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라빠스: 띠와나꾸 신전, 아마야라 축제- 15/06/21(일)
일부러 때를 맞추려고 애를 썼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또 그런 게 아니라 그저 우연히 때가 맞았다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어쩌면 그 둘 다 작용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겠다. 우리는 라 빠스 근교의 띠와나꾸(Tiwanaku) 유적에서 1년에 한 번 열리는 동지 행사인 아마야라(Amayara) 축제에 다녀왔다. 우리로 치면 6월 21일이 하지이지만, 지구의 반대편에 위치한 볼리비아에서는 같은 날이 동지가 된다. 잉까 제국보다 앞선 띠와나꾸 문명은 기원전 600년경부터 생겨났으며 기원전 100년경에는 이 지역을 제사장과 전사, 장인들이 모인 중심도시로 발전시켰다고 한다. 지금의 띠와나꾸 유적지의 흔적은 기원후 700년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는데, 피라미드와 신전, 제사장의 거처 등이 남아있다. 오늘은 1년 중 가장 큰 행사인 아마야라 축제가 있는 날로 제사 행사가 열려 사람들이 많이 몰리기 때문에 제일 넓은 깔라사사야 신전(Templo de Kalasasaya)만 공개한다고 한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므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둘러 출발해야 한다고 해서 새벽 네 시에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새벽부터 해가 뜨는 8시까지 벌판에서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옷을 많이 껴입고 오라는 여행사의 충고에 따라 배낭 속 가용한 옷들을 거의 다 껴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버스 안에 앉아 있기만 했는데도 콧물이 줄줄 흐르고 이가 딱딱 부딪힐 만큼 추웠다.
띠와나꾸 유적지에 도착한 시간은 여섯 시 반이었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행사장에 도착해 있었고 추위를 녹이기 위해 여기저기서 모닥불을 피우고 있었다. 유쾌한 투어 가이드 빅터의 깃발을 따라 축제가 열리는 깔라사사야 신전으로 향하는데, 행사를 보려고 먼저 온 사람들이 앞에 진을 치고 있어 앞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볼 수가 없었다. 우리 뒤로도 계속 사람들이 밀려오고 앞으로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 되자 춥고 지친 제나는 칭얼대며 내 등으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일곱 시 반이 되어 동쪽으로 음력의 첫해가 떠오르며 하늘을 주홍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하자 행사장의 안쪽에서 행사를 진행하는 인디오들은 북을 연주하며 주술을 읊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손을 들어 묵은 한 해를 마음속으로 정리하고 음력 첫날에 떠오르는 첫 해의 영험한 기운을 받아 각자의 소망들이 이루어지길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양손을 머리 위로 들고 몸을 흔들며 새해맞이를 하는 동안 북소리와 주술을 읊는 소리가 절정으로 치달았고 곧이어 산 위로 해가 떠올랐다.
잠시 후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이 안쪽으로 밀려들어가면서 행사장 내부의 제단에서 어떤 상징물들을 태우는 곳과, 그 안에서 제사를 진행하던 사람들, 신전 내부에 위치한 석상이 공개되었다. 석상은 약 3미터 높이의 크기로 우리네 묘지를 지키는 석상과 비슷한 모양이었는데 발굴자의 이름을 붙여서 베넷(Bennett)이라고 불렸다.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투어 가이드의 설명이 잘 들리지 않았지만 우리는 혹여 그를 놓칠세라 그의 옆에 꼭 붙어 다니며 그의 설명을 듣고자 애썼다. 소리가 울리도록 만든 석조물과, 돌과 돌을 연결한 방식, 벽돌과 벽돌의 틈이 전혀 없이 촘촘하게 벽돌을 쌓아 올린 기술 등으로 보아 당시 건축 기술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거대한 하나의 바위를 깎아서 만들었다는 태양의 문에는 우주의 창조자 비라꼬차(Viraccocha) 신과 바둑판처럼 네모난 칸에 동물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 신전은 당시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태양력을 나타내는 천문기구로 사용되었다고 하니 그들의 과학 기술 또한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을 것이다.
