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이 너덜너덜해졌다

- 뉴욕과 토론토 2

by Cha향기

2017년에 '6개월간 원어민과 수업하는 심화 연수' 대상자가 되었다.

그 연수를 받고 싶었으나 요구하는 조건이 넘사벽이었다.

때마침 연수 대상자 선발 기준이 '40세 이상/이하'로 나눠져서 내게 유리해졌다.

마침내 나는 그 연수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내 한계를 뛰어넘는 연수지만

일단, 발을 들여놓은 이상 뒤돌아보지 않았다.

이건 내 전매특허다.

무엇이든지 시작했다 하면 뒤돌아보지 않고 고고씽이다.


내가 맡았던 학교 수업과 업무는 기간제 교사가 대신했다.

파견 교사 신분으로 6개월간 외국어 수련원으로 출퇴근했다.

연수원에서 원어민과 온종일 지냈다.

한국 땅에서 영어 나라 속에 갇혀 지낸 듯한 나날이었다.

영어 듣기, 말하기, 영어 원서 읽기, 영어 강연 듣기, 팀별 발표, 영어 문법, 영어 쓰기 등등...


그런 일정 가운데 가슴 아픈 일도 있었다.

어떤 원어민 교사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불손하기 그지없었다.

때로는 화장실에 가서 눈물을 닦았다. 그 사람들은 위, 아래도 없는 것 같았다.

그건 자기 문화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

하대하듯 하는 억양이 듣기 거북했다.

마치 학생 다루듯 하는 그를 본국으로 당장 쫓아 보내고 싶었다.


내가 왜 영어교사가 되어 이 꼴을 당하는지?

내가 왜 뒤늦게 교직에 들어와 이런 창피를 감수하고 있는지?

그런 자괴감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문법과 쓰기 수업을 맡은 원어민 교사 J의 스파르타식 교육 방법은 토가 나올 정도였다.

영어 쓰기는 우리나라 글쓰기와는 사뭇 달랐다.

그는 늘 혀를 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떤 글쓰기 파트에서 '자기 자신'을 쓰라고 수없이 말했다.

타인에 대해 말하지 말고 자기 자신만을 쓰라고 했다.

그게 쉬운 듯하면서 무척 어려웠다.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 맘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연수받는 교사들을 원어민 수준으로 만들어 달라고 누가 부탁했을까?

J더러 우리말을 우리만큼 잘하라고 하면 자기는 그게 가능할까?

그때 나의 자존감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고 자존심도 상할 대로 상했다.


늦은 나이에 영어 교사를 한답시고 마치 불 속에 뛰어든 불나방 같은 내 신세가 안쓰러웠다.

영어 실력 때문에 번번이 지적질당하니 내 속이 너덜너덜해졌다.

그건 우리 연수생 모두가 겪는 괴로움이었다.

다만 그 하중이 얼마 정도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어느 모로 보나 내가 받는 고충이 젤 심한 것 같았다.

그때 내 인생은 시궁창이었다.

그 연수를 받으면서, 나는 꼴찌들이 받을 열패감을 체휼했다.

공부 못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그들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게 됐다.

줄을 세워보면, 1등이 있다면 꼴찌도 있게 마련이다.

그 꼴찌는 아무리 노력해도

꼴찌를 벗어날 수 없는 테두리 속에 갇혀있다.

그런 걸 알아차리는데 너무 비싼 값을 치른 셈이다.


내가 받았던 연수 내용이다.

『연수에 참여한 중등 영어 교사 20명은 총 740시간 동안 교수-학습 방법의 연구 및 개발을 통한 영어 교사의 전문성 신장을 위해 인천 교육연수원과 영어권 국가 협력 교육청의 위탁 프로그램을 통해 실생활 영어교육 중심의 연수와 교육 실습에 참여했다. 연수는 총 3개의 Session으로 구분해 제1 Session에서는 연수원 외국어교육부에서 교수 학습 능력향상과 영어 의사소통 능력향상에 초점을 두고 국내대학 교수 및 원어민들로부터 집중 연수를 진행했고 제2 Session에서는 캐나다에서 1개월 동안 전문가 강의 및 현지 학교 교육 실습을 진행했다. 특히 현지 초·중등학교에 배정돼 현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 활동을 통해 민간외교 사절 역할도 수행했으며 마지막 제3 Session에서는 그간 익힌 교수법을 우리 교실 현장에 적용하는 우수 수업 적용 사례 강의와 워크숍, 개인별 수업 연구와 평가 등을 실시했다.』 (출처: 인천교육연수원)



연수 마지막 한 달 동안은 캐나다 토론토로 현지 연수를 떠났다.

토론토 대학 방문, 나이아가라 폭포 답사 등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오타와 튤립 축제, 도깨비 촬영지로 유명해진 퀘벡, 유서 깊은 몬트리올 방문 일정도 있었다.

물론 현지 초등학교에서 프랙티컴(현장실습)도 했다.


‘연수 마무리 세리머니’에서 연수생 대표로 소감을 발표할 기회가 내게 주어졌다.

당당하게 많은 원어민과 연수원 관계자, 그리고 연수 동료들 앞에서

영어로 당당하게 연수 소감을 발표할 때 모두가 박장대소하며 웃었다.

가장 많이 울었던 내가 가장 크게 웃긴 순간이었다.


연수원 교육뉴스에,

"심화 연수를 통해 영어로 진행하는 수업에 자신감을 얻었고

미래의 주인공인 학생들의 국제적 역량 신장을 위한 의사소통 능력뿐 아니라

학생활동 중심의 협력학습이 중요함을 깨닫게 됐고

이제 학교에 돌아가 학교 현장에서 실천하고자 한다."

내가 밝혔던 포부가 실리기도 했다.


6개월 심화 연수 때 익혔던 티칭 방법 중에서 학생 중심 교수법을 학교 수업에 적용했다.

내 수업 방식이 다른 교과에서 하던 수업과 차별성이 있다는 것을 학생들도 아는 눈치였다.

나는 수업을 디자인할 때 어느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수업에 사활을 걸 정도로 수업 준비를 열심히 했다.

글로벌한 수업 방식을 교실에 도입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한 번은 방과 후 수업을 장학하려고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다는 풍문이 들렸다.

그러자 학력부에서 내 수업 교실을 개방하자고 내게 부탁하긴 했지만 그 장학팀은 오지 않았다.

늦깎이였지만 수업 방식은 최신이었다.

그런 수업은
학생들에게 좋았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뿌듯했다.
눈물 젖은 연수가 밑거름이 됐다.

울면서 영어 공부 해보지 않은 자는
영어 공부했다는 말을 마시길...

#토론토

#심화연수

#세리머니

#늦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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