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길을 달리는 버스

볼리비아, 라빠스: 데스 로드 - 2015/06/20(토)

by 민경화

라 빠스에서 우리의 주요 일정은 데스 로드 투어와 띠와나꾸 투어다. 루레나바께에서 아마존 투어를 할까를 두고 여행 초기부터 고민을 많이 해왔었는데, 그간 만나왔던 많은 여행자들의 경험에 따르면 투어 내내 해충에 심하게 물리기 때문에 어린 제나가 견디기엔 무리가 따른다고 하니 아쉽지만 아마존 투어는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내 쉰 살 생일선물이 두 번째 볼리비아 여행이면 좋겠다. 그때쯤이면 제나도 열두 살이 될 테니 아마존 투어도 데스 로드 투어도 문제없을 것이다.)

오늘은 데스 로드(Death road) 바이크 투어에 나섰다.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 이 투어는 자전거를 타고 산악지대의 아슬아슬한 절벽 길을 달리는 아찔한 모험으로, 소문에 의하면 평균적으로 1년에 한두 번씩 이곳에서 떨어져 죽는 사고가 발생할 만큼 위험한 도로라고 한다. 처음엔 그런 말들이 젊은이들의 도전 욕구를 자극하려는 마케팅 수단이려니 생각했으나, 막상 그곳에 가보니 절벽 쪽에 아무런 안전시설이 없는 좁은 비포장도로 위를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있었는데, 중간중간에 사고지점이라며 십자가가 세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사망 사고에 대한 얘기는 헛말이 아닌 듯했다. 나도 형주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싶었으나 제나를 혼자 차에 태우고 다니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형주 혼자만 자전거를 타고 나와 제나는 자전거의 뒤를 따라다니는 밴을 타고 데스 로드를 달리기로 했다.

형주의 일행은 영국에서 온 청년 세 명과 형주, 이렇게 넷이었다. 자전거를 차위에 매단 밴을 타고 한 시간을 달려 호수가 있는 고지대에서 보호 장구를 입고 라이딩을 시작했다. 거대한 산과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계곡, 그 길에 난 길의 풍경은 가히 압도적이라 할 만큼 거칠고 웅장했다. 형주는 코스의 중반까지 겁을 먹고 천천히 달리며 다른 셋과 멀찍이 떨어져 달렸다. 형주의 말에 따르면 한 번도 그런 길에서 타 본 적이 없어서 대자연의 개방감이 시원함을 넘어서 두렵게 느껴졌고 가파른 도로에서 속도가 너무 빠르게 느껴져서 마음 놓고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단다. 3분의 1 지점에서부터 비포장도로가 시작되었는데, 산세가 어찌나 험한지 길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그 끝이 보이지 않아 멀미가 일었다. 비포장도로의 폭은 2~3 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중간에 산에서 흘러내리는 작은 폭포라도 있는 곳은 폭포수가 떨어지는 땅이 물에 침식되어 길의 폭이 1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 네 바퀴 달린 밴을 타고도 그런 길을 지날 때면 혹여 차가 계곡 쪽으로 기울어질까 싶어서 반대쪽으로 몸을 날리곤 했는데 두 바퀴 달린 자전거로 그 길을 달리는 형주의 두려움은 얼마나 컸을까.

9970F13359FA99101F8919 밴에서 내려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는 출발지
993F353359FA991322C3E7 뒤의 더 산은 제나가 서 있는 곳 아래로 까마득한 계곡의 건너편에 있다. 실제의 모습은 사진 보다 훨씬 거대하고 험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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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CB403359FA991717EB26 아이들의 뒤로 보이는 산에 난 좁은 길을 자전거로 달린다.
99918B3359FA991B1DB3CE "오빠, 화이팅!"
991C1D3359FA991C255920 동생의 응원에 힘입어 출발~


1(788).jpg 토마토뉴스 2017/04/25일자 기사에서 사진 인용. 우리 카메라로는 담을 수 없었던 데스로드의 진짜 모습.


