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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Apr 22. 2023

어쩌다 '꽃집사'

'뿌리내리기'에 집착하는 중입니다

유년 시절에 그 좁디좁은 골목의 돌틈 사이를 비집고 올라와서 노란 꽃을 피웠던 민들레를 본 적이 있다. 동네 앞 논두렁에 부끄럽게 올라와서 보랏빛으로 피어났던 오랑캐 꽃을 본 적도 있다. 마을 어귀에 있던 두레박 우물 샘 가에 피어있던 살구꽃도 예뻤다. 자운영꽃이나 온산에 흐드러지게 피었던 진달래며 개나리를 보면 그냥 신이 나고 행복한 적이 있었다.


꽃이 좋았다. 그냥 좋았다.

후남이네 재실에 있던 수국도 좋았고 윤옥이네 담장에서 보았던 해바라기며 맨드라미도 예뻤다. 꽃이 있는 집은 일단 부러웠다. 나도 꽃을 가꾸고 싶었다.

우리 집에도 꽃을 심어보고 싶었다. 우리 골목에도 채송화, 봉숭아꽃이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며 자랐다. 어느 날 내 마음을 내보였더니 어머니는,


"니 콧구멍에나 심어라. 코딱지 만한 집에 꽃을 어디다 심겠노?"라고 단박에 거절하셨다.


어머니는 MBTI검사를 한다면 F는 0% 나올 분이다. 감성 제로인 분이다. 어린 내가 꽃 한 송이만 길러보고 싶다고 했지만 단 한 번도, 


"그래? 그렇구나."


라고 내 맘을 읽어주지 않으셨다. 그 후로 나는 꽃을 멀리 했다. 꽃은 내 차지가 아니라고 인식을 했던 것 같다. 



아들이 사고를 당하여 누워버린 이후에 내 맘을 잡기가 참 힘들었다. 영화를 봐도 내용이 들어오지 않았고 TV를 볼 수도 없었다. 책은 아예 읽을 맘조차 들지 않았다. 그즈음에 병문안 왔던 지인이 '장미 허브'를 사들고 온 적이 있다. 그 향을 맡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때부터 조금씩 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요즘은 반려 식물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꽃을 보며 내 마음을 조금씩 다잡아갔다.



어느 날 장미 허브 대궁이 하나가 똑딱 떨어졌다. 

가야 할 때가 아닌데 부러진 그 녀석을 꼭 살리고 싶었다. 그래서 병뚜껑에 물을 조금 붓고 가만히 놓아두니 실뿌리가 생겼다. 신기하고 기특했다. 그 뿌리가 어느 정도 자랐을 때 작은 화분에 옮겨 심었다. 금방 흙내음을 맡고 잘 자라기 시작했다. 미세한 관심에 뿌리가 뻗고 새로이 기운을 차리는 장미 허브를 보면 자꾸만 내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다. 내 마음을 보낼 곳을 찾게 되었다. 사랑할 곳이 생겼다. 조금씩 맘이 안정되었다. 이제 청청해진 장미 허브는 손을 닿기만 해도 향긋한 향을 날려준다.


[나의 사랑, 장미 허브]


이제 '뿌리내리기'가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꽃기린도 가지를 잘라서 물에 꽂아 두면 뿌리를 잘 내린다.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생명의 연장이며 생명의 아우성이라고 생각한다.

[꽃기린을 꺾어서 수경으로 뿌리내리기를 한 후에 심으면 잘 자란다.]


거실에서 기르던 해피트리가 베란다로 나간 후에 이파리가 마르고 화상을 입은 듯이 상태가 몹시 좋지 않았다. 그래서 거실 버티컬을 약간 닫아 주고 적당한 햇빛을 쬐어주었더니 고맙게도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보기 힘들다는 해피트리 꽃이 지난해에 이어 올 해도 방긋 웃는 듯이 피었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꽃을 가꾸며 쏠쏠한 재미를 느끼고 있다.

