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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Jun 30. 2023

깨진 모임 회비로 명품 버버리 코트를 샀다


오래된 모임이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셋째 주 월요일에 꼭 만났다. 회원은 아홉 명이다. 매달 회비 10만 원을 총무 통장으로 입금하였다. 회비가 모아지면 여행도 가고 반지도 사며 오랫동안 모임을 이어나갔다. 나이는 달랐지만, 최고 언니부터 막내까지 모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매번 아홉 명이 모두 나오진 않았지만, 못 만난 사람은 다음 달에 만나곤 하였다. 그저 얼굴 보는 것만으로 모두 행복했다. 경조사가 있으면 함께 하였고, 축하할 일이 있을 땐 함께 축하해 주었다. 함께 한 지 벌써 10년은 된 것 같다.     


코로나19로 잠시 만나지 못했지만, 작년부터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 한 분이 나오지 않았다. 모임에 못 나온다고 했단다. 우린 몰랐다. 총무만 알고 있었고 우린 잠시 사정이 있어서 못 나오는 거로 생각했다. 그러던 중 또 한 명이 당분간 지방에 내려가 지내게 되었다며 모임에 나오지 못하겠다고 했다. 일곱 명만 남았다.    

 

6월에도 일곱 명이 만났다. 저녁을 먹고 카페에 갔다. 가장 큰언니가 모임을 이어가야 할지 깰지 정해야 할 것 같다고 하신다. 모두 마음이 착잡했다. 10년이 넘도록 우정을 이어온 사이인데 이제 와서 모임을 해체시키는 것이 마음 아팠다. 하지만 함께 가면 좋은데 두 명을 모른 체하고 우리끼리 계속 만나는 것은 의미 없다는 생각이다.     


모임을 깼다. 모은 돈은 1/n로 나누어 통장으로 입금해 주기로 했다. 오랜 세월 함께 운동하며 친언니 친동생처럼 지냈는데 참 속상하다. 가끔 나보고 번개를 치면 모이겠다고 한다. 내가 가장 바쁜 사람이라 시간 있을 때 번개팅을 하자고 했다. 나도 번개를 칠 예정이지만 아홉 명이 다 모이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


회비가 통장에 입금되었다. 약 200만 원이다. 지난달 초등 여자 동창 모임에서 3년 동안 모은 돈을 입금해 주었다. 그때도 100만 원이 훨씬 넘었다. 그냥 통장에 넣고 쓰다 보니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다. 이번 회비는 그렇게 흐지부지 쓰고 싶지 않았다. 고민하다가 며칠 후에 내 생일이 있어서 나를 위해 쓰기로 했다.     


오래도록 모임을 기억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버버리 겨울 패딩 코트를 큰맘 먹고 샀다. 한 번 사면 10년은 입을 수 있다. 코트를 입을 때마다 모임의 언니 동생을 기억하게 될 거다. 조금 비싸다고 할 수 있지만 받은 회비로 충분히 살 수 있었다.     


나는 물건을 살 때 양보다 질을 우선한다. 조금 비싸도 좋은 것으로 산다. 꼭 명품을 사진 않지만, 가능하면 맘에 들고 좋은 것을 산다. 가전제품을 살 때도 가장 좋은 것을 산다. 그래야 오래 쓸 수 있다. 옷도 마음에 드는 것을 사야 아끼며 오래 입는다. 비싸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니기에 마음에 들면 지나가다가 옷가게에서 싼 것을 사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거다. 


버버리 패딩 코트는 실용적이라 겨울에 많이 입을 것 같다. 가볍지만 따뜻하다. 블랙이라 어떤 옷에도 잘 어울린다. 그냥 디자인도 무난하다. 잘 샀다. 퇴직하고 첫 번째 생일인데 출근하고 있어서 여행도 못 갔다. 여행 다녀온 셈 치면 된다.     


내 옷만 사서 남편에게 조금 미안했다. 한 달 이상 저녁마다 설거지도 해준 고마운 남편이다. 사고 싶은 것 있냐고 물으니 조금 밝은 색으로 여름 양복을 맞추고 싶다고 했다. 그동안은 기성복을 사서 조금 수선해 입었다. 배도 조금 나오고 표준체형이 아니기에 기성복이 잘 맞지 않는다. 마침 회사 앞에 양복점이 있다고 한다. 양복 한 벌 맞추어 주기로 했다. 남편은 주일날 교회에 갈 때 꼭 정장을 입고 간다. 1부 성가대 대장이고 3부 헌금위원이기 때문이다.

  

오늘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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