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산띠아고: 발빠라이소, 비냐 델 마르- 2015/06/02(화)
산띠아고에서의 마지막 날은 해안도시 발빠라이소(Valparaiso)에서 보내기로 했다.
산띠아고 버스터미널에서 두 시간 거리의 발빠라이소로 가는 길은 끝도 없이 펼쳐진 포도밭의 향연이었다. 전 세계인의 식탁에 달콤한 포도와 풍미 깊은 와인을 제공하는 농업 대국다운 면모를 이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발빠라이소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여행사 직원이 버스투어 상품 안내에 열을 올렸다. 우리는 오늘 저녁에 산띠아고로 돌아가야 했으므로 하루 동안 발빠라이소의 명소와 옆 도시 비냐 델 마르를 돌아보는 버스투어 상품은 그리 나쁘지 않은 여행 방법이 될 것이라고 믿었기에 별 망설임 없이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쁘랏 부두(Muelle Prat)에 잠시 들렀다. 그곳에서 항구들 둘러싸고 빼곡하게 늘어선 언덕 위 달동네인 꼰셉시온(Concepcion)을 보여주고는 곧 그곳으로 올라갈 것임을 예고했다. 부두에서 출발한 버스는 시내에 위치한 광장 서너 곳을 들렀다가 바닷가에 위치한 소또마요르 광장(Plaza Sotomayor)에 잠시 머물러 태평양 전쟁의 해군 영웅 기념탑과 석조 건물로 이뤄진 금융가에서 멈춰 섰다.
칠레가 말하는 태평양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과 연합군의 전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1879년부터 1883년까지 4년 동안 치러졌던 칠레와 볼리비아 연합군의 전쟁을 뜻한다. 19세기 초 프랑스 나폴레옹에게 패배한 스페인은 국내 정치의 불안으로 식민지 관리에 소홀했는데 그 틈을 타 남미 대부분의 스페인 식민지들이 독립을 선언하게 된다. 풍부한 지하자원을 가진 태평양 연안의 안또파가스따(Antofagasta)는 독립 당시 볼리비아의 영토였는데 볼리비아는 개발 여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25년간 개발권을 칠레에게 넘긴다. 이후 볼리비아가 안또파가스따에서 수도까지 철도로 놓고 그 소유권을 주장하고 칠레 개발업자들의 자산까지 압류하자 칠레는 전쟁을 선포하고 강력한 해군력으로 볼리비아와 페루 동맹군을 물리친다. 이 전쟁으로 볼리비아는 태평양 연안으로 빼앗겨 내륙국으로 전락하게 되고 페루도 남동쪽 지역을 칠레에게 빼앗기고 마는데, 칠레는 종전 이후 늘어난 이들 땅에 매장된 지하자원과 태평양 연안의 풍부한 어족 자원으로 막대한 부를 이루게 된다. 최근 페루는 빼앗긴 영토에 대한 소유권을 국제사법재판소에 제기해 2014년 1월 승소하며 일부 영토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받는데 성공했고, 볼리비아는 자신들의 영토였던 안또파가스따와 태평양 연안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국제사법재판소에 소를 제기한 상태이다. 남미의 영토 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꼰셉시온으로 올라가는 꼬불꼬불한 달동네 길은 차량의 양방향 통행이 어려워 보일만큼 좁고 가팔랐다. 언덕을 따라 바닷가부터 언덕 꼭대기까지 빼곡히 지어진 집들은 급경사면에 짓다 보니 바닥 공사랄 것도 없이 경사면에 가느다란 나무 기둥을 몇 개 박고 그 위에 바로 집을 올려놓은 장난감 같은 형국이었다. 그런 집들이 있는 곳은 그야말로 달동네지만, 그곳을 벗어나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별장처럼 멋지게 지어진 부촌도 있다. 그렇게 잘 사는 집과 못 사는 집들이 다양한 파스텔 톤으로 채색되어, 멀리서 볼 때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그 작품 속에 빠블로 네루다의 집이 있었다. 어제 산띠아고 시내에서 휴관일로 방문하지 못했던 곳은 그가 주로 생활했던 집이고 별장으로 사용된 두 채의 집이 더 있었는데 이곳 발빠라이소에 있는 네루다의 집은 두 별장 중의 하나로 바다와 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지어진 휴식처 같은 공간이었다.
칠레로 여행을 오기 전에 나는 네루다를 두 권의 소설 속에서 만났다. '네루다와 우편배달부'라는 소설에서는 젊은 청년 마리오의 사랑을 도와주는 존경받는 늙은 시인이자 독재자에 저항하는 정치가로 나오고, '영혼의 집'이라는 소설에서는 이상을 좇아 방황하며 현실 정치에 뛰어드는 젊은 시인(주인공의 주변 인물)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두 권의 책으로도 네루다에 대해 알고 싶었던 내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다.
