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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찬양Lim Apr 29. 2023

500만 원짜리 팔찌(in '닥터 차정숙')

- 그런 팔찌, 내게는 개발의 편자

['스포' 주의]


나는 대체적으로 아침 6시에 기상한다. 출근하여 학교에서 온종일을 보낸다. 퇴근길에 중병으로 투병 중인 아들이 있는 아파트에 가는 것이 일상적인 루틴이다. 그곳에서 여러 가지 간병에  관련된 일을 끝내고 다시 세컨 하우스로 간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저녁을 챙겨 먹고 집안일을 마무리한 후에 1-2시간 정도 여유가 생긴다. 그럴 때는 습관처럼 TV를 켠다. 리모컨을 들고 뭔가 짜릿하고 재미있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자지러지게 웃을 수 있는 프로가 있으면 더욱 좋겠다. 그러나 좀처럼 그런 프로가  내게는 보이지 않는다.


제일 먼저 뉴스를 시청한다. 속보 같은 것이 없으면 다소 안심하며  TV 편성표를 차근차근 훑어본다. 채널 0번에서 출발하여 130번까지 훑어봐도 구미가 당기는 프로가 보이지 않아 심드렁할 때가 많다. 혹시나 하고 900번대 스포츠 채널을 기웃거려보기도 한다. 역시 별로다.

내가 즐기는 TV 취향이 까다로운가 보다. 어떤 이들은 온종일 TV를 볼 수 있다던데...


그러다가 리모컨에 있는 '홈' 버튼을 눌러 유튜브 쪽으로 이동해 본다. 그것도 그게 그거다. 그러면 '티빙'이나 '넥플릭스' 같은 앱을 열어본다. 그러다가 숫제 리모컨을 내려놓는다.

결국 애꿎은 휴대폰을 본다. SNS를 챙겨본다. 그런 후에 브런치 글을 몇 편 읽다. 맘이 내키면 '작가의 서랍'에 쌓여 있는 글감을 꺼내어 꾸역꾸역 브런치 발행용 글을 쓴다. 이게 나의 저녁 시간 모습이다. 아무래도 나는 TV 시청보다는 휴대폰을 애용하는 쪽인 것 같다.



어제 저녁에는 TV 편성표를 훑어 내려가다가 일단 멈춤을 했다. (우회전 건널목도 아닌데ㅋㅋ) 


 [닥터 차정숙]이라는 드라마가 눈에 띄었다. 나의 '패밀리 네임'도 '차(Cha)'다. 그 친근감이 나를 TV 속으로 끌어들였다. 잠시 시청하니 은근히 재미있었다. 위트와 코믹이 쩔었다. 시트콤 같은 의학 드라마였다. 검색해 보니 시청률이 11%나 된단다. 재방송 중이었다.

['닥터 차정숙' 드라마 캡처 ]

'차정숙'은 오랜 전업주부 생활을 뒤로하고 20년 만에 다시 의사 가운을 입은 가정의학과 1년 차 레지던트다.


드라마는 드라마였다. '우연'이 곳곳에 남발되고 있는 걸 보니 더욱 그랬다.


차정숙은 남편과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게 된다. 그 병원에는 차정숙의 아들도 근무하고 있었다. 게다가 대학 동문이었던 여자 친구도 그곳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차정숙의 남편과 그 여자 친구는 부부보다 더 끈끈한 관계다. 그 여자 친구의 딸도 어쩌면 차정숙 남편의 아이일 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든다. 그 여자 친구의 딸과 차정숙은 딸은 단짝 친구다.


이야기가 도대체 어떻게 풀려갈지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막장 드라마 냄새가 솔솔 났다. 그러나 끝까지 보고 싶은 드라마 하나를 만난 것 같다.


피를 튀기는 장면(나는 그런 류의 영화나 드라마를 몹시 싫어한다.)은 나오지 않을 듯해서 일단 한 번 보기로 했다. 마음을 집중하여 3회~4회를 연달아 시청했다.


차정숙은 남편의 양복 주머니에서 우연히 영수증 하나를 발견한다. 500만 원짜리 팔찌를 산 영수증이었다. 차정숙은 남편으로부터 팔찌를 선물 받은 적이 없다. 그때부터 합리적인 의심이 시작된다.


드라마 내용은 서서히 갈등이 고조될 조짐을 보였다. 드라마 씬에 비친 500만 원짜리 팔찌는 참 예뻤다.

그 순간 나는 내 손목을 봤다. 헉, 내 손목에 있어야 할 팔찌가 보이지 않는다. 뭔가 허전했다. 기분이 싸하다.


'아,  팔찌를 잃어버렸구나!'


세 번째 팔찌를 잃어버린 셈이다. 팔찌가 아까운 것보다도 팔찌가 없어진 줄도 모른 채 지냈던 내가 한심했다. 그걸 몰랐으니 잠을 자고 밥을 먹었겠지. 하루에도 수없이 보는 내 손목이 아니던가? 그 손목에 있어야  팔찌가 있는지 없는지 조차 모르다니... 도대체 정신을 어디다 두고 사는 건지? 자괴감이 들었다.


일전에 팔찌를 잃어버려 안타까운 마음을 브런치 글로 발행한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mrschas/51

캐나다에 갔을 때 팔찌를 잃어버렸다가 길바닥에서 되찾은 적이 있다. 그 팔찌는 박살이 나 있었다. 그렇게 쓸모없는 상태로 되찾았다.


그 후에 큰맘 먹고 마련했던  팔찌도 잃어버렸다. 그런데 팔찌가 없어졌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지내다가 우연한 기회로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금도 그 팔찌의 행방을 모른다. 우리 집 어느 구석에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집 밖 어느 곳에서 떨어뜨렸을 것이고...


