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높은 수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

볼리비아, 라빠스 - 2015/06/19(금)

by 민경화

수끄레에서 밤 9시에 출발한 버스는 정확히 아침 8시에 라 빠스에 도착했다.

국토의 대부분이 높은 산악지대에 위치한 볼리비아는 대부분의 도시들이 고산지대에 위치해 있다. 우리가 거쳐 왔던 우유니와 뽀또시, 그리고 이곳 라 빠스 모두 해발 4천 미터 이상의 높이에 위치해 있다. (수끄레는 해발 2,800미터로 그중 낮은 편에 속한다.) 한국에서 바로 볼리비아로 왔거나 페루나 멕시코에서 여행을 시작한 여행자들 중 라 빠스에 도착하자마자 고산병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반대방향으로 여행한 우리 셋은 고산 지대에 적응이 돼서 그랬는지, 아니면 그간의 고된 여행으로 몸에 면역력이 생겨 웬만한 악조건은 그냥 넘겨 버리게 된 이유에서였는지 고산지대에 대한 저항은 없었다.

도시의 주요 시설이 위치한 저지대부터 산꼭대기까지 붉은 흙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모습은 칠레 발빠라이소의 풍경보다 더 파노라믹 했다. 그 안에서 바쁘게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분주함으로 도시는 생기를 더했다.

우리는 산 프란시스꼬 광장 근처에 위치한 숙소에 짐을 풀었다. 설사병이 완전히 낫지 않은 상태에서 밤 버스를 타고 불편하게 밤을 보냈던 터라 그 피곤을 풀기 위해 세 시간 정도 잠을 자고 일어나니 벌써 점심시간이 되어 있었다. 한국음식으로 원기를 회복하자는 형주와 제나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따라 사가르나가 거리를 내려와 산 프란시스꼬 교회, 오벨리스꼬, 학생 광장을 지나 한 시간을 넘게 걸어서 한국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 벽에는 한국 여배우가 족두리 쓰고 얼굴에 연지곤지 찍고 초록색 새색시 옷을 입은, 족히 30년은 되어 보이는 대형 브로마이드가 걸려 있었고, 점심 식사를 하러 온 현지인들이 꽤 많았다. 사장님은 한국에 있는 제나만 한 손녀딸을 떠올리며 이런저런 반찬들을 많이 내오셨고, 접시를 싹싹 비우고 길을 나서는 형주와 제나 손에 누룽지 사탕과 청포도 사탕을 한 주먹씩 쥐어주셨다. 한식과 할머니의 정으로 몸과 마음이 든든해진 기분이다.

한 시간이나 걸릴 줄 모르고 무작정 걸어왔던 길을 다시 걸어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아 돌아가는 길에는 꼴렉띠보를 타기로 했다. 그런데 지나가는 꼴렉띠보 마다 자리가 꽉 차서 그냥 지나쳐 가기 일쑤였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현지인 아주머니가 내 어깨를 툭 치며 자기를 따라오라는 눈짓을 하더니 막무가내로 지나가는 꼴렉띠보를 멈춰 세우고는 몸을 들이밀면서 우리에게 따라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꽉 찼던 버스에 앉았던 승객들은 좀 더 밀착되어 앉았고 우리도 그 틈에 끼여 간신히 차를 타고 산 프란시스꼬 광장으로 돌아왔다. 차에서 내리면서 그 아주머니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니 예의 사람 좋은 얼굴로 찡긋 웃으며 쿨 하게 인사를 받아주셨다. 인디오 여인은 정감이 넘치고 강인하다. 식민시절과 전쟁을 겪어내면서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강인해진 유전자를 물려받은 한국의 아줌마들과 참 많이 닮았다.

산 프란시스꼬 광장에 위치한 산 프란시스꼬 교회는 다음 달로 예정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지로 예정된 곳이다. 작년에 가톨릭이 국교가 아닌 우리나라에 교황이 방문했을 때도 그 열기가 놀라울 만큼 뜨거웠는데 가톨릭이 국교인 데다 남미 출신 교황의 남미 방문이다 보니 남미 각국의 반응은 실로 뜨겁다 못해 끓어 넘칠 지경이었다. 이곳 산 프란시스꼬 교회에도 교황의 사진이 걸려 있고 축제를 준비하는 것처럼 분위기가 들떠 있었다.

교회 바로 앞에 위치한 산 프란시스꼬 광장은 늘 사람들로 북적이며 활기를 띄었다. 주말이면 만담 같기도 하고 약장수 쇼 같기도 한 공연을 하면서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곤 했는데,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높은 산과 그 산에 빼곡히 지어진 집들에 둥그렇게 둘러싸인 광장은 도시 그 자체로 초대형의 원형 공연장이 되곤 했다. 공연하는 사람의 익살에 구경꾼들의 웃음이 터지면 그 웃음소리가 도시 전체로 메아리쳤다. 저녁 공기를 가르고 산자락을 휘감으며 울려 퍼지던 그 웃음소리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9936D33359FA968911A5E6 라빠스 터미널
99C2323359FA968B06A335 산프란시스꼬 성당 내부
99F9E93359FA968D16BA64 남미의 대성당 중에서 가장 화려하게 조각된 산프란시스꼬 성당 입구
9906EC3359FA968F15E74C 산프란시스꼬 성당 앞은 늘 사람들로 가득하다.
998B293359FAB4A7134FE3 주말, 산프란시스꼬 광장은 공연장으로 변한다.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온 시내를 채웠다.
9999B53359FAB4A32A0549 전통의상을 입은 여인들. 멋스럽고 아름답다.
9939FC3359FAB4A538E963 모자와 망도, 신발의 색깔을 베이지색으로 통일하고 치마에 포인트를 준 할머니의 패션 감각은 단연 최고
99DDC83359FA96911836B3 대성당에서 숙소로 올라가는 여행자 골목의 풍경
99DE833359FA9693181A75 이 거리를 오가는 길에 뜨개질 하시는 이 할머니에게서 아이들은 종종 주전부리를 사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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