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아따까마: 달의 계곡 - 2015/06/04(목)
진정한 사막을 느끼려면 아따까마 사막에서의 일몰과 밤하늘, 그리고 일출을 보는 1박 2일 투어 정도는 가줘야 한다. 그러나 여러 여행사에서 상담을 받아 본 결과 여기 나이로 네 살 반인 어린 제나를 데리고 사막에서 1박 2일을 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고 그래서 우리는 사막 일몰 투어만 하기로 했다.
‘달의 계곡’ 일몰 투어는 오후 3시에 사막으로 출발한다. 사막에서의 일몰을 보는 것이 주된 목적인지라 더위를 피해 오후에 느지막이 출발한단다. 어제 깔라마 공항에서 아따까마로 오는 길에서도 지구의 지각변동이 빚어놓은 멋진 풍경을 일부 감상할 수 있었는데, 오늘은 소금 성분이 흙에 녹아들어 만들어낸 거친 사막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따까마 마을을 출발해 40여분을 달린 투어 밴이 처음 내린 곳은 모래 바위가 바람과 물에 깎여 만들어진 길이었다. 가이드가 지형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듣느라 집중하는 사이에 제나가 질퍽한 소금 모래 진창에 발을 내디뎌 그대로 신발을 모래진창에 빠뜨리고 양말까지 진흙투성이로 만들었다. 제나의 돌발 행동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사실 풀 한 포기 키워내지 못할 이 메마른 사막에 그런 진창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나는 투어 시작부터 내내 한 손에 진흙 범벅이 된 제나의 운동화를 들고 때로 제나를 등에 업거나 팔로 안고 다니며, 주로 청년으로 구성되어 발걸음이 빠른 투어 일행을 바쁘게 따라다녀야만 했다.
투어 일행에 뒤쳐질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사막을 온몸으로 즐기는 제나 때문이기도 했다. 형주야 그동안 책이나 TV에서 사막을 봐왔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사막이라는 대상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사막을 처음 보는 여섯 살 제나에게는 이 거대한 흙장난판이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었으리라. 운동화를 벗은 김에 양말 발로 모래를 밟으며 걷더니, 발을 모래 속에 담그고 질질 끌며 걷다가, 이내 엎드려 네발로 모래 위를 기기 시작했다. 간신히 일행을 따라잡은 곳에서는 기분이 한껏 좋아져서 아예 뒤로 누워 팔다리를 휘저으며 바닥에 천사의 날개를 만들며 땅강아지처럼 뒹굴었다. 겉으로는 짐짓 점잖은 어른인 척하며 제나를 만류했으나, 내심 부러운 마음으로, 사막을 제대로 즐기는 어린 딸을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사막 모래 구간이 지나자 소금에 흙이 엉겨 붙어 단단하고 거친 사막 지대가 시작되었다. 바닥이 날카로워서 이 구간부터는 양말 발의 제나를 업고 다녀야 했다. 소금 성분이 많은 지역은 얼음처럼 표면이 하얗고 단단했고 자갈 흙이 많이 섞인 지역은 소금에 거친 자갈 흙이 엉겨 붙은 거대한 바위에 사방이 에워싸여 있었다. 바다가 융기되고 육지가 가라앉는 다이내믹한 지구 대변동의 시간을 거치는 동안, 바람과 세월이 함께 만들어낸 천연의 작품들은 거칠고 황량하며 아름다웠다.
그나마 바람을 등진 언덕의 한 경사면에는 예전에 인디오들이 소금과 흙이 엉겨 붙어 단단하게 굳은 바위를 쪼개서 만든 벽돌로 집을 짓고 살았던 마을의 흔적이 있었다. 이 소금 흙 바위로 만든 벽돌집은 낮에는 사막의 더위로부터 지켜주고 밤에는 낮 동안 저장되었던 열로 추위를 피하게 해주는 유용한 주택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처에 물이 없어 가축을 키울 수도 없고 농작물을 키워낼 수도 없는 이 척박한 땅에서 아이들을 낳고 키우며 힘겹게 살았을 인디오들의 삶은 얼마나 고된 것이었을까.
일부 지역은 인디오 단체 소유지라서 비싼 입장료도 내야 하고 돌로 표시된 사유지로 들어가면 높은 벌금을 내야 한다고 가이드가 불만 섞인 목소리로 주의를 주었는데, 사실 인디오로부터 더 많은 것을 빼앗은 침략자의 후손이 가질만한 불만은 아니지 않은가. 척박한 땅 마저 빼앗지 못해 아쉬워하는 정복자의 오만이 밉다.
해가 기울어지면서 투어 밴은 서서히 높은 지대로 올라가더니, 이내 달의 계곡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높은 지대에서 일행을 내려줬다. 각자 다른 여행사를 통해 사막 투어를 나왔던 여행자들이 한 곳에 모여 각자 자리를 잡고 조용히 사막의 일몰을 기다렸다. 멋진 일몰을 감상할 욕심에 소금 성분에 의해 날카롭게 깎인 절벽 끝 바위에 걸터앉으니 발아래로 보이는 백 미터 정도 되는 높이의 절벽이 아찔하다. 조심성 없이 걸어 다니다가 혹시 실수로 발을 헛디딜까 걱정되어 아이들을 데리고 얼른 뒤로 물러섰다. 그 높이에서 바라보니 거친 사막의 모습 때문에 외계 행성이나 달이 나오는 영화의 배경이 되면서 붙여졌다는 ‘달의 계곡’이라는 이름이 새삼 실감 났다.
곧이어 멀리서 하늘을 주홍빛으로 물들이며 붉은 사막의 지평선 너머로 해가 졌다. 붉은 사막 위로 또 다른 붉은빛으로 하늘을 물들이고 넘어가는 사막의 일몰을 바라보는 것은 어떤 종교적 체험처럼 엄숙하고 경이로웠다. 태양신을 섬겼던 고대인들의 마음이 온전히 이해될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