다시는 팔찌를 새로 사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냥 있는 것이나 차고 다닐 생각이었다. 그런데 팔찌 끼지 않으면 허전하고 액세서리 팔찌를 하자니 거추장스러웠다. 그래서 생각해 낸 아이디어가 가느다란 '줄 목걸이'로 팔찌를 대신하는 것이었다.



 그 목걸이 P가 내게 준 것이다.


어느 날이었다.

"그 목걸이 가느다랗고 깜찍하네요."

"그래요? 저는 가느다란 목걸이는 싫어요."

"저는 굵은 목걸이가 싫던데요. 순금이나 18K보다는 14K가 좋고요."

"그러면 사모님 이거 쓰세요."


20년 전에 P가 그렇게 내게 건네준 목걸이다. 그리 비싼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를 그냥 끌러서 내게 전달해 준 p였다. 우리는 참 잘 지내는 사이였고 나는 P를 아끼고 좋아했었다. P는 우리 교회에 출석하다가 마음 상하는 일이 있어서 교회에 나오지 않은 지 오래됐다. 그래도 간간이 서로 연락을 하거나 식사를 하기도 하는 사이다. 나는 P를 교회에서 다시 교제하고 지내고 싶은 마음이 늘 간절했다.


P가 준 목걸이를 팔찌 대용으로 끼면 좋을 것 같았다. 목걸이를 몇 번 매듭지어 내 손목 사이즈에 맞도록 하여 두 번 감으니 팔찌처럼 보였다.


 그 팔찌를 쳐다볼 때마다 P를 생각하며 그를 위해 기도했다. 그 목걸이는 나와 P의 연결고리였다. 값을 떠나서 P를 생각나게 해주는 소중한 것이었다.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그런 팔찌가 아니라 내게는 의미가 부여된 그 팔찌다. 그것을 못 찾는다면 두고두고 맘이 찝찝할 것 같았다. 그래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서 팔찌를  어떻게 한 것인가를 알아내고 싶었다.


 한참만에 그 팔찌를 떨어뜨렸던 순간을 기억해 냈다.


'맞다. 그랬다.'


출근을 하지 않는 토요일이었다. 투병 중인 아들에게 드레싱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팔찌 고리가 어딘가에 살짝 부딪히면서 팔찌가 주르륵 바닥에 떨어졌다. 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었고 일단 그것을 얼른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것까지는 또렷이 기억이 난다. 그런데 웃옷 주머니였는지 바지 주머니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게다가 며칠 전에 철 지난 옷을 한꺼번에 세탁을 했었다. 맘이 불길했다. 아무래도 그 팔찌도 함께 세탁을 해버렸을 것 같았다.


나는 얼른 드레스 룸 가서  모든 웃옷의 주머니를 다 뒤져보았다. 없었다. 자주 입는 바지 주머니를 죄다 뒤져봤다. 거기도 없었다. 도대체 그 팔찌는 어디로 갔을까? 세탁기 호스를 따라 하수구를 통해 이미 벌써 먼바다로 가버렸을까?



이곳저곳을 뒤지면서 팔찌를 찾고 있는 내가 참 한심스러웠다.


'그 누구도 내게는 팔찌를 사 주지 마세요. 500만 원짜리든, 100만 원짜리든... 는 내게 개발에 편자입니다.'


이런 생각이 확 들었다. 세 번씩이나 팔찌를 잃어버렸으니 다시는 값진 팔찌를 낄 자격이 삼진 아웃된 셈이다. 누가 선물로 팔찌를 준다 해도 마다해야겠다.


팔찌를 잃었다는 실망감에 시무룩해져 소파에 앉았다. 그런데 바지 뒷주머니에 손을 넣어보고 싶었다. 집에서 주로 입는 고무줄 바지였다. 뒷주머니에 손을 넣어 봤다. 있었다. 그 팔찌가... 그곳에.


그날은 토요일이라 집에서 입는 바지를 입은 채로 아들에게 가서 드레싱을 했던 것이다.  바지 호주머니에 팔찌를 넣어두고는 까맣게 잊고 지냈던 것이다. 어이구, 내가 못살아~




오늘 아침 복도에 반짝거리는 것이 눈에 띄었다. 목걸이 메달이었다. 누군가 이 예쁜 고리를 잃어버리고 속이 상했을 것이다. 자책하고 얼마나 찾고 또 찾으려나? 그래서 살며시 주워 잡동사니 넣는 통에 챙겨두었다. 그것이 백금이 다이아일 수도 있겠지만 한 낱 액세서리일 확률이 높다.  값의 고하를 막론하고 누군가에게 소중한 것일지도 모른다.

[복도에서 주운 목걸이 메달]

[닥터 차정숙]이라는 드라마는 내게 팔찌 해프닝을 선물했다. 그 드라마 때문에 영영 생각하지 않고 지낼 뻔했던 P의 목걸이를 되찾았다.


            


이렇게 건망증이 심해지는 나 자신이 점점 걱정된다. 정신줄을 꼭꼭 묶어둘 수 있는 방법을 ChatGPT나 Edge Bing에게 물어보면 어떤 대답을 해줄까?


Bing 전해주는 정신줄 붙들어 두는 법:

두뇌를 꾸준히 자극하거나, TV 시청 스마트폰사용 줄이기, 가벼운 운동 자주 하기, 스트레스 해소하기 등으로 건망증의 증상이 많이 좋아질 수 있다. 두뇌를 꾸준히 자극할 때 앞쪽 뇌를 자극하는 것이 특히 중요합니다.


[커버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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