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땅 보는 눈이 없을지라도....
땅을 보는 눈은 어떻게 하면 키울 수 있을까?
집 지을 땅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을 때가 아마도 2013년쯤부터였던 것 같다. 직장 때문에 수도권을 벗어날 수 없었기에 판교부터 시작해서 북쪽으로는 삼송지구, 은평 한옥마을에도 가보고 남쪽으로는 광교신도시의 택지지구, 용인의 이곳저곳(용인은 정말 많았다), 위례신도시를 둘러보고는 광교에 터를 잡았다.
광교에서만 두 번의 집을 짓고도 우리는 아직도 미련이 남았는지 다음에 집을 지으면 어떤 땅을 사면 좋을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저녁을 먹고 남편과 동네 한 바퀴 산책하다 공유지가 마당과 이어져 마당이 넓어 보이는 집을 보고는,
"참 우리는 땅 보는 눈이 없다."
몇 년 전에 분명 둘러봤던 땅인데, 그때는 왜 저 땅을 살 생각을 못했을까?
사실 집이 들어서지 않은 허허벌판의 땅들을 보고 그 위에 우리 집 그리고 이웃집들이 들어선 후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땅만 봤을 때는 좋아 보였던 땅도 이웃집들이 들어서면 답답해 보이기도 하고 오히려 답답할 것 같았던 땅은 설계를 잘해서인지 아늑해 보이기도 한다.
땅값은 대체로 정직한 편이라 모두의 눈에 좋아 보이는 땅은 비싸고 그렇지 않은 땅은 싸다. 하지만 땅을 보는 안목이 있는 사람은 모두의 눈에 안 보이는 보석을 찾아낸다.
비록 아직 땅 보는 눈이 없긴 하지만, 땅을 고민하면서 들었던 생각을 나누어볼까 한다.
지하주차장이 나오는 땅, 정말 좋을까?
지하주차장이 나오는 땅은 그렇지 않은 땅보다 더 비싸다. 지하를 만들 수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긴 하다.
첫 번째 집을 지은 땅은 지하주차장이 나오지 않는 평지의 땅이었고, 두 번째 집을 지은 땅은 지하주차장이 나오는 경사지의 땅이다. 첫 번째 집을 짓고 가장 불편했던 점은 실내 차고가 없다는 점이었다. 원래 차를 밖에 세워두고 살았다면 불편함이 크게 다가오지 않았을 텐데, 지하주차장이 있는 아파트에 살다가 외부에 차를 주차하니 날씨에 민감해지고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두 번째 집을 지을 땅을 고를 때는 무조건 지하주차장이 나오는 땅을 선택했다. 그런데 지하주차장이 있으면 정말 좋을까?
단언컨대 실내 차고는 정말 좋다. 그것이 1층에 있든 지하에 있든 실내 차고는 있으면 무조건 좋다. 그런데 살아보니 지하주차장보다는 1층에 차고가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엘리베이터가 없으니 지하주차장에서 장본 것을 다 들고 계단을 올라오는 일은 꽤 힘이 든다. 물론 차를 밖에 세워두던 때에 비하면 지금도 감지덕지지만, 욕심은 끝이 없다고 지하보다는 1층에 차고가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집을 지어 살다 보면, 2층 집에 대한 로망은 단층집의 로망으로 변한다. 수직적 구조보다는 수평적 구조가 더 익숙하고 편한 것이다. 물론 아이들은 수직적인 구조를 더 좋아하긴 한다. 건축주들 중에는 아마도 다음에 또 집을 지으면 2층 집 말고 단층으로 넓게 짓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꽤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지하까지 추가된다면? 우리 집도 현재 그렇긴 하지만, 보통은 2층에 다락까지 있으니 층수로 계산하면 4층이 된다. 지하, 1층, 2층, 다락 이렇게 구성되는 4층. 일반적으로 단독주택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이 대부분이기에 생각보다 이런 수직적 구조에서는 하루에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굉장히 많다. 2층에서 뭔가를 하다가 지하에서 물건을 가져와야 할 때는 정말 한숨부터 나온다.
그래서 만약 세 번째 집을 짓게 된다면, 비슷한 비용을 투자하여 지하주차장이 나오는 비싼 땅 말고 지하주차장이 나오지 않는 평지의 더 넓은 땅을 사겠노라고 다짐했다. 땅값으로 비교해도 지하주차장이 나오는 경사지의 땅이 더 비싸고 지하주차장 공사를 하려면 평지에 차고를 짓는 비용보다 훨씬 많이 들기 때문에 차라리 더 넓은 평지의 땅에 1층 실내 차고를 짓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반면, 실내 차고를 1층에 만드는 경우 건폐율에 포함되기 때문에 건폐율이 낮은 땅에 집을 지을 때는 부족한 1층 바닥면적에 차고까지 넣어야 할까 하는 고민이 된다. 그런 이유로 지하주차장이 나오는 땅이 더 비싼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전제조건이 "평지의 더 넓은 땅"이라고 한 것이다. 땅이 넓다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주차장이 나오는 땅이 더 좋을 것 같다면, 지하주차장이 정말 지하로 들어가는지 아니면 도로에서 많이 내려가지는 않아도 되는 지하주차장인지를 꼭 따져봐야 한다. 지하층이라 함은 건축물의 바닥이 지표면 아래에 있는 층으로서 바닥에서 지표면까지 가중평균 높이가 해당 층높이의 1/2 이상인 것을 말한다. 가중평균 높이를 구하는 일이라던지 하는 것까지 건축주가 다 알 수는 없고 그런 복잡한 계산은 건축사에게 맡겨두고 건축주가 보기에도 경사가 많이 지지 않았는데 지하주차장이 나오는 땅이라고 하면 그것은 그만큼 땅을 아래로 많이 파서 지하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반대로 경사가 많이 진 곳은 지표면이 높은 곳과 낮은 곳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가중평균 높이를 구했을 때 경사가 낮은 곳을 기준으로 지표면 위로 올라오는 부분의 높이가 꽤 생기므로 도로에서 봤을 때 1층으로 보이더라도 그것이 지하주차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굳이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지하주차장이라고 파놓고서도 실제로 이 가중평균을 맞추기 위해 지하로 너무 깊이 내려가야 해서 지하로 내려가는 경사가 급하여 주차하기 불편해서 지하차고를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를 왕왕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부동산에서 이 땅이 지하주차장을 팔 수 있는 땅이라고 하더라도 실제로 사용이 가능한 지하주차장을 팔 수 있는 땅인지는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다른 방법으로는 지하층의 정의에서 말한 것처럼 이것이 지하층 높이와 깊이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지하주차장을 도로와 비슷하게 맞추고 싶다면 주차장이 아닌 다른 지하층의 사용 공간을 더 깊이 파서 가중평균 높이를 조절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에 꼭 계산을 잘하는 건축사와 상의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가성비가 좋아 보였던 지인이 집을 지은 땅.
