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송지영 작가, 《널 보낼 용기》
'딸을 잃은 자살 사별자 엄마의 기록'이라고 책 표지에 적혀있다. 신착 도서 매대에 이 책이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누워있는 듯했다. 표지를 열어볼 자신이 없었다. 책을 곁에 가져다 두긴 했지만, 책을 열면 종이가 작가의 눈물로 흠뻑 젖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작가의 용기에 포개어 이 책을 천천히 읽기로 했다.
유독 이 책 앞에서는 머뭇거렸다. 물의 화학식은 H₂O다. 그렇다면 눈물도 그럴까? 송지영 작가와 나의 눈물은 H₂O가 아니라 'BH₂O'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B는 Blood(피)의 첫 글자다. 우리는 피눈물을 흘린다.
14년 전에 당한 불의의 사고로 생때같은 내 아들은 죽음과 진배없게 되었다. 다만 작가의 아픔에 비한다면 내 아들의 몸은 아직도 따뜻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를 쓰는 일은 "그리워 말고 추억해 주세요"라는 아이의 마지막 부탁에 대한 나의 응답이었다. 세상이 무너진 자리에서도 삶은 흘러갔고 미성숙한 인간이었던 나는, 사랑을 다시 배우며 진짜 엄마가 되어 가고 있다. (...) 나는 우리 가족의 비극을 우리만의 비밀로 가두는 대신, 모두의 과제로 내어놓는다 (9p)
작가는 이렇게 조용히 서두를 꺼낸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데까지 오는 동안, 그분이 디뎠을 바닥이 가늠된다. 질병이나 사고로 비명에 생을 마감하는 자식이 있다. 그런데 작가의 딸은 육체가 아닌 정신에 병이 왔었다. 그건 보이지 않는 곳의 아픔이라 부모라도 속속들이 알아챌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더 돌보기 힘들고 때로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일을 당하고 나서는 상실감보다 더 큰 죄책감이 부모를 덮쳤으리라. 그래서 작가는 몸부림치듯 울부짖는다.
정성으로 키운 아이는 결국 다 잘 된다고들 했다. 부모의 사랑이 자식을 감싸 안아, 어떤 어려움도 반드시 견디게 해 줄 거라 했다. 이 말은 거짓이었다. 사랑으로 키워도, 아이는 떠났다. 우리는 늘 아이 곁에 있었지만, 아이가 기댈 부모가 되지는 못했다. 온 마음을 기울여도 끝내 아이의 아픔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병을 알게 되었지만, 낫게 해주진 못했다. (33p)
자살 사별자에게는 부모가 있고 다른 자녀도 있다. 결국 사별자와 연결된 많은 이들이 동시에 고통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내게도 나만을 걱정해 주는 엄마가 있다'라는 글은 제목만으로도 코끝이 시큰해졌다. 손녀를 잃은 외할머니의 아픔이 그려져 있었다. 이 부분을 읽는데 공감하는 마음에 자꾸만 잔털이 일어섰다.
외할머니는 손녀가 눈에 어려 일상생활이 쉽지 않았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고 가슴이 울렁거린다고 했다. 그러다가 손녀의 주치의를 찾아갔지만, 손녀가 살려는 의지가 없었다는 얘기를 전해 듣는다. "이미 마음을 놓아버린 환자는 정말 어렵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분은 마음으로 손녀를 보내야만 하는 아픈 용기를 낸다. 두 해 동안 지냈던 어머니 집에서 떠나오며 작가는 어머니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이어서 어머니로부터 답장을 받는다(47~53p).
이 장면이 내 형편과 겹쳤다. 내게도 내 사정에 대해 맘 아파하는 어머니가 있다. 구순이 넘은 어머니는 요양원에서 지낸다. 먼 곳이라 자주 찾아뵙 지 못한다. 몇 달 전에 엄마를 뵈러 갔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면서도 나를 제대로 알아보셨다. 손주가 14년간 중병으로 누워있다는 그 생각만은 흐려지지 않은 채였다. 손주의 아픔도 그렇지만 자식 때문에 기죽어 살아가고 있을 딸을 걱정하는 어머니 마음이 여과 없이 내게 전해졌다. 누워있는 손주와 그것 때문에 맘 아플 딸에 대한 이중적 걱정이 어머니에게 있었다.
또 진하게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다. 치매를 앓고 있는 시어머니가 작가를 만나 "니는 아가 몇이고?"라고 묻는 장면이다(139~144p). "있었는데, 없어졌다"라고 말해야 맞는 답이다. "애가 둘이었는데 이제 하나예요"라고, 해야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몇 번 했다. 자녀는 몇이냐고 물으면 둘이라고 대답은 하지만 맘이 무거웠다.
또한 병문안 왔던 분들이 종종 "자녀는 ○○이 하나인가요?"라고 물었다. "아뇨, 위에 누나가 있어요. 결혼도 했고요"라고 대답한다. 그 순간 그분들이 안도하는 표정을 나는 잽싸게 읽곤 했다. '그나마 다른 자식이 있어서 다행이네요'라는 위로의 마음인 줄은 알지만 내 속에는 복잡한 바람이 인다.
여동생을 잃은 작가의 아들이 짠했다. 그의 아픔은 부모님 못지않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슬픔을 드러내는 것조차 마음이 무거워 꾹꾹 누르고 지냈을 것이다.
동생을 잃은 뒤, 형진이는 달라졌다. 한때는 정해진 길을 거부하며 자신만의 삶을 찾겠다고 했던 아이가, 대학에 가겠다고 말했다. (196p)
이쯤에서 내 딸 생각이 났다. 우애가 돈독했던 남매였는데 딸내미는 하루아침에 동생의 부재로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났을 것이다. 그 만성적인 부재를 14년째 겪고 있다. 부모를 동생이 독차지하고 있으니 스스로 아픔과 외로움을 견뎌냈을 것 같다. 이 부분을 읽으며 딸내미 마음이 어떠할지 한층 더 깊게 알게 됐다.
또한 '슬픔을 건널 때는 동행이 필요하다'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내 경우도 14년 간 많은 사람이 다양한 형태로 우리와 동행했다. 그동안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면, 우리의 발자국은 없고 동행한 자들의 발자국만 가득한 삶을 살아왔다고 해도 될 정도다. 그분들이 우리를 업고, 안고 왔던 시간이었다.
아무튼, 이 책은 길을 잃은 마음에 건네는 조용한 위로였다.
딸을 보낼 용기에서 출발한 글쓰기는
결국 한 권의 책으로 세상 밖에 나왔다.
널 보낼 용기 - 딸을 잃은 자살 사별자 엄마의 기록 송지영 (지은이), 푸른숲(2025)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0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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