[조용히 꽃을 피운 해피 트리]

가장 큰 기쁨을 안겨 준 꽃은 호야다. 호야 가지를 꺾어 수경으로 뿌리내리기를 했다. 그것을 화분에 옮겨 심어 놓고 무심히 두었더니 지난해에 호야꽃이 한 송이 가득 피어났다. 호야꽃을 피워본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나도 호야꽃이 있는 줄도 몰랐다. 난생처음 호야꽃을 봤다. 우리 집에서 꽃을 피운 호야꽃처럼 나도 활짝 웃고 싶었다. 올해는 호야꽃이 네 송이나 피었다. 그래서 호야 뿌리내리기를 여러 군데 하고 있다. 몇 년 후면 곳곳에 웃음 닮은 호야꽃이 군데군데 피어날 것이다. 꽃이 피는 호야 화분을 하나씩 누군가에게 선물할 예정이다. 

[작은 가지에 뿌리가 내려서 어느 날 이렇게 예쁜 호야꽃을 피울 것이다. 이것은 희망이고 꿈이며 사랑이다.]


지난해 한 지인이 고구마를 한 박스 보내왔다. 고구마 하나를 빈 병에 물을 채우고 꽂았다. 곧바로 뿌리가 나오더니 우후죽순처럼 잘 자랐다. 그 줄기 하나를 따서 다른 물병에 꽂았다. 고구마 순은 하룻 밤새 하얀 뿌리를 쫙 뻗는다. 변화가 신기했다. 뿌리인 고구마가 또 다른 실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겨우내 고구마 순 기르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고구마 순은 금방 잔뿌리를 내린다.]


우리 집에는 새끼에 새끼를 치듯이 가지를 꺾꽂이하여 물병에서 뿌리를 내려 태어난 것들이 많다. 


군자란은 한 화분에 있던 것을 다섯 개의 화분에 나누어 분갈이를 했더니 꽃필 때가 되면 시차를 두고 차근차근 꽃이 피어 오래도록 군자란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게발선인장은 수경을 거치지 않고 그냥 빈 화분에 무심히 꽂아만 두어도 잘 자란다. 


다 죽어가던 딸기도 무심한 듯, 세심한 듯 길렀더니 다시 살아났다.


"사모님네만 오면 꽃들이 살아나네요." 지인들이 말했다.

"꽃은 무관심한 듯하면서도 늘 관심을 가져주면 잘 되더라고요." 나는 내가 꽃을 키우기는 나름의 철학을 말했다.


그랬다. 꽃은 그랬다. 사람도 그럴 것 같다. 무관심한 듯하면서 늘 관심을 준다면 사람들도 행복해할 것 같다. 꽃처럼.


게발 선인장/ 군자란/ 딸기꽃
[국화 꺾꽂이]

국화 화분의 흙이 문제였는지? 선물 받은 국화가 이내 죽어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 가지 꺾어서 물에 담가두었다. 화분에 있던 국화는 죽어버렸지만 물에 꽂은 국화 가지에서는 꽃이 피었다. 그 감동은 상상 이상이다. 그래서 시를 썼던 적이 있다.


국화, 너~


매. 란. 국. 죽. 

고고한 반열도 아닌 


봄부터 소쩍새 울어 

피운 꽃도 아닌 


소박맞은 듯

이름 없이 스러지던 

널 


한 가지 꺾어 꽂은

그 희망에서 

뿌리가 나고

진주보다 더 고운

송이로 핀 

국화, 너! 


작아도 클라이막스 미소로

우리 곁에 피어있는

국화, 너!    

   

시작노트:  죽어가던  국화 가지를 꺾꽂이하고 기다린 보람에 뿌리가 나고 꽃이 피었다.

                 1%의 희망에 박수 ~(21.12.17.



[스킨답서스: 화분은 굳이 사지 않아도 된다. 플라스틱 통 밑바닥에 구멍을 내고 활용하면 그저 그만이다.]

스킨답서스는 아주 잘 자란다. 그래서 물에 꽂아 두면 서서히 넝쿨을 뻗어나가기 시작한다. 지난겨울에 기르기 시작한 스킨답서스 꺾꽂이는 천장에 닿아서 벽을 타고 다니게 할 때까지 잘 기를 예정이다. 그것이 스킨답서스 양육에 대한 나의 큰 그림이며 계획이다.


고양이를 거두는 사람을 '냥집사'라고 했던가? 아무래도 나는 '꽃집사'가 되려나 보다. 뿌리내리기에 집착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생명에 대한 관심이며 삶에 대한 사랑일 것 같다. 꽃을 사랑하게 되면서부터 자꾸 사람에게도 깊은 관심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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