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오늘쯤 많은 사람들이 휴가를 떠났을 것이다. (7/28, 금)
예전에는 7말 8초가 휴가철의 절정이었다. 마치 명절 때처럼 고속도로 휴게소는 발 디딜 틈이 없지 않았던가?
그러나 요즘은 자신의 스케줄에 맞추어 휴가를 잡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구태여 7말 8초 타이밍에 연연하지 않는 듯하다. 그래서 우리도 다소 한산할 듯한 8월 7일에 1박 2일, 스몰 여행을 예약해 두었다.
오늘은 최근 들어 가장 여유로운 날이었다. 오전에 냉장고 속을 정리한 후 본가에 있는 아들에게로 가서 병시중을 했다. 오랜만에 오후에는 딱히 예정된 일이 없었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 그냥 내 맘대로 쉬면 된다고 생각하니 참 좋았다. 이제야 진정한 방학을 맞이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폭염에 교통 정체를 겪으며 휴가의 길에 오르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여러 번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나의 브런치 글에 '라이킷'을 누르는 소리도 있고 폭염 주의를 알리는 재난 안전 문자도 있었다. 폭염 경보 문자의 당부에 따라 야외 활동을 자제하고 에어컨 빵빵 켠 거실에서 딩가딩가 쉬어 볼 참이었다.
[폭염 주의보 재난 문자 알림] 내 글에 라이킷을 누른 작가의 프로필을 눌러 그분들의 글을 읽어보는 습관이 있다. 맞 라이킷을 하면 빚진 기분이 덜 들었다. '서로 좋아해 주기'다.
그래서 알림이 온 '포레스임' 작가님 글마당에 놀러 가 봤다. 글을 한 편 읽었다. 어라, 확 빨려 들어갔다. 나는 포레스임 작가님의 세계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글도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세계관이 궁금했다. 포레스임 작가님의 프로필 화면에 있는 '작품'을 눌러봤다. <내 숨결의 습작>이라는 매거진이 눈에 띄었다. 작가님의 작품 4개 중에서 그 매거진부터 읽기로 했다.
브런치의 매거진에는 오른쪽 상단에 '첫 화부터/ 최신 순'이라는 양자택일의 버튼이 있다. 첫 화부터 읽어 가는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내 숨결의 습작 매거진 (brunch.co.kr)
[포레스임 매거진]
지금껏 브런치에서 이렇게 빨려 들어가며 글을 읽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오늘 하루 포레스임 작가님의 글을 모두 다 읽어 재껴야겠다. 이게 7말 8초 피서다. '
라고 생각하며 글을 읽다가 남편에게 그 매거진 링크를 공유했다. 누군가의 글을 남편에게 공유해 본 적은 처음이었다. 혼자 읽기가 아까웠다. 남편은 이 매거진을 읽고 어떤 리뷰를 말해주려나?
"거봐, 이런 거야. 글은 이렇게 써야 한다고. 독자가 온통 글 속에 빠져들잖아..."
아무래도 남편은 이렇게 말할 것만 같았다.
시원한 거실, 편백 소파에 드러누워 글을 읽기 시작했다. 피서가 따로 없었다. 이렇게 누워 딩가딩가 하며 재미있는 브런치 글을 읽고 있으니 부러울 게 없었다.
거실에서 브런치 글을 읽는 것도 하나의 피서라고 생각하니 오래전에 떠났던 피서 여행이 생각났다.
소설책 제목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처럼 그 해 여름이 오래 그곳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니... 그때의 일이 몽글몽글 떠올랐다.
참 오래전이었다. 40년쯤 전이다.
신혼 때 가야산 홍류동 계곡에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보냈던 적이 있다. 그 해도 무척 더웠다. 그런데 그날 밤, 계곡 물소리가 어찌나 시끄럽던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학창 시절에 배웠던 박지원의 '열하일기' 중 <산장 잡기>에 수록되었다는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를 떠올렸다. 시냇물 소리를 통하여 감각기관과 마음의 상관관계를 설명한 글이었던 것 같다.
시끄러운 계곡 물소리 때문에 홍류동에서 홀딱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시끄러운 물소리를 한 낱 물소리로 들었던 젊은 날이었다.
지금 다시 그곳에 가본다면 어떨까? 계곡 물소리를 수면 음악인 브레그만 음악처럼 들을 수 있을까? 성난 파도 같기도 하고 말발굽 소리도 같았던 그 소리를 듣고도 세상 풍파 시끄러운 소리 다 들어봤으니 이쯤이야 하고 푹잠을 잘 수 있을까?
그런 생각에 잠겨 잠시 글 읽기를 멈추고 살아온 뒤안길을 맘 속으로 훑어보았다. 하룻밤 꿈같은 세월이었다. 지난했던 내 삶이 남루하게 느껴졌다. 애쓰고 올인했던 것들이 물거품같이 여겨졌다.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 사전- 일야구도하기 내용] ->->->->->
그 매거진의 글 중에서 '중계동 아이들 (3)화'까지 읽었다.
그 글에서 어린 시절 작가님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었다. 동네 친구 호야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동화 같은 에세이의 매력에 푹 빠졌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 투비컨티뉴드!
작가님의 글을 읽는 도중에 낄낄대고 웃다가 눈물이 핑그르르 돌기도 했다. 그야말로 독자를 들었다 놨다 했다. 감동을 받은 글에는 댓글을 달았더니 실시간으로 작가님이 답글을 다셨다. 종이로 출간된 책이었다면 작가와 실시간으로 소통이 가능했을까? 브런치의 또 다른 매력이었다.
브런치 글을 읽고 라이킷을 누르기는 했지만 댓글까지 다는 일은 거의 없었다. 댓글을 달고 답글을 받으니 묘미가 있었다. 작가님의 글이 감동이 되어 그러기도 했겠지만 나의 오후가 한가해서 그런 여유를 부렸는지도 모른다.
23년 7말 8초 휴가철 피크에 포레스임 작가님의 글마당에서 잘 쉬고 있다. 작가님이 발행한 글을 몽땅 다 읽고 나면 폭염이 기세가 꺾이겠지. 희한한 피서를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