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a향기와찬양Lim May 13. 2022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처럼

 - 사람이 사람을 살린다

된장찌개


 오랜만에 맛있는 된장찌개로 저녁을 먹었다. 남편과 단 둘이서 식탁에 마주 앉아 제대로 식사를 하는 때는 저녁이다. 온종일 근무하고 퇴근길에, 10년째 병상에 있는 아들을 간병하는 것이 나의 루틴이다. 그때쯤 되면

그로기 상태로 몸이 지친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게 귀찮을 때가 많다. 그래도 저녁을 제대로 챙겨서 먹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된장찌개를 끓였다.

<된장찌개는 그때가 제일 맛있었는데...>

<맞아, 그때 그 된장찌개는 왜 그렇게 맛이 있었을까?>

<그분은 된장찌개를 '끓였다'라고 하지 않고, '지졌다'라고 했었어.>


 맛있는 된장찌개를 먹을 때마다 생각나는 분이 있다. 10년 전, 아들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여 의식을 잃었을 때, 우리는 모든 일상을 내던지고 병원에서 피란민처럼 생활했다. 입맛을 잃고 간병으로 지쳐가고 있었다. 궁리 끝에 원룸을 하나 얻었다. 우리가 잠이라도 제대로 자야만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밤 시간 동안은 간병인에게 아들을 돌보도록 맡겼다. 그 간병사가 된장찌개를 엄청 많이 끓여온 적이 있다.


<병원 생활을 하다 보면 입맛을 잃게 됩니다. 이럴 때는 뭐니 뭐니 해도 '집에서 지진 된장'이 최고예요.>


  된장찌개에 다양한 버섯, 두부, 야채, 조개, 해물, 그리고 한우 고기 등등 몸에 좋다는 것은 다 넣은 듯했다. 병실 한 귀퉁이에서 꾸역꾸역 밥을 먹는데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된장찌개가 사람을 감동시킬 수도 있었다. 그 된장찌개가 내 눈물샘을 건드렸던 모양이다. 된장을 먹으면서 우리 부부는 서로의 눈이 빨갛게 된 것을 마주 보았다.

 타향 객지에서, 생때같은 아들을 입원시켜 놓고, 일상을 등진채로 지내던 우리에게 그분이 보내준 토속적인 후원은 우리를 살리는 응원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살린다는 걸 그때 알았다.


실로아

   다른 이야기는 '실로아'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포항에 도착하기 전에, 아들은 이미 수술을 끝마친 상태였다. 일주일쯤 사경을 헤매던 아들 생명이 위중한 듯하여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급하게 이송했다. 대학병원에서 신경외과적인 치료를 끝낸 후에, 보관해 두었던 두개골을 다시 봉합하기 위하여 우리는 포항으로 갔다.

 수술 후에 아들이 중환자실에 당분간 있을 동안에는, 우리에게 병실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떤 분이 '실로아'라는 게스트 하우스 우리 가족에게 선뜻 제공했다. 아들은 두 번의 대수술을 했었고 수술 후에 중환자실에 있을 동안에 우리는 '실로아'에서 머물렀다.

  아파트 단지 옆에 있던 단독 주택이었다. 우체통이 걸려 있는 대문은 파란색이었다. 우체통에서 열쇠를 꺼내어 집 안으로 들어가면 정원이 수려한 안 마당이 있었다. 마당 한쪽에는 강아지 집이 있었고 축담에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테이블이 몇 개 놓여 있었다. 현관문 앞에는 <실로아>라는 문패가 걸려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 이곳에 머무는 자에게는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의 물처럼 평안과 축복이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액자가 있었다. 주방 입구에는 전 세계 모든 나라로부터 공수해온 듯한 차와 커피가 놓여있었다.

 그곳에는 '우렁각시'가 사는 게 분명했다. 우리에게 그 집을 내 준 것도 모자라서, 우리가 중환자실에 면회를 다녀온 틈을 타서 청소를 해놓고 침구를 갈아 두는 게 아닌가? 우리가 즐겨 먹었던 장아찌나 밑반찬이 리필되어 있었다. 아마 우리가 나가고 들어오는 것을, 그분이 어디에선가 살펴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꿈같은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 집 주인장을 만나 본 적도 없고 연락처도 모른다. 아하 , 그 분은, 후원 받는 사람이 부담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그렇게 우렁각시처럼 숨어서 얼굴 없는 천사가 되었던 것 같다. 그분이 누구인지 아직도 모른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를 살렸다.


그 때 적은 시가 있다.


'실로아'에서  (2013.1.29.)

 질척하여

울 힘조차 없던 날에


평온과 안식으로

흐르는 물 '실로아'

몸을 뉘어본다.


아름답고 따사롭다고  

'실로아'에서만 살 수는 없는 법


나그네이므로

순례자이므로


'실로아'를 작별하며

이 세상을  떠날 그날을

연습해본다.


*실로아: 게스트 하우스 이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