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아따까마에서 볼리비아 우유니로 이동 - 2015/06/07(일)
오늘은 칠레에서 국경을 넘어 볼리비아의 소금사막이 있는 우유니로 가는 날이다.
새벽에 출발하는 국경 버스를 타기 위해 잠이 덜 깬 아이들을 깨워 배낭을 짊어지고 약속된 장소로 나갔다. 샛별이 빛나는 추운 골목길에는 개 짖는 소리와 닭 우는 소리만 간간이 들릴 뿐 사람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데 7시에 출발한다는 버스는 30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버스표를 판매한 여행사도 문을 열지 않았고 도움을 청할만한 곳이 없어서 형주를 남겨두고 제나와 함께 경찰서로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야간 근무를 하던 경찰관들도 여행사가 문을 열지 않은 시간에 어디 연락해볼 만한 곳이 없으니 여행사가 문을 열 때까지 난로 근처에서 몸이라도 녹이라며 기다라고만 했다. 형주를 혼자 추운 곳에 두고 왔으니 우리만 난롯가에서 기다릴 수도 없어서 다시 버스 타는 곳으로 돌아가서 그곳에서 벌벌 떨며 한 시간 반을 기다리니 그제야 미니버스가 골목을 돌아와 우리 앞에 멈춰 섰다.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항의해봤으나 운전기사는 못 알아듣겠다는 듯한 표정만 지을 뿐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우리를 칠레 출국 사무소로 데려갔다.
새벽부터 한 시간 반을 밖에서 떨었던 우리는 사막의 겨울바람이 몰아치는 그 추운 국경 사무소 앞에서 출국 도장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며 또다시 추위에 떨어야 했다. 추위에 지친 제나는 이내 울음을 터뜨렸고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아이가 우는데도 다들 추운 상황이니 누구 하나 순서를 양보해주지 않았다. 이가 딱딱 부딪칠 정도의 추위 속에서 30분 정도 기다려 칠레 출국 수속을 마치고 다시 미니버스에 올라타 볼리비아 입국 사무소로 향했다.
칠레 국경에서 볼리비아 국경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산으로 이어진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를 30여분 달려 산 정상 어디쯤인 것만 같은 볼리비아 입국 사무소 앞에 도착했다. 흰 눈이 쌓인 벌판에 덜렁 놓여 있는 작은 건물이 볼리비아의 입국 사무소였다. 입국 도장을 받기 위해 다시 줄을 서서 급하게 입국서류를 준비하고 얼어붙어 잘 움직이지도 않는 손으로 서류를 작성해서 심사관 앞에 서류를 제출하니, 심사관은 자꾸만 ‘father?’라고 물었다. 온몸이 꽁꽁 얼어붙어 머리까지 얼어붙었는지 도대체 이 사람이 왜 ‘father’를 찾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고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자니 그는 내가 딱했던지 그냥 도장을 찍어주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가부장적인 볼리비아인이 보기에 아이들의 아빠 없이 엄마가 아이 둘을 데리고 국경을 넘으며 여행하는 것이 이상해서 그렇게 물어본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날카로운 얼음 바람이 벌판을 끊임없이 쓸고 지나가 온몸이 얼어붙는 듯 한 그 와중에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졌다. 입국 사무소 직원에게 화장실의 위치를 물어봤더니 두 팔을 양 옆으로 펼치고 들판을 가리켰다. 마치 '대자연이 온통 화장실인데 무얼 그리 망설이냐'는 듯한 표정으로. 불행 중 다행으로 사람들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허물어진 벽돌집이 있어서 급한 대로 몸만 숨긴 채 급한 불을 껐다.
그렇게 정신이 쏙 빠진 채로 칠레 국경을 넘어 볼리비아로 들어왔으니 이제 우유니로 가는 차를 탈 순서다.
아따까마에서 우리를 태워온 미니버스 운전기사는 우유니까지 데려다 줄 지프차로 우리를 데려갔다. 그 차에는 과묵하기 그지없는 유럽 커플이 먼저 편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그들의 과묵함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우유니에 도착할 때까지 그들이 차지한 편한 자리를 고수하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길은 험하고 차는 좁아서 뒷자리에 탄 우리는 무릎이 앞 좌석에 끼여서 옆으로 비스듬히 앉은 채로 거친 비포장 도로 위를 네 시간 가까이 달려야만 했다. 나에게는 물론이고 나보다 골격이 커진 형주에게는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우리가 불편함을 호소했더니 유럽 커플은 역시나 못 들은 체 외면했고 아담한 체구의 현지인 여성이 앞자리를 형주에게 양보해주고 우리가 앉은 뒷자리로 옮겨왔다.
두 시간을 달려 중간 마을에서 점심을 먹었다. 간이식당을 하는 그 집에는 눈동자가 까맣고 두볼이 빨간 아이들이 셋 있었는데 제나를 보더니 부끄럽게 웃다가 집안으로 숨어 버렸다. 제나는 그 아이들과 놀고 싶어서 여기저기 찾아보다가 아이들이 깊숙이 숨어서 나오지 않자 이내 포기하고 점심 먹는데 집중했다. 약간의 닭고기와 밥에 채 썬 토마토와 오이를 넣어 만든 소박한 밥은 제법 맛있었다. 게 눈 감추듯 점심을 먹은 후 온갖 스트레칭을 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
다행히 점심 식사 후부터는 포장도로를 달렸으므로 덜컹거리는 피곤함은 덜했으나, 불편한 자세로 피곤해하는 제나를 보듬어 안고 두 시간 가까이 달리는 일은 차라리 고문에 가까웠다.
오후 세시가 다 돼서야 우유니에 도착했다.
허리를 펴고 주위를 둘러보니 거리엔 온통 순수한 인디오들뿐이다. 남미 대륙을 반 바퀴 넘게 돌아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인디오의 나라에 왔다는 느낌에 나 혼자 마음이 뿌듯하다. 여행 전에 막연하게 인디오의 대륙이라고 기대했던 남미에서 그동안 만나왔던 사람들은 대부분 유럽 이민자의 후손들이었고 간간히 만났던 인디오들은 유럽 이민자들이 소유한 사업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가난한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이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었는데, 이곳 볼리비아에서는 은행원도 인디오였고 식당도 여행사도 호텔도 모두 인디오가 주인이었다. 그렇게 자기 땅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진정한 인디오의 나라에 온 것이다.
우선 은행에서 볼리비아 돈을 찾고, 밤에 그나마 덜 춥다는 숙소를 찾아 짐을 푼 후, 내일의 소금사막 투어를 예약하기 위해 여행사를 찾아 나섰다. 여행자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여행사에 들러 우유니에서 제일 유명한 가이드인 ‘조니’를 만나 우리의 조건을 제시했다. 어린아이와 함께 셋이고, 성능 좋은 카메라가 없어서 카메라를 공유해줄 투어 일행이 필요하니 투어 일행이 구성되면 연락을 달라고 부탁한 후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짐을 정리하고 빨래를 하고 있는데 조니가 우리의 조건에 맞는 한국인 여행자 네 명을 데리고 우리 숙소로 왔다. 서로 의견을 조율하고 내일의 소금사막 투어를 결정하고 나서야 하루 종일 고생했던 허리를 펴고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잠이 우리들의 피로와, 오늘 동행했던 이기적인 유럽 커플에 대한 노여움도 씻어내 주기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