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라빠스에서 꼬빠까바나로 이동 - 2015/06/22(월)
아침 일찍 꼬빠까바나행 버스를 타기 위해 서둘렀다. 버스를 예약하면 숙소로 버스가 픽업을 온다고 하긴 했으나 그 말을 믿고 있다가 버스를 놓치면 안 되겠기에 직접 택시를 타고 버스터미널로 갔더니 버스가 정말로 숙소로 픽업을 갔었단다. 버스가 이런 픽업 서비스까지 한다니 놀랍다.
버스는 연한 아침햇살에 주홍빛으로 물든,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는 라 빠스를 서서히 빠져나왔다. 구수한 빵에 햄과 치즈를 넣어 주던 소박한 아침 식사와 짙은 검은 모자에 펄감이 있는 넓은 주름치마를 입은 부지런한 원주민 여인들, 그리고 산꼭대기까지 펼쳐진 붉은 흙벽 집들의 도시로 기억될 라 빠스에 아쉬운 작별을 고한다.
버스는 세 시간을 달려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수이자 남미에서 가장 넓은 호수인 띠띠까까 호수에 닿았다. 호수가 아니라 바다라고 해도 믿을 만큼 넓고 물빛이 검푸르다.
호수의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은 버스에서 내려 작은 모터보트로 옮겨 타고 빈 버스는 버스 전용 배에 태워져서 호수를 건넜다. 버스보다 먼저 도착한 우리는 맑은 호수 위에서 둥둥 떠 다니는 오리 떼를 구경하며 버스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버스에 올랐다. 호수를 건넌 후 버스를 다시 타고 꼬빠까바나에 도착할 때까지의 창밖 풍경은 컴퓨터의 윈도우 바탕 화면에서 봐왔던 풍경들이 분명 여기서 촬영됐을 것이라고 여겨질 만큼 산과 들판, 호수, 하늘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잠에 취했던 승객들 모두 감탄을 연발하며 카메라를 꺼내 들고 좌우 앞뒤로 펼쳐진 아름다운 자연을 각자 자신들의 기억장치에 담느라 분주했다.
한 시간 가까이 달려 남미의 산토리니라 일컫는 꼬빠까바나에 도착했다. 풍광이 좋기로 소문난 숙소에 예약을 해두었으므로 숙소에 대한 고민 없이 터미널에서 내려 바로 숙소로 향했다. 호수의 전망을 감상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언덕에 지어진 숙소는 정원이 잘 가꿔져 있었고 방에 딸린 테라스에서 보이는 호수의 풍경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짐을 풀고 호숫가로 내려갔다. 호숫가에는 띠띠까까 호수에서 잡아 올린 싱싱한 송어로 요리한 음식들을 파는 작은 간이식당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한국인의 입맛을 취향 저격했다는 12번 식당으로 들어가 뜨루챠 디아블로(매운 송어요리)를 주문했다. 더운 날씨에 기름진 음식만 먹느라 지루했던 미각에 알싸하게 퍼지는 개운한 매운맛은 100년 동안 잠들었던 공주를 단번에 깨워버린 왕자의 입맞춤처럼 정신이 번쩍 들만큼 황홀했다. 푸근한 인상에 인정 많은 우리네 아줌마를 떠올리게 하는 여사장님의 서비스도 음식 맛 못지않게 일품이었다.
해변처럼 모래 백사장이 있는 호숫가를 동네 개들과 함께 산책하다가 오리 배를 하나 빌려 탔다. 내부가 좁아서 제나를 무릎에 앉히고 타니 균형이 맞지 않아 오리배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바다처럼 넓고 깊은 호수에서 구명조끼도 없이 기우뚱 기울어진 오리 배에 올라탄 제나와 나는 공포심이 극도에 달했는데, 그런 내 모습이 재미있었던지 장난 끼가 발동한 형주가 바닥을 구르며 오리 배를 흔들기 시작했다. 제나는 엄마 목에 매달려 울고 나는 그만 흔들라고 소리 지르고 형주는 내가 겁에 질린 모습이 재미있어서 큰소리로 웃으며 계속 배를 흔들어 대며 그렇게 30분을 호수 위에서 난리법석을 떨었다. 세상에서 가장 스릴 넘치는 오리배가 이곳 볼리비아의 산토리니인 꼬빠까바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