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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s 깜빠뉴 Feb 11. 2021

사고 싶은 집 VS 살고 싶은 집

어디에서 사시겠습니까?

단독주택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연일 뉴스에는 층간소음에 대한 기사가 뜬다. 나 역시도 아파트에 살면서 층간소음을 겪었다. 비단 층간소음에 대한 문제뿐만 아니라 코로나로 인해 사적 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집착은 심해질 것이다. 전문가들은 미래에는 이와 같은 전염병이 몇 년에 한 번씩 창궐할 것이라고도 조심스레 예측하고 있다. 그야말로 이불 밖이 너무나 위험한 세상. 그 세상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세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을 짓기로 마음먹었던 2015년, 그때는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평화의 시대였다. 심지어 지금보다 세금에 대한 부담이 덜해 아파트를 잘 사고팔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시대였다. 부동산 뉴스를 보며, 가끔 남편과 우리가 만약 그때 방문했던 모델하우스들 중에 하나의 아파트를 샀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 집들은 정말 사고 싶은 집이었지만, 살고 싶은 집은 아니었다.


단독주택에 왜 살고 싶을까?


단독주택을 지어서 이사 가겠다고 이야기를 하니 주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독주택에 살면 부지런해야 한다. 마당도 관리해야 하고 집도 아파트와 달리 손이 많이 간다.

도둑이 들 염려도 많아서 혼자 있으면 무섭다.

추워서 난방비가 폭탄일 것이다.

만약의 경우, 현금화하기가 어렵다.

......

사람들은 단독주택에 대한 단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이 나열할 수 있는 것 같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 단독주택에 대한 기억이 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며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면, 너무 옛날 사람일까?

나 역시도 어린 시절 단독주택에 살면서 강도가 든 적도 있고, 겨울에 너무 추워 씻고 나면 거실에 피워둔 난로 앞으로 뛰어가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시절은 물을 돈 주고 사 먹는 것도, 길에서 전화를 하며 다니는 것도 상상할 수 없던 마치 구한말과 같은 머나먼 옛날 옛적이지 않은가. 지금의 단독주택은 그때의 단독주택에 비해 기능적인 면에서 월등히 우수하다.


단독주택에 살면 확실히 부지런해야 한다. 이건 분명 맞는 말이다.

군대 이후로 눈이 오는 것을 쓰레기가 내리는 것 같다고 느낀 적은 처음이라는 말도, 잔디는 남의 집 아이가 크는 것보다도 더 빨리 자라는 것 같다는 말도 단독주택에 살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이것 말고도 단독주택에 살면 이것저것 관리할 일이 엄청나게 많다. 특히 여자보다는 남자가 할 일이 태산이다. 그러니 충고하건대, 남편이 단독주택에 사는 일에 시큰둥하다면, 단독주택에 사는 꿈을 접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보아야 한다.

하지만 남편이 각오가 섰다면, 이것은 오히려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단독주택에 사는 남편들은 대부분 가정적이고 부지런하다.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단독주택에 사는 남자들은 그런 남자들인 것이다.

남편은 늘 본인이 굉장히 좋은 남편이라고 자부하며 살아왔다. 거의 상위 1%의 좋은 남편이라는 생색의 말만 하지 않는다면, 나도 인정해주고 싶을 만큼 남편은 꽤 좋은 남편이다. 그런 그가 단독주택에 이사한 후로 겸손해졌다. 그는 동네에서는 그저 평범한 남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금성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투자를 목적으로 한다면, 단독주택을 지으면 안 된다. 단독주택은 개인의 취향에 맞춰 설계하고 짓기 때문에 팔기가 쉽지 않다. 나와 같은 취향의, 나와 같은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비슷한 가족 구성원의 매수자를 만나기는 어려운 일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첫 번째 지은 집을 2년 만에 팔고 두 번째 집을 지었다. 하지만 집을 판 것은 거의 천운에 가까웠다. 사실은 남편과 달리 첫 번째 집에 애착이 많았던 나는 설마 집이 팔리겠나 싶어서 남편의 불만을 수긍해주는 제스처 정도로 부동산에 집을 내놓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TV에 동네가 소개되었고 갑자기 동네에 관광객이 많아지더니 집을 보러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왔다. 그리고 그 많은 분들 중에 두 분이서만 사실 노부부가, 그것도 취향이 나와 같은 분들이 집이 마음에 쏙 든다며 사신 것이다. 이후로 동네에 내놓은 집이 여러 채가 있었지만, 어떤 집은 팔기를 포기했고 또 어떤 집은 갑자기 시행된 정부의 대출규제 때문에 처음 내놓은 금액보다 훨씬 저렴하게 팔게 되었다. 같은 시기에 같은 규제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값은 오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독주택은 사고 싶은 집이 되기는 어렵다. TV에서 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멋진 단독주택이 나오면 저런 집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을 하지 사고 싶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단독주택에 살고 싶을까?


어린 시절, 단독주택에 살던 그 기억이 너무 좋았었나 보다. 가을이 되면, 대추나무와 감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열매를 따서 겨우내 먹고 여름엔 비치의자를 펴고 마당에 누워 책도 보고, 커다란 빨간 고무대야에 들어가 물장난하던 그런 기억. 마당에 핀 봉숭아꽃 따다 손톱에 꽃물도 들이고 친구들과 장독대 계단에 올라가 누가 더 높은 데서 뛰어내리나 내기하던 기억.


시간이 지나면 아름다운 기억만 남는다고 하지만, 단독주택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 풍요롭게 해 주었던 것 같다. 아이에게 이런 좋은 것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제일 컸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가 마음껏 뛰어놀게 해주고 싶었다. 피아노도 치고 싶을 때는 언제든 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마당에 핀 꽃과 나무를 보며 계절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것이 아이도 행복해지고 엄마도 행복해지는 길일 것 같았고, 그건 실제로 경험해보니 그랬다.

 

사고 싶은 집에서 사는 것이 행복할까, 살고 싶은 집에서 사는 것이 행복할까?

아직도 가끔 이런 고민을 한다. 사고 싶은 집에서 살아야 더 안정된 노후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하지만 현재의 행복을 놓고 싶지 않아 나는 그냥 살고 싶은 집에서 살기로 했다.

그리고 세상 사람 모두가 사고 싶은 집 말고 살고 싶은 집에서 산다면, 단독주택의 가치도 좀 변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본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 가장 선호할 주거형태의 정답은 바로 단독주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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