코스의 중간쯤에 절벽의 경사가 거의 90도에 가까운 곳에서 대부분의 자전거 투어 참가자들이 앞바퀴를 올려 들고 사진을 찍었는 했는데, 형주는 어찌나 긴장했던지 일행이 그곳에서 멈춰 선 것도 모르고 그냥 지나쳐 내려간 모양이었다. 자전거의 뒤를 따르며 비상시 도움을 줘야 하는 밴은 형주가 보이지 않자 세 명의 일행을 지나쳐서 비상등을 깜빡이며 다급하게 형주를 찾아 나섰다. 다행히 15분 정도 거리에서 앞만 보고 달리는 형주를 발견하고는 간신히 불러 세울 수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데스 로드를 달리는 사람들은 오로지 자전거와 길에만 온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이런 위험한 길을 달리면서 주변을 둘러보며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오히려 밴을 타고 자전거의 뒤를 따르며 데스 로드를 달리는 우리야말로 북부 융가스(North Youngas)의 대자연을 제대로 감상했다고 할 수 있겠다. 수도인 라 빠스와 휴양도시인 꼬로이꼬(Coroico)를 연결하는 이 길은 1930년대에 파라과이 전쟁 포로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바이크 투어를 하다가 떨어지는 사고는 물론 버스나 차량도 떨어지는 사고가 종종 발생하는 이 도로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길인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이기도 하다. 그러니 열여섯 살의 형주가 느꼈던 두려움과 긴장감은 당연한 것이었다.

드디어 세 시간의 자전거 라이딩이 끝나고 마지막 지점에 도착한 형주는 대단한 일을 혼자서 해냈다는 성취감으로 가슴 벅차 했다. 내가 함께 자전거를 탔더라면 형주에게 마음의 의지가 됐을지 몰라도 이렇게 혼자서 두려움을 딛고 끝까지 해낸 아들의 모습을 보진 못했을 것이다. 스스로 이룬 성취에 뿌듯해하는 아들을 지켜보는 내 가슴도 덩달아 벅차올랐다.


9919253359FA9F210EE6D2 발 아래로 까마득한 절벽이다.
999C113359FA9F231AC10F 구름이 걸린 험준한 산
99F8CA3359FA9F2526C35B 이 길을 다시 달릴 것이다.
99D50F3359FA9F27150487 데스로드 라이딩을 마치고 휴식 중인 형주


996DD43359FA9F2A1F82BC 휴식을 위해 잠시 드른 호텔 옆으로 흐르는 강가에서 말들이 뛰놀고 소녀들은 빨래를 하고 있다.
9943093359FA9F2C083551 데스로드를 함께 했던 믿음직한 가이드


바이크 투어를 마친 후 근처에 위치한 호텔에서 간단히 샤워와 식사를 하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밴 위에 자전거를 싣고 라 빠스로 돌아간다. 세 명의 영국인 일행은 뽀또시로 가기 위해 중간지점에서 내렸다. 세 시간 가까이 자전거를 타느라 지쳤던 형주와 가이드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금세 곯아떨어졌고, 재잘대던 제나도 곧이어 잠들었으나, 나는 창밖 풍경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라 빠스로 돌아가는 길이야말로 진정한 데스 로드였기 때문이다. 차는 계속 산 정상위로 난 도로를 달렸고 어떤 구간은 구름 속에 가려져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바위가 무너져 내려 도로 위로 쏟아진 구간도 있었고 이산과 저산을 다리로 연결한 부분은 그 다리의 끝이 아득하게 내려다 보일 만큼 높았다. 산 정상에 걸린 구름을 벗 삼아 숨 막히는 절경으로 이어진 길 위에서 달리기를 두 시간 반. 도시의 집들이 불을 켜며 밤을 준비하는 시간에 라 빠스에 도착했다.


991BA73359FAA0D2120758 산 정상으로 난 길을 달리는 버스. 해발 4천 미터 위를 비행기가 아니라 버스로 달리고 있다.
991D143359FAA0D312EA28 산 정상에 걸린 구름을 뚫고 달린다.
9984F03359FAA0D7083C97 데스로드 하이킹으로 지쳐 잠든 소년
994D5E3359FAA0D90E52CB 라빠스 근교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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