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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Aug 19. 2023

남편을 엉엉 울리기는커녕

 저도 울지 못했습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는 마트에 갔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마트에 발길을 끊고 살았다. 주로 새벽 배송으로 먹거리를 해결했다. 생필품 대부분을 택배로 주문했다. 배송완료 알림을 받은 후 현관문 열고 물품을 들여놓기만 하면 그만이라 만사 편리했다.


서서히 코로나가 잠잠해지면서 세컨 하우스 근처에 있는 재래시장에서 먹거리를 구입하고 있다.


그날은 통밀빵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을 참이었다. 아뿔싸, 드레싱 소스와 케첩이 바닥난 것을 미처 챙기지 못했다. 그래서 그걸 사러 마트에 갔다. 오랜만에 들린 마트는 뭔지 생소하고 어색했다. 낯선 나라에 온 듯했다. 주섬주섬 몇 가지를 골라 계산대 앞에 섰다.


"휴대폰 뒷자리 번호와 성함을 말씀해 주세요."

마트 직원은 바코드 찍으며 게 물었다. 포인트를 적립하는 것이다. 


'뭐더라?'


0.1초 동안 나는 멍했다. 아니, 당황했다. 내 번호가 아닌 남편의 것을 말해야 했다. 남편이 그 마트에  폰 번호를 등록해 두었기 때문이다. 내가 남편의 폰 번호를 기억할 일은 거의 없다.


"0427, 임 ㅇㅇ!"


계산원이 나를 홱 쳐다보았다. 


'어이쿠, 아닌가 보다.'


"아닌가? 아참, '0426'이요. 남편의 번호라 제가 잠깐 헷갈렸네요."

"남편 폰 번호도 못 외우세요? 순간 기억이 나지 않으셨나 보다."

 

계산원은 이해가 안 된다는 어투로 말했다. 


사실 남편의 이전 폰 번호 뒷자리가 '0427'이었다. 그 번호를 사용하던 때는 벌써 십수 년 전이다.

순간적으로 장기 기억 속에 있던 남편의 휴대폰 번호가 먼저 튀어나온 것이었다.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걱정이 약간 됐다. 기억을 잃게 되면 어쩌지?


그런 생각을 하니 <<그대 어이 가리>>라는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브친' 유미래 작가님의 브런치 글, '남편이 펑펑 울었습니다'라는 글을 읽고 그 영화를 알게 됐다.


https://brunch.co.kr/@ce3179a175d043c/452


기억을 상실하는 병에 걸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종종 했었다. 한 사람의 기억 상실로 온 가족 모두 힘들어지는 경우를 심심찮게 보지 않았던가?


그래서 <<그대 어이 가리>>라는 영화를 보고 싶었다.




그 영화를 함께 보면서 남편을 펑펑 울리고 싶었다. 그리고 나도 함께 목놓아 울어보고 싶었다. 


우리의 11년은 안개 속이었다. 

파릇했던 스물세 살의 아들이 하루아침에 사고를 당했다. '세미 코마' 상태가 되어 침상에 누워 있으니 우리의 속은 숯검댕이처럼 바싹 타고 있다. 

마치 터널 속에 갇혀 지낸 듯한 시간이었다. 아예 엉엉 울고 싶을 때가 더러 있었다. 


물론 남편은 아들의 사고 이후에 석 달 동안은 눈물로 시간을 보냈다.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물이 새듯이 남편의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남편은 아들이 당한 사고의  충격으로 세 번이나 정신을 잃기도 했다. 


나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서너 번 통곡하며 운 적은 있다. 

그러나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마라톤 같은 이 간병의 시간을 만만디로 보내야 한다는 것을 자각했다. 다급하면 지칠 것 같았다. 


울며 지낼 수만은 없어서 농담도 해가며 중증환자 아들을 품은 채로 지내오고 있다. 차라리 그게 한결 나았다. 그러나 때때로 답답한 가슴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아무 차도가 없는 정체기간을 11년 동안 보낸 다는 것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한계점 밖의 일이었다. 벽 앞에 서서 메아리 없는 대화를 하는 것은 고역 중에 고역이었다. 그것도 자식이 눈앞에 있는데 자식이 없다고 간주해야 하는 고통은 글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 그냥  한 번 엉엉 울면 좀 낫지 않을까? 영화를 핑계 삼아 펑펑 울고 싶었다.




유미래 작가님은 3,850원을 주고 그 영화의  VOD를 보셨다고 했다.

그런데 왠지 무료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검색해 보니 '왓차'에서 시청 가능한 듯했다. 


