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은 영어 수업 시간에 거의 말이 없다. 그녀는 대체로 조용했다. 그러나 자기 몫을 잘 해냈다. 자기 차례가 되면 영어를 잘 읽었다. 발음도 똑똑하고 유창했으며 과제 발표도 손색이 없었다. 학습지에 있는 문제를 해결할 때도 Min은 핵심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또한 Min은 그 학급의 부반장이다. 조용한 카리스마를 지닌 리더였다.
Min의 타이포셔너리 구상 능력은 거의 천재급이다. 단어를 보면 바로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해 내는 능력과 그 단어에 대한 해석력도 짱이었다. 그 단어의 의미를 간단한 그림 속에 절묘하게 잘 표현해 냈다.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그림 단어가 Min의 아이디어 창고에서 막막 쏟아져 나왔다.
[Min의 작품]
Min이 만든 타이포셔너리를 하나씩 살펴 보면 무척 재미있다. Min이 만든 단어 목록을 정리해 보았다. 그림 단어마다 입가에 웃음이 번지게 했다. 참 잘했다고 맘속으로 칭찬했다.
1. spicy / curvy / discover / stay / along / stair / rice / be full of /owner
3. interview/ reporter / cameraman/ field producer/ director / police officer/ parkmanager / role model / doctor / teen
Min은 창의력이 우수할 뿐만 아니라 작품을 완성해 내는 속도 또한 거의 LTE급이었다. 그림 단어 하나를 완성하려면 한 시간 정도는 족히 걸린다. 그런데 Min은 한 시간이면 7~8개 정도의 단어를 완성해 냈다. 빨리 완성하지만 작품의 퀄리티가 좋았다. 그림 단어 속에 위트와 개그가 담겨있었다. 깨알 같은 표현이 참 재미있었다.
[Min의 작품]
Min은 리스트에서 단어를 보는 순간, 곧바로 작품을 고안해냈다.
1. fruit / hiking / everyday / cool / cone / age / culture / warm / design / hometown
2. tie / collect / champion / tournament / stick out / piece / reach / float / land
3. past / camping / high up / style / block / cap / chef / temperature
Min의 작품 중에 유독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culture'(문화)이었다. '문화'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그림으로 꼬물꼬물 표현해 냈다는 것이 놀라웠다. 철자 하나하나에 단순하지만 충분한 표현을 담았다.
[culture]
가장 흥미롭게 여긴 작품은, 'hometown'(고향)이었다. 고향의 포근함과 복사꽃이 활짝 핀 hometown은 내가 늘 그리던 그 고향과 닮아 있었다. 타향살이에 지친 모두를 환영한다는 이미지로 꾸며진 Min의 'hometown'은 아무래도 저작권을 걸어야 할 것 같다.
[hometown]
또 눈길이 끌렸던 작품은 'block'이었다. 그 단어의 색감 처리는 '구글' 로고를 방불케 했다.
Min의 그림 단어가 보여 주는 단단한 저 벽, 난공불락(難攻不落)의 블럭을 누가 감히 넘어갈 생각을 하겠는가? 타이포셔너리 기법으로 '콱 막혀 있다'라는 '감정'을 표현했다. 블럭 앞에 제지당하여 서있는 자가, "Oh, My God!"이라고 탄식 소리를 내지르고 있다. 참 리얼하다.block(차단하다)!
[block]
이 정도면 Min은 타이포셔너리 천재가 아닐까? 이런 것은 배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누가 가르친다고 될 일이 아니다. Min은, (요즘 학생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열라' 창의적이다.
그 강좌를 신청했던 다른 학생들도 타이포셔너리를 멋지게 완성했다. 모름지기 타이포셔너리라는 것은 '단어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 작품들은 모두 훌륭했지만, 시간이 많이 걸렸거나 한 단어를 대작으로 표현한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런 것은 타이포셔너리에 걸맞은 작품이 아니라고 본다.
그런 면에서 Min은 타이포셔너리의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표현했다.
[다른 학생들의 작품]
다른 학생들은 수강 기간 내에 활동지 한 장 정도 완성하는데 Min은 여러 작품을 완성해 냈다. 그래서 Min은 시간마다 후딱 완성시킨 활동지를 제출했다. 그리고 다시 새 활동지를 받아갔다.
Min의 멋진 작품을 보니, 학생들을 틀에 가둬놓을 게 아니라는 게 자명해졌다. 그들 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아웃풋(output)할 수 있도록 학습의 장을 열어줘야 하는 게 맞다고 본다.
타이포셔너리 천재, Min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데 한 사람이 떠올랐다.
어떤 한국인이 옷걸이로 '간이 독서대'를 만들었는데 그것 하나만 보고 영국 왕립 예술대학에서 입학을 허가했다는 방송을 본 적이 있다. 다음은 그 사람에 대한 기사다.
허접하게 옷걸이로 한낱 조잡한 것을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분은 연습 메모 노트를 가지고 있었다. 수없이 여러 번 작품을 만들어 보고 그예 그 출품작을 돌출해 냈다. 그 노트가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영국에 있는 그 대학은 옷걸이 (세탁소용)로 만든 작품을 보고 그의 천재성을 눈치챘을 뿐 아니라 노력까지 알아봤다는 뜻이었다.
그런 면에서, 누군가 Min의 숨은 재능을 알아볼 날이 오면 좋겠다. 옷걸이로 간이 독서대를 만들었던 분이 영국 대학으로 진학하게 된 에피소드처럼...
앞으로도 Min의 말랑말랑한 두뇌는 아이디어를 무한히 쏟아낼 것이다.
Min의 숨겨둔 발톱은 바로 타이포셔너리를 고안하여 디자인하는 것이었다. 내가 만약 디자이너가 필요한 기업가라면 Min을 바로 콜 할 것 같다. 또한 내가 '유퀴즈 온 더 블럭'의 작가라면 Min을 인터뷰하고 싶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