띠와나꾸 투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지상에서 1미터쯤 내려간 위치에 지어진 제사장의 거처였다. 거기서 연륜 있는 투어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함께 갔던 일행들이 둥그렇게 둘러서서 옆 사람의 손을 잡고 중저음으로 내는 그의 주문을 따라 했다. 새해에 새로운 에너지를 받아 세상에 좋은 영향을 끼치길 기원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함께 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아침 식사를 함께 하면서 알게 된 일행들이 서로 돌아가면서 안아주고 축복의 말의 전하는 그 순수한 동작을 통해 우리의 몸과 마음이 밝고 따듯한 에너지로 충만해지는 신비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아마야라 행사가 끝나고 라 빠스로 돌아오는 길에 원주민들이 모여 새해맞이 축제를 벌이는 신성한 언덕에 들러 그들의 축제에 동참했다. 볼리비아의 전형적인 알띠쁠라노(Altiplano: 고원)인 이곳은 아래로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었고 그 평원 너머로 아스라이 호수가 이어져있고 그 끝을 설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수끄레의 직물 박물관에서 보았던 문양의 의상을 입은 아이마라(Aymara) 원주민들이 북을 치며 북장단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하고 술과 음식을 나누며 새해맞이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한 원주민 할아버지가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제나에게 옆으로 와 앉으라고 손짓하시자 낯선 차림의 할아버지가 무서울 법도 했을 텐데 제나는 스스럼없이 그분 옆에 앉아 재롱을 떨었다. 그 옆에 갓 100일 정도 된 아기를 안고 있는 아기 엄마에게 아기가 예쁘다고 하자 한번 안아보라며 아기를 내 품에 안겨줬다. 건강한 구릿빛 피부에 짙은 쌍꺼풀이 진 까만 눈동자를 가진 아기는 인형처럼 예뻤다. 자신의 축제에 찾아와 준 이방인들을 열린 마음으로 맞아준 그들의 호의에 감사하며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띠와나꾸 신전에서 다시 시내로 돌아와 늦은 점심을 먹으러 숙소 뒤편의 원주민 시장에 있는 현지인 식당에 들렀다. 일요일이라서 그랬는지 식당은 손님으로 꽉 차서 한참을 기다렸다가 간신히 자리 잡고 앉아 볶음 국수 요리와 돼지고기 야채볶음요리를 주문해 먹었는데 우리 입맛에도 잘 맞았다. 꼬마들이 우리를 구경하느라 밥을 제대로 먹지 않자 어른들이 아이들을 단속하느라 바빴다. 우리를 구경하는 호기심 어린 눈빛이 결코 싫지 않다. 특히나 그것이 속마음을 전혀 감출 줄 모르는 아이들의 것이라면 더더욱.
식당 바로 아래 있는 원주민 시장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물고 시장에서 파는 식료품들을 구경했다. 하얀 가루가 묻은 조약돌 같은 것들을 큰 자루에 한가득 담아 파는 곳이 여러 곳이라 그게 무얼까 궁금했는데 말린 감자란다. 띠와나꾸의 원주민 축제에서 닭국을 사 먹었을 때 조금 단단하면서 알싸하게 씹히는 것이 있었는데 이렇게 말린 감자를 국에 넣어 끓인 것이었던 모양이다.
시장을 따라 난 길을 따라 계속 걸어 올라가니 조금 다른 분위기의 시장이 나타났다. 미라처럼 말리거나 박제된 동물들, 알 수 없는 물건들이 잔뜩 진열된 이곳은 원주민들이 주술용으로 사용하는 것들을 판매하는 마녀 시장이라고 한다. 믿는 그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담긴 물건들일 터이니 우리 보기에 낯설고 다소 괴기스럽다고 해서 호들갑을 떠는 것은 예의가 아닐 것이다.
그 골목에 형주 나이로 보이는 예쁜 소녀가 지키고 있는 가게가 있기에 뭔가 살게 있을까 하고 들어갔다가 꼬까 잎으로 만든 연고를 하나 사들고 나왔다. 그런데 이 연고는 가려운 곳이라면 어디에 건 만병통치약이었다. 모기나 벌레에 물린 곳은 물론이고 조금 삐끗하거나 무리해서 관절이 욱신댈 때도 넓게 펴 바르면 물파스를 바른 것처럼 시원하게 통증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라 빠스를 방문하는 분들은 이 연고를 꼭 한번 사보실 것을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해질 무렵에 낄리낄리 전망대(Minador Kili-Kili)로 향했다. 동네 놀이터가 있는 작은 공원이었는데,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어 360도로 라 빠스의 도시 전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빨간 흙벽돌집들이 다운타운부터 산 위까지 빼곡하게 들어선 모습을 멀리서 보자니 거대한 개미집이 연상되기도 했다. 가난하여 높은 곳으로 밀려올라가 사는 사람들이겠으나, 세상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에 사는 그들이 하늘에서 선착순으로 축복을 받는 때에는 제일 유리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