<파친코>를 보겠다고 애플티비를 깐 적이 있다. 또 뭔가를 본다고 웨이브를 다운로드하였다. 앱 깔다가 세월이 다 갈 판이다. 뭘 보겠다고 그때마다 새로운 앱을 까는 일을 이제는 멈춰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왓차를 깔지 않고 다른 방법을 모색해 보기로 했다.


먼저 넥플릭스와 티빙에서 검색해 보니 그 영화를 찾을 수 없었다. Btv에서도 시청할 수 없었다. 할 수 없다. 결국 유료 시청을 하기로 했다. 유료 시청 가능한 곳이 몇 군데 있었다. '유튜브 무비'나 '구글 플레이 무비'등에서 시청 가능했다. 영화료는 2,500원이었다. 


남편이 내 손에 쥐어놓은 것은 남편 명의의 카드다. 그것으로 결제했더니 본인이 아니라서 결제 불가능하다는 팝업 멘트가 떴다. 


'쉬운 게 하나도 없네.'


투덜거리며 남편에게 가서 내 명의의 카드를 받았다.


"뭣하려고?"

"영화 하나 보려고요."

"..."


남편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래? 뭔데? 나도 같이 볼까?'


남편이 이렇게 말할 줄 알았는데...




내 명의로 된 카드로 2,500원을 결제하여 영화를 다운 받았다.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를 읽는 기분이었다. 어릴 때 많이 보았던 초상집 풍경, 만가 소리 등을 책 읽듯이 잔잔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내 저녁 시간이 되어 잠시 영화 보던 것을 멈추었다.


저녁 식사 후에 영화를 계속해서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남편이 옆에서 리모컨을 집어 드는가 싶더니 TV를 켜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내가 영화를 보고 있는 바로 옆에서...


'다 틀렸다.'


남편을 엉엉 울리고 싶었는데... 그리고 나도 함께 울어보고 싶었는데...


남편은, 오래전에 방영되었을 법한 '광개토 대왕'이라는 사극을 보다가 잠시 광고가 나오면 채널을 검색해서 '천일 야사'를 보기도 했다. 나는 사극을 본 기억이 없을 정도다. 게다가 '천일 야사'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남편은 그런 것이 재미있는 모양이다. 때로 남편은 중국 드라마도 보곤 한다. 나랑은 취향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내가 노트북으로 <<그대 어이 가리>>를 보고 있는데 그 사극 드라마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말발굽 소리, 싸움하는 소리, 때로는 우는 소리가 귀에 거슬려 영화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남편이 티브이를 자주 보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식사 후에 잠시 뉴스를 본다든가 실내 운동을 할 때 사극을 보는 정도다. 하필 그 시간이 서로 겹쳤다. 


'망했다.'


나는 노트북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뭔가 속이 상한 기분으로 방에 들어갔더니 내용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을뿐더러 감정이입도 되지 않았다.


딸이 몇 번 했던 말이 생각났다.


"엄마는 드라마를 정주행 하거나 영화를 볼 때 다른 일은 하지 말고 화면에만 집중하세요. 대사를 놓치면 재미가 없어요. 장면을 꼼꼼하게 보지 않으면 클루를 놓쳐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요."


영화 보기가 끝났지만 내가 뭘 봤나 싶었다.


그날 우리 부부는 '한 몸 한 뜻'이 아니라 '다른 몸 다른 맘'이었다.




결국 남편도 울리지 못하고 나도 울지 못했다. 어차피 결제해 둔 영화이니 언제 날을 잡아서 다시 진중하게 그 영화를 집중해서 한 번 볼 참이다. 눈시울이라도 뜨거워지고 싶다. 잔잔하게라도 울어 보고 싶다.





영화  <<그대 어이 가리>>의 줄거리를 Chat AI Bing에게 부탁해 봤다.(그러므로 '스포'주의)


영화 <<그대 어이 가리>>는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부부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남편 동혁은 국악인으로 전국을 떠돌다가 아내 연희의 부탁에 고향에 정착하기로 합니다. 그러나 연희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고, 그녀의 기억은 점점 희미해져 갑니다.

동혁은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인 것처럼 느끼며, 연희를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연희는 동혁을 잊어버리고, 다른 남자와 함께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동혁은 연희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로 결심하고, 그녀를 데리고 그 남자가 있는 곳으로 떠납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연희는 행복하지 못하고, 동혁을 찾습니다.

동혁은 연희를 다시 안아주고, 그녀에게 판소리로 사랑을 고백합니다. 영화는 동혁과 연희가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영화 <<그대 어이 가리>>는 국제 영화제에서 51관왕을 수상한 작품으로, 우리 사회에서 점점 빈번해지는 '알츠하이머' 문제와 고령화 사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선동혁은 극 중 망인의 극락을 바라는 '만가(輓歌)' 등 여러 판소리를 직접 불렀다.



[대문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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