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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Aug 10. 2023

남편이 펑펑 울었습니다

영화 '그대 어이가리'를 관람하고


태풍 카눈이 온다고 해서 휴가를 취소하고 집콕 휴가를 즐기는 중이다. 에어컨이 있으니 하루 종일 시원하다. 집 밖은 무더위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집안에는 벌써 가을이 왔다. 어제가 입추라고 한다. 곧 집 밖에도 가을이 달려오길 기대해 본다.


어제는 남편은 그동안 미뤄두었던 치과에 다녀오고 나는 7개월 만에 펌을 하였다. 지난 12월 말 친정엄마와 새해맞이 펌을 하였었다. 펌과 염색을 하고 10년은 젊어진 것 같다던 친정엄마가 지금 옆에 안 계시다. 매우 그립다. 보통 늦어도 6개월 정도에 펌을 하는데 이번에는 늦어도 너무 늦게 였다. 큰 행사 하나를  치른 기분이다.


얼마 전 남편 친구가 감동적으로 보았다며 톡으로 영화 하나를 추천했다고 다. 영화 보는 내내 울었다고 다. 얼마나 슬픈 영화길래 남자분이 그 정도로 울었을까 궁금했다. 넷플릭스에서 검색했더니 없다. VOD로 3,850원을 지불하고 영화를 관람했다. 상영 시간이 120분이다.

 

제목에서 슬픔이 묻어났다. 이창열 감독님의 '그대 어이가리' 영화다. 제목을 보면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생각났다. 2023년 3월 8일에 개봉된 영화였다. 영화의 주제는 아내의 치매다. 고령사회로 들어가는 현실에서 모든 사람이 가장 걱정하는 주제이다. 나이 든 모든 사람의 바람이 치매에 걸리지 않는 것이다. 치매는 죽음의 병이라고 한다. 기억이 모두 사라지기 때문이다. 나도 가끔 깜빡하는 습관 때문에 작년에 뇌 MRI를 촬영하였다. 다행히 별 이상이 없었다.


영화는 1965년 가을, 동네 초상집에서 동혁 어머니가 곡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동혁을 비롯한 동혁 친구들이 초상집에서 엄마가 주는 음식을 받아먹는다. 어릴 때 동네 초상집 마당에 앉아있다가 음식을 받아먹었던 것이 생각난다. 화려한 상여가 나오고 만가를 부르는 소리가 슬프게 들리지 않았다. 나이 많으신 어르신 한 분이 수명이 다하여 하늘나라에 편히 가셨을 거로 생각했다.


이어서 동혁이 나이 들어 친구 장례식장에 조문 가는 담담한 모습이 나온다. 옛날 장례식과 요즘 장례식이 대비되었다. 급하게 딸 연락을 받고 서둘러 가는 동혁의 모습에서 뭔가 심각함을 느낄 수 있었다.


30년 넘게 국악인으로 전국을 떠돌던 동혁은 아내 연희부탁으로 고향에 정착하기로 한다. 행복한 전원생활도 잠시, 동혁은 연희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걸 깨닫는다. 아이가 먹던 막대 사탕을 빨아 먹고, 며칠 전에 알아보던 고향 후배도 몰라본다. 병원에서 치매 검사를 받고 연희가 치매임을 알게 되면서 동혁과 연희 생활은 걷잡을 수 없는 수렁에 빠진다.


혁은 아내 연희를 노 여사라고 부른다. 잘 돌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동혁도 딸도 사위도 지쳐간다. 오랜 병간호로 가족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동혁이 일을 못하게 되면서 의사인 사위와 딸이 경제적으로 지원을 하지만, 딸 부부 사이에도 갈등이 생긴다. 결국 요양원에 모시지만, 연희가 적응 못 하여 퇴소당하게 된다.


시 정신이 돌아왔을 때 연희가 한 말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나는 평생 예쁘게 살 줄 알았어.
엄마도
예쁜 꽃처럼 살다가 꽃상여 타고 예쁘게 가고 싶은데 이게 뭐야.
그냥 안락사시켜 줘!


내가 얼마나 자존심 강한 여자인데
예쁜 기억만 가지고 꽃처럼 갈 수 있게 해 줘.

나한테는 당신밖에 없잖아.



연희의 치매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냥 짐작해 본다. 아들 수찬이 죽은 후 방황하던 동혁이 바람을 피웠다. 치매의 원인이 아들의 죽음인지 남편의 바람인지 알 수 없지만, 이 두 가지가 연희를 힘들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결국 연희를 요양원에도 보낼 수 없어 동혁이 집에서 돌보게 된다. 점점 심해지는 연희를 보며 동혁은 연희를 보내 주기로 마음먹는다. 예쁘게 치장하여 사진을 찍고 호수에 가서 연희에게 먹을 것을 주고 만가를 불러준다. 동혁이 곧 따라간다고 했다. 영화에서 주인공 동혁이 국악을 직접 불러서 애절함을 더해주었다.


연희는 바람대로 꽃상여를 타고 갔다. 얼마 후에 동혁도 연희가 떠났던 호수에서 낚시하다가 연희 곁으로 따라갔다. 영화에서 대화가 많지 않았지만, 안타까움과 슬픔은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치매도 서서히 진행되는 것이 아니고 빨리 진행된다. 영화가 지루하지 않았다. 손을 서로 묶고 잠을 자는 모습이 마음 아팠다. 자개장이 보이는 방안 모습이 옛날 친정집을 생각나게 한다.


이 영화는 치매에 걸린 50대 후반 여자의 이야기라 더 슬펐다. 물론 정확한 나이는 언급되지 않았다. 치매에 걸리는 것은 나이와 상관없다. 영화를 보며 남편이 많이 울었다. 어쩜 연희를 나와 동일시하며 관람해서 그럴 거로 생각한다. 나도 울었다. 슬픈 영화 맞았다. 나는 마지막 떠나는 엄마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딸 수경을 보며 지난 2월 엄마와 작별하던 것이 생각나서 매우 슬펐다. 그렇지만 슬프기만 한 영화는 아니다.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며 영화가 아니고 한 가정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았다. 그만큼 배우들이 연기를 잘했다. 치매는 누구나 걸릴 수 있다. 그래도 치매는 안 걸리고 싶다. 부부는 서로 소중한 존재임을 영화를 보며 하게 느꼈다. 남편이 이제 더 잘할 것 같다. 치매에 관한 책을 몇 권 읽었지만 찾아서 다시 한번 읽어 봐야겠다. 예방할 수 있으면 예방하고 싶다. 저녁까지 계속 영화의 여운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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