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꾸스꼬: 시티투어 - 2015/06/26(금)
간밤에 어찌나 춥던지 옷을 다 껴입고 양말 두 켤레를 겹쳐 신고 누웠는데도 발끝이 시려서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한국 여행자들 사이에 입소문이 난 숙소였던지 이곳엔 투숙객의 절반이 한국 여행자들이었다. 그들과 아침 식사를 함께 하면서 그동안 겪었던 여행담들과 꾸스꼬에서 어떻게 여행할지 계획을 나눴다. 한국에서 마추삑추의 입장권을 미리 예매해서 6월 29일에 마추삑추에 들어가야 하는 우리의 오늘 일정은 마추삑추로 가는 기차표 예매와 꾸스꼬 시내 어슬렁거리다.
우리 숙소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아르마스 광장이 있다. 광장의 바로 동북쪽에 대성당이 있고 광장의 북서쪽 뒷골목에 12각의 돌이 있다. 아르마스 광장의 동쪽 거리에 은행과 까페가 몰려 있고, 광장의 서쪽으로 좁은 골목에 식당과 작은 가게들이 운집해 있다. 모든 것들의 중심에 아르마스 광장이 있었다.
오전에 우선 은행에 들러 환전을 하고 오얀따이땀보에서 마추삑추로 가는 기차표를 예매했다. 중요한 일을 마쳤으니 여유로운 마음으로 까페에 들러 달콤한 케이크를 먹으면서 창 밖의 거리 풍경을 구경했다. 르네상스 양식의 복도식 건물들이 길게 늘어선 거리에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상점들이 즐비했고 아침부터 여행자들로 북적였다. 그곳에서부터 두 블록을 사이에 두고 재래시장이 있었다. 시장에 들러 구경을 하며 이런저런 기념품들과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점심을 먹고 다시 아르마스 광장으로 나왔다. 벤치에 앉아 온종일 사람들로 붐비는 광장의 풍경을 구경하는 일은 마땅히 일정이 없는 날의 여행자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유희 거리이다. 오전 내내 시내를 어슬렁거린 덕분에 조금씩 도시의 지도가 머릿속에 윤곽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오후 무렵에는 산 프란시스꼬 광장 쪽에서 출발하는 시티 투어 버스를 타고 광장의 북쪽에 위치한 거대한 잉까의 유적지 삭사이우망(Sacsayhuaman)에 들렀다. 잉까인들에게 세계의 배꼽이라고 여겨졌던 꾸스꼬를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성벽처럼 보이기도 하고, 제사 의식용 성전이라고 여겨지기도 하는 이 유적은 건축에 사용된 돌의 크기와 유적지 자체의 규모가 굉장히 컸다. 건축에 사용된 돌 중 가장 큰 돌의 높이가 9미터에 350톤에 달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거대한 돌을 들어 올려 다른 돌들과 빈틈없이 촘촘히 맞물리도록 만든 그 석조 기술은 볼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잉까인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정복자가 된 스페인 침략자들은 이 거대한 요새(혹은 성전)를 허물어 자신들을 위한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을 꾸스꼬 시내에 지으며 잉까인들의 유산을 철저히 파괴하고 유린했다고 한다. 그 후 몇 차례의 지진을 겪으면서 스페인 정복자들의 건축물은 거의 대부분 무너졌으나 15세기에 지어진 잉까인들의 건축물은 그대로 보존되었다고 하니 건축기술에 있어서는 잉까인들이 유럽인들을 이긴 셈이다.
투어버스는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점에 들렀다가 브라질 리우의 예수상을 모방한 작은 예수상이 있는 언덕으로 향했다.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꾸스꼬의 시내 전경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고층 건물이 없이 하얀 벽에 주황색 황토 기와를 얹은 낮은 집들만 빼꼭히 들어앉은 꾸스꼬 시내에 가로등불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했다. 그 도시의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속에 섞여서 환하게 불을 밝힌 눈부신 아르마스 광장을 지나 호스텔로 돌아왔다. 밤거리에 대한 두려움을 걷어낼 수 있었다면 낮보다 아름다운 밤의 아르마스 광장에 앉아 밤늦도록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여행지에서의 밤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늘 아쉬웠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니 안전이 최우선이다. 조심 또 조심하자.
투어버스에서 내려 노점에서 파는 꼬치구이를 하나씩 사들고, 동글동글한 돌이 촘촘히 깔린 길을 걸어 아르마스 광장을 지나 숙소로 돌아왔다. 주인 내외의 막내딸 발레리아와 제나가 친구가 되어 잘 어울려 놀자, 안주인이 퇴근하면서 따듯하게 자라며 우리 방에 가스난로를 넣어줬다. 꾸스꼬에서 딸 잘 둔 덕 좀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