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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Jun 25. 2023

저녁마다 설거지하는 남자


5월 말부터 지금까지 저녁마다 설거지하는 남자가 있다. 벌써 한 달 정도 된다. 덩치도 큰데 고무장갑도 안 끼고 어찌나 오래 싱크대 앞에 서 있는지 모르겠다. 뽀드득뽀드득 소리 나게 깨끗하게 닦아서 가지런히 건조기에 세워 놓는다.     


4월부터 왼쪽 엄지손가락이 아팠다. 그냥 조금 지나면 괜찮겠지, 생각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1주일이 지나고 2주일이 지났는데도 좋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아픈 것 같아 5월 둘째 주에 정형외과를 방문했다. 정형외과에 가면 언제나 X-Ray를 먼저 찍는다. 그날따라 환자가 많아서 1시간 이상을 기다렸다가 의사 선생님 진료를 받았다. X-Ray 결과 관절염이라고 했다.     


그날부터 약을 먹고 물리치료를 시작하였다. 물리치료는 파라핀 치료와 레이저 치료이다. 1주일 후 다시 의사 선생님을 뵙고 왼쪽 엄지손가락 가까운 손등에 염증 주사를 맞았다. 너무 아팠다. 다시는 안 맞고 싶은 기분 나쁜 아픔이었다. 약을 먹고 파라핀 치료를 계속하였다. 주사를 맞은 후에 통증이 조금 덜해졌다. 전체 아픈 숫자가 10이라고 하면 3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아침저녁으로 약도 잘 챙겨 먹고 매일 한 번씩 파라핀 치료를 했다.     


남편이 선견지명이 있었는지 5월 초에 파라핀 치료기를 구입하였다. 남편도 오른손에 힘이 좀 없어서 젓가락질하기가 불편하다. 집에서 치료받아보려고 구입하였다고 한다. 남편은 음식점에 가면 꼭 나무젓가락을 달라고 해서 식사를 한다. 병원에 가보라고 해도 안 간다. 물론 예전에 서울대 병원까지 가서 진료받았지만 크게 달라진 것도 없고, 특별한 치료 방법도 없기에 그냥 병원 가도 소용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파라핀 치료기를 사고 열심히 치료할 줄 알았다. 남편은 사다 놓고 상자를 개봉하지도 않고 구석에 놓아두었다. 그럴 거면 왜 샀냐고 잔소리를 하였다.     


그러다가 내가 병원에서 파라핀 치료를 하게 되었다. 염증 주사를 맞은 후 집에 파라핀 치료기가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1주일 동안 약 먹고 치료는 집에서 하고 1주일 후에 병원에 오라고 했다. 남편이 사놓은 파라핀 치료기를 꺼내주었다. 파라핀을 넣고 전기를 연결하면 파라핀이 녹았다. 제품에 들어있는 파라핀 양이 적어서 파라핀이 손목까지 올라와야 하는데 겨우 손등을 덮을 정도였다. 파라핀 3개를 추가로 주문하였다. 남편이 정말 자상하게 챙겨준다.     


파라핀 치료를 한 후 1시간 동안 손을 씻지 말라고 했다. 저녁에 일을 다 끝내고 세수까지 하고 자기 전에 매일 파라핀 치료를 하였다. 조금 뜨겁지만 참을만하다. 주사를 맞아서인지 파라핀 치료 덕분인지 손가락이 조금 좋아진 것 같았다.     


고민하다가 2주 후에 염증 주사를 한 번 더 맞았다. 첫 번째 맞을 때보다 더 아팠다. 눈물이 찔끔 났다. 그런데 1주일 동안은 주사 맞기 전보다 더 아팠다. 괜히 맞았나 싶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좋아졌다. 너무 다행이다. 물론 치료도 치료지만 일상생활에서 손가락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왼쪽 엄지손가락을 여왕 모시듯 보호했다.     


5월 말부터 손가락 관절염으로 설거지를 하지 않았다. 설거지하려면 왼손 엄지손가락을 꼭 사용해야 한다. 아침은 간단하게 먹고 점심은 직장에서 먹기에 저녁만 함께 먹는다. 저녁 준비도 남편이 많이 해 주었다. 요즘 남편 별명이 서 세프다. 텔레비전에서 요리 프로그램을 자주 보더니, 요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본인이 응용을 잘한다며 괜찮은 요리를 뚝딱 만들어 내놓았다. 사실 요즘 우리 집 냉동실에 홈쇼핑에서 주문한 상품이 쌓이고 있다. 남편이 홈쇼핑을 보다가 맛있어 보이면 주문하기 때문이다.    

 

저녁 식사도 남편이 퇴근하면 같이 준비한다. 나는 주로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꺼내 상을 차리고 메인 요리는 남편이 주로 만든다. 냉동실에 있는 떡갈비도 굽고 부대찌개도 끓인다. 간단하게 고기를 구워 먹기도 하고 두부를 구워 두부김치도 해 먹는다. 저녁을 먹은 후에 뒷정리하고 난 후에 설거지는 매일 남편이 한다.     


저녁 먹고 가장 하기 싫은 게 설거지인데 한 달 이상을 남편이 설거지해 주었다. 처음에는 너무 편하고 좋았는데 요즘 미안한 생각이 든다. 어제는

"고마워요. 6월까지만 하면 7월부터는 내가 할게요."

라고 말했다.


요즘 손가락이 많이 좋아졌다. 물론 완전하게 나은 것은 아니지만 설거지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무리하면 다시 나빠질 수 있어서 평소에 가능하면 왼쪽 엄지손가락 사용을 조심해야 한다. 어쩌면 앞으로 계속 치료하고 조심하며 살아야 할 수도 있다. 그래도 7월부터는 저녁 설거지는 내가 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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