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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Apr 17. 2024

브런치 덕분에 '미라클 모닝!'

출근하지 않지만 늦잠은 자지 않아요

[긴기아난 만개]

봄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꽃을 시샘하는 비라고 하기엔 다소 늦었다. 낙화가 시작된 후에 비가 내렸다. 그래서 올해는 꽃구경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그만하면 얄밉지 않은 비다.


월요일이었다.

비 오는 월요일에는, 학생들이 학교에 오기 싫듯이 교사도 출근할 맛이 나지 않는다.


나는 이제 편안하게 월요일 아침 시간을 즐긴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아침에 바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어색하다. 여유로운 나의 아침을 집안의 꽃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까? 예년보다 꽃이 더 예쁘게 피었다. 방시레 웃어 주는 듯하다.


우리 집 베란다에서 겨울을 이겨냈던 긴기아난이 드디어 만발했다. 그 자태가 우아하다. 긴기아난 향기에 모닝커피 향이 어우러져 거실 풍경은 마치 고급 카페 같다.


간단하게 아침을 챙겨 먹고 집안 이곳저곳을 정리했다. 일을 끝냈는데도 겨우 오전 9시다. 그쯤이면 학교에서는 1교시가 막 시작된다. 학생들은 무기력함과 피곤에 쩔어 월요일 1교시를 맞이하고 있을 게 뻔하다.




일요일 저녁에, 한 주간을 마무리하며 TV를 켰다. 요즘 라이징 스타가 되었다는 '태하 아기' 영상을 찾아서 봤다. 몇 개의 영상 클립을 봤더니 그냥 중독이 됐다. 아예 죽치고 앉아서 계속 봤다.

남편도 옆에서,


"무슨 아기가 저렇게 말을 잘하지? "

"저런 아기는 누구라도 키우겠네."

"대화가 통하는 아기네. 그것 참 신통하네."


라며 아기를 칭찬했다. 우리는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가식적이지 않은 아기의 멘트에 우리는 껌뻑 넘어갔다. 우리는 쉼 없이 웃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glp2Olztbc

[충청도 아기, 태하의 일상 Vlog]


"오늘 할 일이 많네."

"왜 그러는겨?"

태하 아기는 저런 식으로 말을 한다. 아기의 말이 누룽지처럼 구수하다. 사람 아기다. 아기가 어른처럼 완전한 문장을 구사한다. 틈틈이 충청도 사투리가 튀어나온다. 당연히 대본이 없을 텐데 말을 찰지게 잘하는 태하 아기는 타고난 삶의 배우다. 삶에 대해 이미 다 알고 있는 눈치다. 자신이 이런 말을 하면 어머니가 어떤 말로 맞받아 쳐야 하는 지도 안다. 연기 신동이 아니라 생활의 신동인 듯하다.


영상은 끝없이 이어졌다. 보던 영상을 도저히 끊을 수가 없었다. 내리다리 4시간 동안 태하 아기 영상에 빠져 있었다. 아기의 정서는 무척 안정적이었다. 아기가 말할 때마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기는 말 펀치로 자기 부모는 물론 시청자를 들었다 놨다 했다.


태하 어머니는 어린 아기 눈높이로 태하를 대했다. 마치 친구와 대화하듯 했다. 태하의 모든 말에 격하게 반응을 했다. 바로 그거였다. 태하는 어머니로부터 무한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는 듯했다. 태하의 Vlog를 촬영하는 태하 어머니는 끊임없이 웃었다. 아기는 어머니의 그 행복해 하는 기운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태하 어머니는 둘째를 가진 임산부였다. 그러면 몸이 피곤하여 만사가 귀찮을 텐데 태하를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있었다. 결국 어머니의 안정적이고 편안한 맘이 태하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그래서 태하는 부모를 무한 신뢰하는 모양새였다.


태하는 대견스럽게도 '분리 수면'으로 잤다. 그래도 칭얼대지 않고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었다. 태하는 잠자리에 들 때마다 내일을 기다리며 설레는 맘으로 굿나잇을 외쳤다. 그런 면에서 태하 어머니는 육아의 달인인 것 같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영상을 팔로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상을 보는 내내, 내가 아이를 키울 때에 그러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다. 그런 면에서 빵점 엄마였다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그나저나 그다음 날 출근해야 한다면 그 영상을 오래도록 보지 못했을 것이다. 새로운 한 주간 동안에 학교에서 해야 할 일을 체크하고 챙기느라 일요일 저녁부터 긴장하곤 했었다. 재직 중에, 월요일에 출근하지 않는 날은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날 태하 아기의 영상을 더 볼 수도 었지만 TV를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출근은 하지 않아도 되지만 태하처럼 내일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날이 새면 브런치 서랍에 써놓은 글을 다시 정독하여 수정한 후에 발행해야 하는 나름의 루틴이 있었다. 눈을 감았다. 그리고 태하처럼 좋은 꿈을 꾸고 싶었다.


