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비자 상담실에 연락해 봤지만, 대책이 없었다.
연일 전쟁 뉴스에 질릴 지경이다. 미국과 이란 전쟁 이전에도 러시아 전쟁에 이미 지쳤다. 연이은 이스라엘 전쟁은 우리 아들의 일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14년째 중증 환자로 병상에 누워있는데 경장 영양제 구하기가 몹시 어렵다. 이스라엘 전쟁 여파로 독일 제품인 하모닐란 물류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장 영양제 수급 불안 이슈에 관한 글을 올린 적 있다.
이번에는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원유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종량제 봉투 대란이 왔다. 종량제 봉투를 구할 수 없으니 남의 쓰레기를 쏟아버리고 그 봉투를 들고 가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고 한다. 원유값 상승으로 비닐봉짓값이 40%나 올랐다. 4월 8일 아침 부로 미국과 이란이 휴전이 되어 한숨을 돌리고는 있으나 여러모로 불안한 맘은 여전하다.
인류 역사는 도구의 재료에 따라 석기, 청동기, 철기시대로 발전해 왔으며, 현대는 플라스틱이 일상을 지배하는 '플라스틱(비닐) 시대'로 불린다. 집안을 둘러보면 온통 플라스틱과 비닐이다. 핵심 원료인 나프타 수급 차질로 여수 석유화학 산업단지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자영업자들에게도 직격탄이다. 비닐 수급이 불안해지면 환자를 돌보는 우리 가정은 남들과는 또 다른 걱정을 해야 한다.
아들을 간병하면서부터 다른 간병인들로부터 요령을 하나씩 배웠다. 이발, 체위, 침상 목욕, 석션, 드레싱, 목관 튜브 교체, 응가 처리, 소변 받아내는 법, 식사 투여하는 법 등등, 그중에 소변 처리하는 법이 가장 요긴했다.
와상환자 소변 관리는 군인이 보초 서는 것만큼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소변이 한 번 새면 환자의 옷까지 갈아입혀야 하고 깔개 패드, 침대보를 갈아야 한다. 물론 그 밑에 있는 욕창 방지 매트도 닦아야 할 뿐 아니라 환자의 몸도 닦아야 한다. 리프트기를 이용하여 환자를 휠체어에 옮겨 놓아야 침상을 수습할 수 있다. 다행히 그런 일은 거의 없었다. 어쩌다 소변이 약간 새더라도 깔개 매트를 적시는 정도였다.
현재 폭 30 cm× 길이 45cm 크기 비닐봉지를 이용하여 소변을 받아내고 있다. 그런데 비닐봉지 밑이 새면 일이 커진다. 그런데 엊그제는 300매 들이 상자에 있는 비닐봉지가 모두 불량이었다.
그냥 넘어가려다가 소비자의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아들에게는 하루에 10~15장 정도 비닐봉지가 사용된다. 상자에 적힌 소비자 상담실에 연락했다.
비닐봉지 상자에 ‘본 제품은 공정 거래위원회 고시 소비자 분쟁 해결기준에 의거 교환 또는 보상받을 수 있습니다.’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적혀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랫동안 비닐봉지를 애용하고 있는 소비자인데요. 이번에 구매한 비닐봉지가 마감 처리가 제대로 안 되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그렇다면 통에 적힌 ‘주의사항’을 봐주실래요?”
주의사항: 액상 제품 포장 시 누수의 위험이 있으므로 포장하지 마십시오.
라는 항목이 눈에 들어왔다. 비닐봉지가 새는 경우에도 제조사에는 책임이 없게 된 규정이다. 비닐봉지가 샌다고 전화를 하는 사람이 꽤 있었나 보다. 그래서 아예 ‘주의사항’으로 명시해 둔 듯했다. 소비자 상담실에 연락했지만, 아무런 사과도 받지 못하고 전화를 한 내가 주의사항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물이 새지 않는 비닐봉지가 따로 생산되나요?”
“그런 제품은 없습니다.”
비닐봉지가 편리하기 이를 데 없지만 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안심하고 사용할 게 못 됐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결국 답답한 사람이 샘을 팔 수밖에 없다. 비닐봉지를 안심하고 사용하는 방법을 골똘히 생각하다가 비닐봉지 끄트머리를 일일이 묶기로 했다. 그러면 샐 염려는 없다.
비닐봉지가 새는 문제는 그렇게 해결했지만 앞으로 비닐봉지 수급이 원활할지 걱정이다. 아들 간병 용품 중에 위생 장갑, 기저귀, 깔개 등이 모두 비닐 제품이다. 게다가 경장영양식도 비닐에 담겨있다. 값이 오르는 것도 문제지만 구할 수 없게 될까 봐 걱정이 앞선다. 다른 사람들도 이번 전쟁 여파로 각자의 걱정을 떠안고 있을 것이다. 비닐봉지 대란을 겪고 있다.
부디 전쟁 없는 나날이 와서
평화로운 세상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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