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남 목동

볼리비아, 수 끄레에서 라빠스로 이동 - 2015/06/18(목)

by 민경화

지난밤 은진 씨와의 식사에서 먹었던 음식이 약이 되었던지 복통의 강도도 약해졌고 우르릉 쾅쾅 거리며 막 쏟아내기만 하던 장도 조금 점잖아졌다. 그래도 아직 다 회복되지 않은 상태여서 음식을 가려먹어야만 한다. 그런 이유로, 수끄레에서 꼭 맛봐야 한다는 초콜릿 커피를 먹을지를 두고 한참을 고민했다. 나도 아직 회복된 상태가 아니었고 내가 초콜릿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들어가면 아이들은 초콜릿이나 초콜릿 케이크라도 먹어보려고 할 텐데 그랬다가 다시 복통이 심해지면 어쩌나... 오늘이 수끄레에서의 마지막 일정인데 안 먹고 가기도 아쉽고... 고민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한 채 햇살이 눈부신 5월 25일 광장 벤치에 앉았다.

수끄레의 중심 광장인 이곳은 일광욕을 하고 앉아서 시간을 보내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공원의 어느 위치에 앉아도 온몸으로 햇빛이 비쳤고 그 온화한 햇빛을 받고 앉아 있으면 긴장이 풀리면서 스르르 잠이 들기도 했는데, 이런 노곤한 증상은 우리뿐 아니라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서도 발견되는 특징이었다. 그렇게 따듯하게 햇빛을 쬐고 노곤하게 10분쯤 앉아 있다가 일어나면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곤 했다.

광장을 청소하는 청소부 아낙은 광장에 떨어진 커다란 야자수 이파리를 들고 와서는 그 길고 넓은 야자수 이파리를 들고 단 몇 차례의 비질로 광장을 단숨에 깨끗하게 쓸어냈다. 그래도 어디서 날아오는지 비둘기 떼가 다시 날아왔고 공원으로 나들이 나온 아이들이 과자와 씨앗을 뿌리며 비둘기들을 유혹하는 통에 공원 바닥은 금세 다시 어지럽혀졌다. 이런 풍경을 가진 수끄레가 좋았다. 아파서 누워있었던 시간들이 아깝기도 했지만, 다행히 다른 도시가 아닌 수끄레에서 아팠었기 때문에 여행 중 조용한 도시에서 요양이라도 한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99AC713359FA9276314952 중앙시장. 뒤로 줄기어 세워진 포대에 담긴 것은 감자. 주식이 감자이기에 가능한 풍경이다.
9932963359FA8F4A3926B0 중앙시장에서 5월 25일 광장으로 가는 길


99960A3359FA8F4C03503E 수끄레의 대형 땅콩. 어른 손가락 두 개만 하다. 뒤의 여행자는 '일광욕 명상'중이다. 5월 25일 광장은 일광욕 명상을 하기에 참 좋은 장소다.
997DA93359FA8F4E055A7C 5월 25일 광장
99B2273359FA8F5001D68C 전통 의상을 입고 가는 두 남성
99B8673359FA8F52319CD4 마른 야자수 잎으로 공원을 청소하는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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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도시인 수끄레에서 한 번도 교회에 들어가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워서 중앙시장 근처에 위치한 산 프란시스꼬 교회에 들렀다. 금박의 제단이 이 교회의 볼거리라고 했으나 정작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은 잘생긴 훈남으로 그려진 양치기 시절의 예수 그림이었다. 대개 예수의 그림은 고난을 받는 모습이거나, 성스러운 모습으로 부활한 모습이거나, 고뇌에 찬 눈동자를 내려뜨린 힘겨운 모습이었는데, 이 성당에 그려진 예수는 앳된 얼굴에 젊은이다운 싱그러운 미소를 머금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천편일률적인 모습의 예수가 아닌 맨발의 청춘으로 그려진 이 그림 속 예수의 모습이 참 마음에 든다.

밝은 에너지를 가진 종교가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 것이고 더 강한 전파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어느 종교이든 그 교리를 너무 편협하고 무겁게 해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종교를 앞세워 전쟁을 일삼는 이들의 오류는 종종 그런 해석에서 시작되곤 하니까.


99931F3359FA9273343934 청년 예수의 모습이 싱그럽다.


숙소로 돌아가서 짐을 챙겨 들고 버스터미널로 이동해야 하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면서 초콜릿 커피를 맛볼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한 고민은 살짝 맛을 보는 쪽으로 기울었다.

25년 전통의 초콜릿 카페에 앉아 초콜릿 커피 한잔을 주문하자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들도 초콜릿 케이크를 맛봐야겠다고 나섰다. 양심이 있는 엄마로서 그들의 요구를 묵살할 수만은 없었기에, 그리고 실은 나도 한입 정도 먹어보고 싶었기에 초콜릿 케이크도 함께 주문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거 안 먹고 수끄레를 떠났다면 몹시 후회했을 뻔했다는 것이다. 초콜릿 커피는 진한 초콜릿과 구수한 커피가 어우러져서 깊고 진한 맛을 만들어 냈다. 초콜릿 케이크는 한국의 그것보다 진하고 식감이 부드러웠으며 고급스러운 초콜릿의 풍미가 입 안 가득 퍼져 오래도록 감돌았다. 이로써 수끄레의 초콜릿이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흔한 맛이 아님이 입증되었다.

초콜릿 덕분에 입은 호강 했지만 뱃속은 또 한 번 난리를 치렀다. 우리는 화장실로 들어가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서야 라 빠스 행 버스를 타러 터미널로 갈 수 있었다.

99F25B3359FA927809D521 초콜릿으로 만든 책
9925523359FA927C055A8F 장염으로 고생한 아이들에게 초콜릿 케이크를 먹이는 무모한 엄마
996B0D3359FA8F572E3889 버스 터미널로 가는 시내버스 내부. 빨간 장식 덮개와 새하얀 커튼, 보조석에 팽팽하게 씌워진 빳빳한 시트에서 운전사 부인의 정갈한 손끝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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