생각의 전환으로 참 가성비 좋은 땅을 산 지인이 있다. 그 땅은 경사지에 있어서 지하층을 1층처럼 쓸 수 있긴 하지만 도로가 경사지의 윗부분에 접해있어서 지하주차장을 만들 수는 없는 땅이었다. 그런 이유로 지하주차장이 나오는 다른 땅에 비해 땅값이 저렴했고 심지어 오랫동안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지인도 처음에는 지하주차장을 만들 수 없는 땅이 마음에 쏙 드는 것은 아니라 오랜 고민 끝에 땅을 사기로 결심했다고 하는데 집을 지어놓은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한다. 건축주는 이 땅에 지하주차장 대신 1층에 실내 차고를 만들고 지하는 대신 넓게 파서 홈바를 겸비한 AV룸으로 만들었다. 1층에 있는 실내 차고가 건폐율에 포함되기 때문에 1층에는 차고를 만든 만큼 넓은 거실을 만들 수 없었지만, LDK가 모두 한 층에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지하로 거실을 내렸기 때문에 더 넓은 거실을 가질 수 있었다.
지하층 공사비를 절약할 수 있는 땅.
지하층을 만드는 것은 지상층을 만드는 것보다 더 많은 공사비가 소요된다. 그래서 누차 이야기하지만 총비용을 생각했을 때 평지의 넓은 땅이 비용면에서나 살기 좋은 측면에서나 더 낫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심에 있는 단독주택지는 그렇게 넓은 평수를 가진 땅이 많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이 지하차고를 선호하기 때문에 경사지의 땅을 찾기가 더 쉬울 수도 있다. 그런데 경사지의 땅이라고 해서 지하층을 만들 때 다 비슷한 비용이 드는 것이 아니다. 땅을 보는 눈이 없기도 하거니와 자금에 맞추느라 동네에서 제일 작은 땅을 산 나의 경우에는 땅을 사는 시점에 내가 산 땅이 지하층 공사비가 더 많이 들 거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었다. 사실 두 번째 집을 지은 땅은 매우 보편적인 지하층이 나오는 땅이다. 하지만 땅을 보는 눈이 있는 사람들은 지하층을 만들면서 남들보다 공사비를 절약할 수 있는 땅을 산다. 그런 땅은 어떤 땅일까? 대부분 남향 필지를 선호하기 때문에 경사지에 집을 지을 경우, 도로에 접한 지하 부분을 파서 주차장을 만들면 주차장 위의 지상 부분은 마당이 된다. 집을 뒤에 앉혀야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남향 마당을 바라보는 집이 지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집을 지으면 지하를 통으로 다 파는 경우가 아닌 다음에야 기초공사비가 두 배로 든다. 왜냐하면 주차장 윗부분으로 이어서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차장 위에 마당을 조성하기 위한 방수 공사가 추가로 들어가고 뒷부분에 건물을 짓기 위한 기초공사가 또 추가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 북향 땅이라면 어떨까? 도로를 향해 북쪽으로 난 필지라면, 집이 남쪽을 보기 위해서는 주차장 위에 이어서 건물을 지어야 한다. 이 경우, 남향 필지와 달리 주차장 위로 건물을 올리기 때문에 기초공사비를 절약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주차장 위에 마당을 조성할 경우 큰 나무를 심으면 나무의 뿌리가 방수층을 깰 수 있기 때문에 나무를 심기가 조심스러운데 건물이 주차장 위로 올라가고 그냥 땅에 마당을 조성하면 이런 염려 없이 마음대로 조경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경사지의 땅이라면 북향 필지가 공사비를 절약할 수 있는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본 가장 좋은 땅은 산이나 공유지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된 북향 필지다. 이 경우 위에서 말한 것처럼 주차장 위로 집의 건물을 올려 시공비를 절약하는 동시에 마당은 자연스럽게 공유지와 연결되어 넓게 쓸 수 있고 도로에서는 집 건물에 가려 마당이 전혀 안보이기 때문에 프라이버시한 마당을 넓게 사용할 수 있다.
무조건 남향 땅, 무조건 경사지를 고집하지 않고 더욱 폭넓게 생각하는 연습을 하면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좋은 땅을 좋은 가격에 살 수 있다. 역시 무슨 일을 하든지 고정관념을 버리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