어떤 이는 그를 '뜨겁고 감각적인 사랑의 시인'이라고 했고, 다른 이는 그를 '철학보다 죽음에 더 가깝고, 지성보다 고통에 더 가까우며, 잉크보다 피에 더 가까운 가장 위대한 라틴아메리카 시인'이라고 말했다. 네루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의 인생 역정을 살펴보면 그의 시대는 깨어있는 그를 그저 시인으로만 살 수 있게 내버려두지 않았던 것 같다. 시인이자 외교관이었던 그는 스페인 내전 당시 파시즘에 맞서 저항하다가 파면당하고 난 후 공산당에 입당해 현실 정치에 참여하면서 검거령으로 오랜 망명생활을 하게 된다. 1969년 공산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지만 살바도르 아옌데로의 후보 단일화를 위해 후보에서 사퇴한다. 그러나 1973년 9월, 아옌데 대통령을 살해한 삐노체뜨에 의해 쫓기면서도 마지막까지 저항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그의 영혼의 친구였던 아옌데 대통렬이 살해된 날로부터 2주 후 지병으로 사망하고 만다.
그가 자주 앉아 창문 밖으로 바다와 언덕 아래 동네를 바라보며 시를 쓰곤 했을 그의 방을 돌아보면서 내 위시 리스트에 하나의 항목을 추가했다. 네루다의 시 한 권 읽기.
그렇게 여행에서 돌아와 가장 먼저 읽은 책은 네루다가 말년에 남긴, 온통 질문으로 채워진 ‘질문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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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그는 알까
그리고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왜 우리는 다만 헤어지기 위해 자라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을 썼을까?
내 어린 시절이 죽었을 때
왜 우리는 둘 다 죽지 않았을까?
만일 내 영혼이 떨어져 나간다면
왜 내 해골은 나를 좇는 거지?’
그의 시를 읽는 내내 삶에 대해 관조적 시선을 던지는 늙은 시인의 어린아이 같이 어리석으면서도 현자처럼 현명한 물음들에 대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하게 되었다. 어떤 날에는 '나였던 그 아이'와, '그 아이'를 불러낸 늙은 시인, 그리고 지금의 내가 함께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정말이지 아주 묘하고 가슴 뛰는 삼자대면이었다.
어쩌면 나는 이렇게 멋진 사람이 나 보다 조금 앞서 살다가 갔다는 걸 내 마지막 순간까지 모르고 멀뚱히 살다가 죽었을지도 모른다, 도서관에 숨겨졌던 책에서 그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네루다를 알건 모르건 그깟 게 무슨 대수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그를 알지 못했다면 내 인생은 어쩌면 지금보다 더 시야가 흐리고 밋밋한 맛이었을 것만 같다.
네루다라는 멋진 사람을 내게 소개해 준 인생이여, 고맙습니다. Gracias a la vida!
버스는 꼰셉시온에서 내려와 바닷가 도로를 타고 20분 정도 달려 휴양도시 비냐 델 마르에 도착했다. 비냐 델 마르의 초입에 만들어진 꽃시계를 시작으로 태평양의 아름다운 해변을 따라 고급 호텔과 각종 휴양시설이 늘어서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버스는 투어 일행들을 고급 식당에 들여보냈으나 우리는 밖으로 나와 바닷가 바위에 앉아 이 바다 건너편에 있을 인천 송도의 우리 집을 생각하며 준비해온 도시락을 먹었다.
점심 식사 후에는 이스터 섬에서 가져온 모아이 상이 서있는 역사 고고학 박물관에 들렀다. 우리네 제주의 돌하르방처럼 이스터 섬의 상징물이 된 모아이는 주로 사람의 머리 부분이 강조된 상반신 조각상으로 종교적인 목적으로 제작되었을 거라는 추측만 있을 뿐 정확한 제작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언덕을 따라 섬의 중앙부를 향해 나란히 세워진 거대한 조각상은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어울려 신비로운 풍경을 만든다고 하나 우리는 사진으로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버스의 마지막 방문지는 베르가라 광장(Plaza Jose Francisco Vergara)이다. 광장 옆의 공원은 야자수가 빽빽이 자라고 있는 숲이었다. 매년 2월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들이 공연을 하는 국제 음악축제가 열린다고 하는데 공연장의 규모가 제법 컸다. 이 공원은 전체가 베르가라 가문의 거주지였는데 그들이 거주했던 건물은 현재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서 아쉽게도 미술관에는 들어가 보지 못했다.
버스 투어가 끝나고 나니 어둑한 저녁이 되어 있었다. 다행히 버스 터미널 앞에 음식 노점상들이 늘어서 있어서, 꼬치구이랑 엠빠나다, 빵을 사들고 산띠아고행 버스에 올라 사 온 음식으로 간단히 저녁을 해결했다. 아침 일찍부터 움직이느라 많이 피곤했던지 잠깐 눈을 붙이고 나니 버스는 벌써 산띠아고에 도착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