꿈을 꾸긴 했으나 걱정하는 꿈이었다. 퇴임 이후, 꿈속에서 여전히 나는 학교에서 근무 중이었다. 수행평가를 보는데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학생들 때문에 나는 열을 받고 있었다. 꿈을 깨니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나는 언제까지 학교 꿈을 계속 꿀는지?



[내 방, 내 PC]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컴퓨터의 전원을 누른다. 틈나는대로 글을 쓰려고 아예 컴퓨터를 켜 둔다. 이 루틴이 이제 나의 미라클 모닝*이 되었다.


내 방에는 내 전용 데스크탑 일체형 PC가 있다. 그동안은 노트북을 사용했었다. 퇴임하면서 노트북을 포맷한 후에 학교에 반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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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윈 침대를 놓고 우리 부부는 한 방에서 지냈다. 그런데 남편의 코골이 때문에 편안한 밤을 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 침대를 다른 방으로 옮기고 그 방을 '내 방'으로 꾸몄다. 내 방은 잘 꾸며졌지만 내가 전용으로 사용할 PC가 필요했다.


남편은 본가에, 세컨 하우스에, 교회에 각각 컴퓨터를 두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야말로 남편의 PC다. 내가 남편의 컴퓨터를 사용하면 상호 불편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내 방에 일체형 컴퓨터 하나를 놨다. 처음에는 노트북용 책상 위에 그 컴퓨터를 올려놓고 침대에 걸터앉아 잠시 잠깐씩 사용했다. 그런데 그렇게 지낼 게 아니었다. 앞으로도 계속 컴퓨터를 사용할 것 같아서 아예 내 방 침대 옆에 컴퓨터 자리를 잡았다. 틈날 때마다 내 전용 컴퓨터 앞에 앉는다. 그렇게 두 달째 보내고 있다.


퇴임하자마자 바로, 브런치에 '1일 1 글 발행'을 했다. 그것은 내 삶의 스위치(교체) 역할을 했다. 삶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되는 듯했다. 브런치 글쓰기가 나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브런치는 퇴임 이후의 새로운 삶으로 스며드는 브리지였다. 하던 일을 그만둔 후에 아무런 일이 없다면 그것도 참 머쓱할 것 같다.




나는 제시간에 자고 또 아침마다 규칙적인 시간에 일어났다. 틈날 때마다 글을 썼다. 그리고 아침마다 브런치 글을 발행했다. 미라클 모닝의 삶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하여 [푸꾸옥, 4박 6일, 플랜 배포]라는 브런치 연재북을 완결했다.


현재는 [바야흐로 학교에서 물러갑니다],  [순방을 방불케 했다]라는 연재북 두 권을 집필 중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때에 따라 [나 홀로 백일장] 등의 브런치 매거진을 엮고 있다. 퇴임은 했지만 브런치에 글 쓰는 일에 내가 묶여있다.


그래서 요즘 나의 일상은 대체적으로, 글을 쓰고, 집안 살림하고, 그리고 아들 간병을 한다. 또한 남편과 함께 마음이 내키는 대로 스몰 여행을 다니기도 한다. 퇴임하여 시작된 인생 2막의 스타트가 그럴싸하다.


"요즘 뭐 하고 지내세요?"


더러는 이런 질문을 한다.


"지금의 생활이 제게는 딱 맞습니다. 새로운 삶에 벌써 리듬을 탄 것 같아요."


큰 욕심 없이, 내 분수에 맞게 '경제적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면 될 것 같다. 지금의 일상이 딱 좋은 것 같다. 이렇게 적당히 텐션을 유지하며 지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오늘도 '미라클 모닝'을 선사해 준 브런치에서 다양한 글을 읽고 또 글을 쓰고 있다. 잠잘 시간에는 일상을 내려놓고 잔다. 그래야 아침에 일어날 수 있다. 대체적으로 설정해 둔 알람이 울리기 전에 먼저 눈을 뜬다. 나의 일상은 내가 운전하는 속도로 적당하게 굴러간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지만 늦잠을 자지 않아요

#미라클 모닝 #브런치  #경제적 자유 #충청도 아기 태하  


* 미라클 모닝: 아침 일찍 일어나 독서, 운동 등을 통해 개인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습관

* 경제적 자유: 단순히 생계를 위해 일할 필요가 없는 상태


[대문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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