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수끄레: 직물박물관, 레꼴레따수도원 언덕-15/06/13(토)
새로운 도시에서 방향 감각을 익히러 길을 나서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특히 수끄레처럼 밝고 안전한 도시에서는 더욱 그렇다.
숙소에서 골목길을 돌아 도보로 5분 거리에 시장이 있었다. 야채, 과일, 마떼 차용 들풀, 제과, 육류, 의류, 생활용품 등 없는 게 없는 규모가 큰 재래시장이었다. 시장의 안쪽에는 생과일주스를 파는 가게가 죽 늘어서 있었는데 유리 상자 안에 온갖 과일을 다 진열해 두고 손님이 과일을 두세 가지 선택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갈아 주었다. 거기서 먹겠다면 유리컵에 담아주고, 가져가겠다고 하면 투명한 비닐봉지에 포장해서 주기도 했는데, 우리 숙소에서 머무는 여행자들은 대부분 아침마다 이 주스 가게에 들러 생과일주스로 아침 식사를 대신하곤 했다.
시장에서 한 블록 거리에 5월 25일 광장이 있고 그 주변에 관공서가 위치해 있었다.
우리는 그간의 부실했던 식사를 만회하고자 5월 25일 광장 근처에 있는 뷔페식당에 들렀는데, 평일 낮인데도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들 중 한 팀은 대가족으로 가족 중 누군가의 생일로 한자리에 모인 듯해 보였는데, 잘 차려입은 옷차림에 굉장히 세련된 매너로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한 블록 건너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과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듯 보여서 괜히 마음이 불편했다. 가난한 나라라고 해서 모두 다 가난하게 살 필요는 없는 것인데 이상하게도 가난한 나라에서의 빈부의 격차를 볼 때면 마음이 더 편치 않았다. 부자가 빈자의 누추하고 고단한 삶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들을 가난으로부터 구제하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그들의 노동을 터무니없이 싼값으로 사서 편안한 삶을 누리는 모습을 많이 봐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볼리비아를 여행하면서 하나의 큰 희망을 발견했다. 인디오 토착 원주민 출신으로 2006년부터 대통령직을 연이어 10년 가까이 연임하고 있는 에보 모랄레스(Juan Evo Morales Ayma)가 바로 그 희망의 주인공이다.
볼리비아에서는 300년간의 스페인 통치로부터 독립한 1825년 이후 현재까지 190년 동안 200번에 가까운 쿠데타가 있었다고 한다. 1965년 이후로는 미국의 후원을 받아 대통령이 된 19명의 군인 출신 대통령들이 석유와 천연가스 등의 지하자원을 대부분 미국 자본에게로 넘겨버렸고, 그나마 남은 자원과 부는 대부분 스페인 침략자의 후손들이 소유하고 있다고 하니, 그 정치적 불안정과 경제적 불균형 그리고 인종차별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을 것이다. 모랄레스가 집권하고 나서 그 모든 문제가 완전히 개선되지는 않았지만 볼리비아는 올바른 지도자의 지휘 아래 대내적으로는 정치, 경제, 사회적 안정을 찾아가고 있으며, 대외적으로 자주국가로써의 자존감을 서서히 회복하고 있다. 그는 취임 초기부터 공약했던 천연가스의 국유화를 이루어냈고, 인디오 토착민들에게 불리했던 토지제도를 개혁하고 있으며, 미국 자본에게로 넘어간 석유개발권도 되찾아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칠레에 빼앗겼던 태평양 연안의 영토를 다시 되찾고자 국제사법재판소에 소를 제기하였으며, 바닷길을 열고자 하는 그들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띠띠까까호수에서 해군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볼리비아 여행 초기, 도시 곳곳에 붙어 있는 모랄레스 대통령의 사진을 보고 우리는 그가 유명한 코미디언이나 인지도 높은 국민배우가 아닐까 추측했었다. 숱 많은 바가지 단발머리에 이웃집 아저씨 같이 수더분한 미소를 띤 얼굴을 하고 전통의상을 입고 있는 그가 정치인, 그것도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대통령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 대해 단편적인 지식이나마 조금 알고 나니, 인디오 노동자 출신인 그가 그의 국민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새로운 볼리비아'가 공허한 구호로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든든한 믿음이 생겼다. 볼리비아가 남미 대륙에서 성공적인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의 모델로 우뚝 서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식사 후 레콜레타 수도원이 있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오후 햇살을 받아 건물 벽에 드리워진 작은 나무의 그늘이 흰 도화지에 그린 나무 그림이라고 착각될 만큼 거리 전체가 새하얗다. 볼리비아의 다른 도시에 있는 건물들이 대부분 흙으로 지어져서 붉은색인데 반해 온통 하얀색으로 이 도시를 건설한 사람들은 이곳을 보다 성스럽고 차별된 분위기의 도시로 만들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뽀또시의 은광에서 인디오 원주민들과 흑인 노예들이 흘린 피의 댓가로 축적된 부를 가지고 이곳 수끄레에 교회를 짓고 천국에 가기를 기도했을 스페인 정복자들의 이기심을 생각하니 순백색의 건물들이 추구했던 고귀함은 그 의미를 잃고 퇴색되고 만다.
레꼴레따 수도원으로 향하는 언덕의 끄트머리에는 직물 박물관이라는 작은 박물관이 있었다. 규모에 비해 입장료가 비쌌으나 안데스의 아름다운 직물 문양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으니 놓칠 수 없었다. 며칠후 수끄레의 골목길에서 우연히 우유니에서 함께 소금사막 투어를 했던 송은진 씨를 다시 만났는데, 수끄레를 떠나기 전날 함께 저녁을 먹으며 얘기 나누다 보니 그녀는 이곳 직물 박물관에서 지금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부족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원주민에게서 직물을 짜는 수업을 듣고 있다고 했다. 여행자로서 한 곳에 오래 머물며 그곳에서만 배울 수 있는 일을 하며 지내는 것은 참 멋진 일일 것이다. 우리도 아프지 않았다면 이 도시에서 그런 것들을 해 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참 아쉽다.
직물 박물관에서 특히 아이들이 좋아했던 것은 원시적 주술행위를 하는 원주민들의 주술 행사를 동영상으로 관람하는 것이었다. 우리네 탈처럼 해학과 풍자를 담은 우스꽝스러운 동물 모양을 한 탈과 지푸라기로 만든 의상을 입고, 손과 발에 방울을 차고, 온갖 주술 용품을 들고, 북장단에 맞춰 춤을 추는 원주민들의 모습이 어찌나 익살스럽던지, 우리 셋뿐인 관람실에 나란히 모여 앉아 깔깔거리고 웃으며 한참 동안 그 영상을 보고 또 봤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나라는 안타깝게도 종종 경제적인 가치에 밀려 전통과 문화의 가치가 저평가되곤 하는데, 볼리비아에서는 여러 원주민들의 풍속을 지키고 널리 알리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직물 박물관 바로 위에 레꼴레따 수도원이 있었는데, 우리가 도착했을 때에는 해가 서산에 기울며 하늘을 주홍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도시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회랑의 난간에 앉아 하얀 도시 위로 점점 붉어지는 하늘을 바라보고 앉아 있노라니 어느새 우리 얼굴도 발갛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