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대학 시절에 읊조리곤 했던 시가 있다. 이형기의 '낙화'다. 올 해는 유난히 꽃이 흐드러졌다. 학교 울타리에서 보는 마지막 봄이라는 생각이 확 다가왔다. '나의 사랑, 나의 결별'이라는 시 구절이 가슴에 확 와서 꽂힌다.
"아, 영어 수업 시간 너무 재미있다."
수업을 끝내고 교탁을 정리하는데 앞에 앉은 남학생이 옆에 있는 친구에게 하는 말이다. 이 나이에 저런 소리를 엿들을 수 있는 감동을 누가 알랴? 오늘도 내 수업은 괜찮았나 보다. 학생들이 싫어하는 문법 부분을 PPT를 통하여 잘 디자인한 수업이었다. 순번대로 돌아가며 그 개념을 이해하고 있는지 묻고 답하는 방식의 수업이었다. 어떤 학생이 답을 못하고 머뭇거리면 학급 전체가 숨을 죽이고 기다려주는 모습이 참 고맙다. 자신은 그 개념을 다 알고 있는데도 친구가 이해를 못 하면 헛기침을 해대며 힌트를 주려고 애쓰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기특하다. 그렇게 하는 동안에 긴가 민가 알고 있었던 학생도 제대로 개념을 익히게 된다.
한 시간 내내 긴장감은 맴돌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고 마침내 이해하고 바른 답을 하는 친구에게 큰소리로 칭찬하며 박수를 쳐준다. 응원하고 응원을 받은 기억은 그들 인생 내내 든든한 자양분이 될 것 같다.
학생들은 이번 학기가 끝나면 내가 교직을 떠난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을 것이다.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는 줄은 알 턱이 없을 것이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이 구절을 맘속으로 외치며 교문을 떠나야 한다. 창가에 아침저녁으로 살펴보던 화초와도 결별이다. 교정 울타리에 화들짝 피어날 덩굴장미와도 안녕을 고해야 한다. 학교 뒤편의 '꽃마루'도 이제 이별이다.
학교를 떠나면 나는 퍼스널 브랜딩*을 꿈꾸리라!
그래서 퇴임 이후에 해볼 만한 일을 생각해 보았다. 적어도 10년 정도는 무엇인가를 하며 지내야 할 것 같다.
- 먼저, 아들을 돌보는 일은 빼놓을 수 없다. 11년째 병상에 있는 아들의 곁은 떠날 수가 없다. 마치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단 듯한 우리의 삶이다. 누가 뭐라 해도 최우선으로 아들을 챙기는 일을 해야 한다.
- 다음은 교회 '사모'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아무래도 직장에 다닐 때보다 교회를 더 잘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작은 교회에 매일 매 순간 사모의 일손이 필요하지는 않다.
- 동생이 카페 2호점을 내 줄수도 있다고 넌지시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것은 내가 싫다. 몸이 매여있어야 할 것 같고 경영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일 것 같다.
- 이건 어떨까? 2년 전에 세컨 하우스를 장만하여 이사를 할 때 이삿짐센터 사장이 나를 찜했다. 이삿짐 차에 따라다니며 일하면 딱이라는 말을 했었다. 그렇지만 잠시 우리 집 이사에 머리를 쓰고 일손을 돕는 일이라 기꺼이 했지만 내가 이삿짐센터의 도우미로 나갈 것은 아니라고 본다.
- 그렇다면 결혼 7년 차인 딸에게, 내가 손주를 봐줄 테니 아기를 낳으라고 해볼까? 그것도 참 부담되는 일일 것 같다.
- 지금 살고 있는 세컨 하우스 옆 건물이 청소년 수련관이다. 그곳에서 주간 2-3회 '성인반 영어 교실'을 개설해 볼까나? 그런데 가르치는 일은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입주 과외를 했던 내가 아니던가?
- 2권의 책을 출간한 적이 있고 지금도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고 있으니 전업 작가로 살아볼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요즘 브런치에 올라오는 글을 읽어보면 모두 글을 너무 잘 쓴다. 나는 그분들한테 쨉이 되지 않는 듯하다. 좋은 글은 내가 아니어도 많은 분들이 매일매일 쏟아낸다.
- 퇴임한 교사들의 고민 중에 하나는 의료 보험료가 많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도 4대 보험을 들어주는 어떤 직장을 가져야 하나? 이제 더 이상 매여서 직장 생활하는 것은 손사래를 치며 고사하고 싶다. 그렇다고 아들을 돌보아 주러 오는 활동보조사들처럼 내가 그 자격증을 따서 다른 환자를 돌 볼 자신은 없다. 활동보조사들은 4대 보험 가입이 된다고 한다.
- 어느 정도 지내보다가 혹시 의료 보험료가 부담으로 느껴진다면 대구에서 사업을 하는 동생의 회사에 취직을 할까 하는 생각도 한다. 여행 삼아 매주 KTX를 타고 가서 컴퓨터 작업을 도와주면 될 것 같다. 하다 못해 동생의 아들이 경영하는 베이커리 카페의 캐쉬어를 해도 주 15시간 근무는 가능할 것 같다. 그 정도 근무하면 4대 보험 가입이 가능하다고 들은 적이 있다.
이번 학기 동안 학교 생활에 매진하고 여름 방학이 되면 나의 '퍼스널 브랜딩'을 향하여 10년 대계를 꿈꾸리라.
* 퍼스널 브랜딩:('ChatGPT'보다 더 유용하다는 'Edge' 브라우저의 'Bing'에게 불어봄) 퍼스널 브랜딩은 '나'를 브랜딩 하는 것을 말합니다. 특정 분야에서 자신을 브랜딩해 나를 떠올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주목적입니다. 한 개인이 가진 특색을 브랜드화하여 다른 사람들이 차별화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일련의 행위와 노력을 말합니다. 이때 브랜드화할 수 있는 특색으로는 개인의 가치관, 비전, 장점, 매력, 재능 등이 있습니다.
ps: 이 글을 발행한 이후에 추가하고 싶은 내용이 있어서 보태어 씁니다.
- 교사들은 교과를 가르치는 일 외에 매년 다양한 업무를 분장받게 되는데 내리달이 3년간 도서관 업무를 맡은 적이 있다.
"샘은 나중에 퇴임하면 '도서관 사서' 하시면 되겠어요."
그때 이런 말을 심심찮게 들었다. 맞다. 퇴임 후에 도서관 사서를 할 수도 있겠다. 책을 구매하는 일, 장서에 책을 배치하는 일, 책을 대출해 주고 반납 처리 하는 등의 일을 무난히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