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골목에서 빵 파는 사내아이

볼리비아, 꼬빠까바나: 동네 구경 - 2015/06/23(화)

by 민경화

호스텔에서 아침식사가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세끼를 온전히 우리가 해결해야 했다. 다행히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 안에 시장이 있어서 과일과 식사 거리를 사기 위해 종종 그곳에 들렀다.

시장 입구 골목 가판대에 빵을 잔뜩 쌓아두고 파는 열 살 남짓의 남자아이가 있었다. 가판대 바로 앞 오락실에서 요란한 게임 소리가 나고 그 또래 남자아이들이 무리 지어 들락거리는데도 그 아이는 손님을 기다리는 짬짬이 학교 공부를 하며 빵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그 의젓한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사진으로 찍어 오래도록 꺼내 보고 싶었지만 혹시 아이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까 염려되어 빵만 한 봉지 사들고 왔다.

어떤 이는 아직 어린아이를 생활 전선에 내 보낸 그 아이의 부모를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변변치 못하니 아이에게 그런 고생을 시키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우리네 부모가 그러했듯이 그 아이의 부모도 어디선가 더 험한 일을 하며 자신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애쓰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부모의 고된 노동을 알기에 아이도 기꺼이 부모를 도우며 자신의 몫을 하고 있는 것이고, 그런 부모와 아이들이 사는 그 가정에는 서로에 대한 사랑이 따듯하게 둥지를 틀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남 보다 좋은 옷을 입히고, 맛있는 것을 먹이고, 비싼 장난감을 사주고, 유명한 과외 선생님을 붙이고, 명문 대학에 입학시키고, 대기업에 취직하게 하는... 그런 것일까? 내 아이에 대한 소유욕으로 내 소유물을 빛나게 하기 위한 끝없는 욕심과 집착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키워진 아이들이 저 빵 파는 아이만큼이나 부모와 가족을 사랑하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 배움에 대한 열의를 가지고 있을지 묻는다면 쉽게 그렇다고 대답하긴 어려울 것이다.

물질이 풍족해질수록 점점 더 다양한 욕구가 생겨나는 세상에 살면서 다시 거꾸로 시간을 되돌려 과거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열심히 살고 있다고 믿어온 내 삶의 방식과 올곧게 지키려고 노력해왔던 내 신념도 어느 순간 돌이켜 보면 세상의 잣대에 휘둘려 다시 제멋대로 평가되어 맞는 건지 틀린 건지 스스로 헷갈릴 때도 많았다. 특히 아이들을 키우는 키우는 데 있어 그런 혼란은 더 컸다. 부모라는 역할이 가진 그 무게감은 내가 살면서 가졌던 그 어떤 것 보다 크고 무거웠기 때문일 것이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반성하고 고쳐가는 과정이 좀 더 나를 현명한 엄마에 가까운 방향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고 믿으며 나는 지금도 좌충우돌 중이다. 그리고 그런 좌충우돌이 거듭될 때마다 나는 어쩌면 저 의젓한 아이를 떠올리게 될지 모르겠다. 가족, 책임, 사랑, 배움, 미래, 소망, 꿈, 그 모든 것들에 대한 하나의 선명한 상징으로. ‘아이야, 너와 네 가족을 응원할게.’


998F413359FAB2DB30C6AB 시장 입구의 정육점. 이 골목 맞은편에 소년의 빵 가판대가 있다.


오랜만에 일정 없이 빈 하루를 가졌다.

우리 방에 딸린 테라스에 매어 둔 해먹에 누워 흔들거리며 호수를 바라보고 있으면 바쁠 땐 느낄 수 없었던 시간의 헐렁한 밀도가 느껴졌다. 아침, 정오, 저녁, 밤, 그리고 새벽. 꼬빠까바나에서의 시간은 맑고 투명한데 무언가 모르게 묵직하다. 아마 바다처럼 깊고 짙푸른 호수 빛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싶다.

저녁이 되니 온 동네가 딱딱 터지는 화약 불꽃과 화약 냄새로 진동했다. 맞은편 산에서도 무슨 행사가 벌어지는지 새벽녘까지 횃불들이 점점이 산을 수놓고 있다. 우리네 정월 대보름 비슷한 축제 인 듯하다. 달과 해의 움직임에 단위를 정해두고 마음을 담아 투박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소원을 비는 소박한 인디오의 모습에 흰 옷을 입은 정갈한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이 겹쳐진다.

남미를 여행하면서 기대했던 것 중 하나는 남미 고유의 신앙과 문화가 깃든 그들만의 정신세계를 경험하는 것이었는데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칠레를 거쳐 이제 볼리비아에 와서야 그것에 조금 다가간 것 같다. 거대하고 비옥한 땅을 가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백인 정복자들의 후손들이 주인이 되어 또 다른 유럽을 남미 땅에 옮겨 놓은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고, 칠레는 그 두 나라와 볼리비아의 특징이 반반 섞여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볼리비아는 국경을 넘으면서부터 높고 거칠었고, 그 땅의 주인들도 투박하고 부지런하고 순수했으며, 자기 조상의 문화에 대한 고고한 자긍심을 간직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행성에 뚝 떨어진 듯 초지구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거친 소금 사막의 우유니, 착취되어 황폐한 붉은 은광의 도시 뽀또시, 인디오의 문화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수끄레, 띠와나꾸의 전통을 이어가는 라빠스, 그리고 태양신의 전설이 깃든 띠띠까까 호수의 마을 꼬빠까바나. 누군가 내게 남미의 여러 나라 중 어디로 여행할 것을 추천하겠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진정한 남미를 만나고 싶다면 볼리비아로 가라'라고 말할 것이다.


996C653359FAB37B02E3CF 꼬빠까바나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띠띠까까 호수
9987E93359FAB37D321B48 방목하여 기르는 돼지
99058B3359FAB37F0D4C3C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윈도우 배경화면 속을 달리는 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