껴안았다. 당시에는 와인 저장고에 들어오는 도둑에게 겁을 줘서 쫓기 위해 와이너리 주인이 만들어낸 고육지책이었을 텐데 지금은 상품 판매를 위한 최고의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으니, 세월에 따라 사람들의 취향은 참 변덕스럽게 변한다.
‘와인 익는 마을’에서 나와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산띠아고 시내로 돌아왔다. 와이너리에서는 식당 바로 앞 벤치에서 궁상(?) 맞게 도시락을 먹었으니 저녁에는 산띠아고의 명물이라고 일컫는 해산물 요리를 먹을 것이다.
토요일이라 그랬는지 2호선 뿌엔따 깔 이 깐또(Puenta Cal y Canto) 역에서 내려 아르마스 광장으로 가는 거리는 인파로 가득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마다 각종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멋진 공연은 북을 치며 춤을 추는 북 공연이었다. 아르마스 광장이 있는 거리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북소리가 어찌나 강렬하던지 광장과 이어진 거리의 초입에서부터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검은 모자에 검은 조끼와 바지를 맞춰 입고 자기 몸 보다 큰 북을 등에 메고 발에 연결된 북채로 장단을 맞춰 춤을 추며 북을 치는 가족들. 네 살가량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와 10대 소년, 20대 큰형, 30대 삼촌, 40대 아버지 등 집안의 남자가 총동원된 북 공연단의 공연은 둥둥 울리는 북소리와 함께 에너지 넘치는 춤이 어울려 시선을 떼기 어려울 만큼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북 공연을 보고 나서 물어물어 수산물시장(Central Mercado)에 도착했는데, 여기는 호객꾼들의 천국이다. 손님을 끌기 위해 계속 말을 걸고 심지어는 옷자락도 잡아끈다. 셋이서 단단히 손을 잡고 저렴하면서도 맛이 있을 것 같은 식당을 찾아 나섰다.
시장은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았다. 거의 한 바퀴 다 돌아볼 즈음, 시장 구석 쪽에 테이블이 따닥따닥 붙어 있는, 소박하지만 사람들로 붐비는 식당을 찾았다. 메뉴판에 사진이 변변치 않아 음식을 고르는데 한참 애를 먹다가 그냥 옆 테이블 사람들이 먹는 걸 주문했다. 국물이 있는 조개요리와 각종 해산물을 버터와 소스로 요리한 음식이었는데 부드럽고 깊은 해산물 맛이 어우러진 훌륭한 요리였다. 거기에 탄산 맛이 강한 화이트 와인도 한잔 곁들이니 환상적인 조합을 이룬다. 생각보다 음식 값이 싸지 않아서 그렇게 맛을 보는 정도로만 간단히 먹고 식당을 나왔다.
식당 바로 앞에 엄청난 크기의 홍합을 파는 곳이 있어서 거기서 홍합을 한 봉지 사들고 숙소로 돌아오며, 우리는 소래포구를 떠올렸다. 갯내음이 나고 바다 새가 춤추고 온 동네가 조개구이 냄새로 왁자지껄한 그곳. 산띠아고에서 소래포구를 떠올렸듯이 우리는 어쩌면 나중에 소래포구에 가서도 칠레 산띠아고의 해산물 시장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추억의 고리가 하나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